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백화점 정지선 부회장이 실질적인 ‘그룹 총수’로서의 역할을 할 수 있을까. 지난해 말 정몽근 회장이 경영일선에서 물러난 뒤 그룹을 이끌고 있는 정 부회장. 그가 그룹의 실질적인 ‘총수’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을지 여부에 재계의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재계안팎에서는 “우경숙 고문이 아직도 건재하다. 정 부회장의 어머니인 우 고문의 그늘 속에서 얼마나 능력을 발휘할지가 관심사”라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이에 회사측은 “정 부회장이 부회장에 오른 지난 2003년부터 우 고문은 사실상 경영에 관여하지 않고 있다”며 “정 부회장이 경영·인사권을 실질적으로 행사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그러나 재계에서는 30대 중반의 어린(?)나이에 그룹 총수에 등극하면서 정 부회장의 경영권과 관련해 이런저런 얘기가 나오고 있다.
정주영, 정몽헌 회장의 사후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 등 현대가 여인들의 경영참여가 활발해지고 있지만, 과거 현대가 여인들은 대외활동을 극도로 자제해왔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우경숙 현대백화점 고문은 다른 현대가 여인들과 달리 회사경영에 적극적으로 관여해왔다.
우 고문은 지난 90년 이후 현대백화점 신상품 및 브랜드 개발 등을 관할하며 경영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특히 정몽근 회장이 경영에 관여하는 정도가 줄어들면서, 우 고문은 그룹내 ‘숨은 최고 실세’로 통했다.
숨은 실세, 우경숙 고문
여기에 우 고문측 사람들이 그룹 핵심자리에 오르면서, 사실상의 그룹 경영권은 우 고문에게 있는 것이 아니냐는 얘기가 들리기도 했다. 그룹내 최고 의사결정권자 역할을 우 고문이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던 중 2002년말 정지선 당시 부사장이 부회장으로 등극하면서, 사정이 달라지는 분위기다. 정 부회장이 사실상의 그룹 총수의 자리에 오르면서, 우 고문이 한 발짝 물러선 모양새를 취하고 있다.
하지만 재계에서는 “정 부회장이 아직은 우 고문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실제로 우 고문은 정 부회장이 부회장직에 등극한 이후에도 그간 정 부회장이 경영권 승계를 원활히 할 수 있도록 보호막 역할을 해왔고, 아직도 그룹내 영향력이 상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 부회장에 이어 ‘그룹내 2인자’로 알려진 경청호 사장도 우 고문의 최측근 실세로 통하고 있다. 경 사장은 다른 그룹 구조조정본부와 유사한 ‘기획조정본부’를 이끌고 있고, 백화점 관리부문도 담당하고 있다.
경 사장은 우 고문을 대신해 정 부회장을 보좌하며 그룹 전반을 조율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백화점의 관리업무뿐 아니라 그룹의 신규사업 진출 등에도 핵심역할을 맡고 있는 셈이다. 경 사장과 함께 투톱체제를 형성하고 있는 민형동 사장도 우 고문의 측근으로 알려져 있다.
우 고문 입김, 막강?
이처럼 그룹의 핵심 인물들이 우 고문의 최측근 인사들로 포진하면서, “우 고문의 입김이 아직도 막강하다”는 얘기가 업계에서 돌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정 부회장이 아직 그룹 전체를 좌지우지할 정도로 경영권을 갖지 못한 것이 아니냐”는 소문이 돌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정 부회장이 그룹 총수로서 역할을 하기에는 아직 젊은 나이라는 점을 꼽는다. 최근 ‘보복폭행’으로 물의를 빚고 있는 한화 김승연 회장이 지난 81년 29세 젊은 나이에 그룹 총수에 오른 바 있지만, 최근 들어 정 부회장처럼 젊은 나이에 그룹 총수에 오른 사람은 극히 드물다.
이에 ‘안정적인 후계 경영승계 구도’를 위해서라도 우 고문이 앞으로도 현대백화점그룹 경영에 일정부분 역할을 할 것이란 관측이 우세하다. 우 고문의 ‘수렴청정’경영이 계속될 수도 있다는 얘기다.
이에 대해 현대백화점측은 “정지선 부회장이 부회장직에 오른 뒤 우 고문은 그룹 경영에서 이미 손을 뗐다”며 “우 고문이 회사에 출근하기는 하지만, 사무실에서 지인들을 만나거나 소일을 하는 정도일 뿐”이라고 해명했다.
한편, 지난달 공정거래위원회는 ‘2007년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 등 지정’내역을 발표하면서, 현대백화점그룹 총수의 이름을 정몽근 명예회장에서 정 부회장으로 변경한 바 있다.
정하성 haha70@dailysu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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