농협이 연이은 사기사건과 부실대출로 구설수에 오르고 있다. 직원을 사칭한 전화 한통에 선뜻 500만원을 다른 사람 통장에 송금하는가 하면 리스크(위험요소)가 있는 부동산을 담보로 120억원을 부실대출했다 논란이 일자 이를 회수하기도 했다. 농협 측에서는 담당자들의 실수에 의해 일어난 우발적 사건이라며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으나 총자산이 200조가 넘는 거대 금융기관이 안일한 일처리로 인해 이런 사건이 발생하는 것 자체만으로도 농협이란 브랜드 이미지에 치명타가 될 수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지난 12월 12일 오전 10시경 경기도 수원농협에 한 남자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이 남자는 전화로 간부A씨를 찾았으며 A씨는 당시 부재중이었다. A씨의 부재를 확인한 이 남자는 잠시 뒤에 다시 전화를 걸어 B여직원에게 “나 A인데 지금 총회 중이라 바쁘니 500만원을 C씨의 계좌로 입금하라”고 말했다. 전화를 받은 여직원은 아무런 의심없이 C씨의 계좌로 500만원을 송금했다.
남자는 이에 앞서 부동산 중계업자인 C씨에게 전화를 걸어 “전에 보고 간 집을 계약하고 싶다”며 “500만원을 송금할테니 계좌번호를 알려달라”고 말해 C씨의 계좌번호를 알아냈다. 그는 농협 여직원과의 통화 후 다시 전화를 걸어 “계약을 보류할테니 입금한 500만원을 사무실로 찾아가는 사람에게 돌려달라”고 말했고, 중계업자 C씨는 10만원짜리 50매로 돈을 인출해 신원미상의 남자에게 건넸다. 간부직원을 사칭한 전화 한 통에 500만원을 사기당한 셈이다.
이에 대해 농협관계자는 “입사한지 얼마되지 않은 여직원의 실수일 뿐 구조적 문제가 있다거나 금융사고에 대해 둔감한 것이 아니다”라며 “문제될 것 없다”고 해명했다. 이 관계자는 “금융기관에는 별의 별 방법으로 사기행각을 시도하는 사람이 많아 어렵다”며 “이런 식으로 가끔 일어나는 사건에 대해서는 재빠르게 사고사례로 등록해 전 직원들에게 교육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런 문제가 발생한다는 것은 허술한 신입직원의 교육을 반증하는 것이어서 향후 재발할 가능성도 부인할 수 없다.
이 사건과 관련, 수원중부경찰서 담당형사는 “사고 직후 모든 수표는 지급정지 된 상태이며 10만원권 중 몇 장만 회수됐다”며 “수표는 주로 신원확인을 잘 하지 않는 시장이나 식당 등에서 사용됐다”고 말했다. 경찰은 회수한 수표의 지문감식을 의뢰중이다.
횡령사실 축소에 급급
농협의 안일한 업무태도가 도마 위에 오른 것은 이 뿐이 아니다. 지난 9월에는 농협 소속의 직원이 수천만원을 횡령한 사실을 알고서 이 직원에게 횡령액을 미리 변상하게 한 후 축소감사를 실시한 뒤 이 직원을 슬그머니 해직처리한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다.
한 언론보도에 따르면 “농약이나 비료, 상포(수의) 등을 판매하고 있는 경제사업장은 지난 9월 재고부족과 장의차량 운임 미정리 등의 사고가 발생했다며 수원농협에 보고했고 이에 따라 수원농협은 5일간 경제사업장에 대한 감사에 돌입, 운송료와 특산물품대금 미징수 등으로 인한 300여만원의 사고 발생사실을 밝혀내고 서둘러 감사를 마무리했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농협 측의 감사결과와 달리 실제로는 1,800여만원의 사고가 발생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농협은 사건을 축소시키기 위해 이를 300만원으로 줄였다. 특히 감사 전에 횡령을 한 H씨를 미리 만나 사고금을 모두 변상케 했다. 그리고 지난 12월 11일 이 직원을 해고처리했다.
이에 대해 수원농협 관계자는 “아는 바 없고 취재를 거부하겠다”며 전화를 끊어버렸다.
부실대출 논란
지난 10월 국정감사에서는 농협의 부실대출 논란이 일었다. 지난 3월경 농협 시화공단기업금융지점이 소유권과 점유권이 달라 법정공방을 벌이고 있는 땅을 담보로 120억원을 대출해줬던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던 것.
특히 이 과정에서 농협은 담보대출 할 때 반드시 해야 할 현장실사 등을 하지 않았다는 논란이 제기됐다. 이같은 사실이 문제가 되자 농협은 대출금을 회수했으며 담보에 대한 근저당권설정도 해지시켰다. 그러나 농협측은 부실대출 논란이 일자 진행 중이던 대출약정을 부랴부랴 회수하는 등 업무상의 미숙함을 스스로 인정하는 꼴이 됐다.
특히 부실대출과 관련, 지난 2000년에도 도마 위에 올라 관련자들을 징계하는 등 여러번 문제가 돼 왔었다.
이외에도 농협은 장학금 때문에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다. 김제농협이 주는 장학금 수혜대상자 대부분이 시의원이나 시의회 사무국 직원들의 자녀들이었던 것. 특히 일각에서는 “시의원이나 공무원 등이 시 금고 선정에 기여한 공로가 있는 사람들에게만 혜택이 주어졌다”며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농협 관계자는 계속되는 문제제기에 대해 “‘우발적 사건’ 혹은 ‘이미 징계가 끝난 사안’”이라며 “문제를 제기하는 언론이 너무하다”고 말하고 있으나, ‘낙숫물에 바위 패인다’는 속담처럼 ‘반복적 실수’는 결국 ‘농협’이란 브랜드 이미지를 저하시킬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 정하성 교수, 라디오 방송 출연
“대기업도 타깃으로 삼을 것”
한국기업지배구조펀드(KCGF·장하성 펀드) 고문을 맡고 있는 고려대 장하성 교수가 시가총액 1조원 이상의 대기업도 타깃으로 삼을 수 있다고 말해 향후 거취가 주목되고 있다.
장교수는 이날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지배구조 개선을 통한 기업가치 상승의 잠재력은 대기업이 훨씬 많다”며 “앞으로 펀드 규모가 크게 확대되면 시가총액 1조원 이상의 대기업도 타깃으로 삼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장 펀드의 계획처럼 이같은 목표가 실현되기까지는 많은 장애물을 넘어야할 형편이다. 특히 장 펀드가 대기업의 지배구조개선을 타깃으로 삼기 위한 전제 조건은 펀드 규모의 확대다. 증권업계에서는 장 펀드 규모가 최소 4,000억∼5,000억원 정도는 돼야 한다고 보고 있다. 2,000억원 정도로 추정되는 장 펀드 규모를 지금보다 배 이상 키워야 하는 셈이다.
또 투자 초기 단계인 장 펀드가 아직 장기적이고 안정적인 수익원을 확보하고 있지 못하다는 점도 문제다. 현재 투자에 따른 시세차익을 제외하고는 별다른 성과가 없는 상태라 펀드 규모 확대보다는 내실을 먼저 다지는 것이 시급한 형편이다.
장 교수가 “과거 적은 지분으로도 삼성이나 SK텔레콤을 상대로 소액주주운동을 벌여 성과를 거둔 만큼 앞으로 펀드 외형이 대규모로 커지면 대기업을 대상으로 지배구조 개선 활동을 벌일 것”이라며 “그러나 시기는 장담하기 어렵다”고 말한 것도 이같은 문제를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혁>
박혁진 phj1977@dailysu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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