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90년 자기돈 500만원에다 외부에서 4500만원의 돈을 차입해 선박화물중개회사인 칠산해운을 모태로 활발한 기업 인수를 추진, C&그룹(옛 쎄븐마운틴그룹)을 일궈내며 신흥 M&A의 대가로 급부상한 임병석 회장(47). DJ 정부시절부터 M&A행보에 나선 그와 C&그룹은 인수에 따른 후유증이 겹쳐 지난 2005년부터 2006년까지 그룹 전체적으로 적자를 겪었다. 올 들어 임 회장은 외형성장 전략에 급제동을 걸고 사활을 건 구조조정을 통해 그룹 살리기에 발 벗고 나서고 있다. 지난해에는 그룹의 외형 성장과정에서 정권과의 특혜 및 연루 의혹 등도 불거졌으며 올 초 증권가와 금융가를 중심으로 유동성 위기설 소문마저 나돌았다. 최근에 조정장세를 받고 있으나 올 들어 거듭된 증시호황과 해운 계열사들의 주력사업인 화물선 시황의 호황으로 그룹 운영에 숨통이 트인 게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본지는 C&그룹의 외형확장사와 그에 따른 빛과 그림자를 짚어본다.
임병석 회장은 1961년 굴비로 유명한 고장인 전라남도 영광 출신이다. 한국해양대학교를 졸업한 그는 사회생활을 마도로스(항해사)로 출발했다. 그런 그가 본격적인 육상생활을 하며 사업세계에 뛰어든 것은 1990년 자본금 5000만원의 선박화물중개회사인 칠산해운을 설립하면서부터다. 칠산이란 사명은 그의 고향 앞바다인 무인도 이름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임 회장은 칠산해운 시절 불규칙한 화물운송수요와 바다를 떠다니는 선박간의 운송공급업무를 성사시키기 위해 사무실에 텐트를 치며 생활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임 회장의 이러한 노력으로 칠산해운은 연료탄 운송사업 매출이 증가하면서 자금을 축적할 수 있었으며 이른 바 해운업 종사자들의 꿈이라할 수 있는 선박을 5년 만에 소유할 수 있었다. 선주가 된 그는 1995년 사명을 쎄븐마운틴해운으로 바꿨다.
DJ정권 이후 승승장구
DJ 정부시절부터 쎄븐마운틴해운은 한국전력 등의 대형화물 운송용역 등을 따내면서 사세를 키워가기 시작했다. 이 회사는 자본을 축적한 DJ 정부 말기와 참여정부 출범 후 IMF사태 때 쓰러진 기업들을 상대로 한 M&A를 성사시켜 나갔다.
임 회장이 본격적인 M&A시장에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한 것은 2002년 법정관리 상태였던 세양선박을 전격 인수하면서부터다.
그 후 2003년에는 황해훼리 필그림해운, 2004년에는 한리버랜드(옛 세모유람선) 케이씨 라인(선박관리·중개) 진도(컨테이너제작·의류)에 아남건설과 지방 유력 건설사인 우방, 생활경제TV까지 인수에 성공하며 매출 2조원에 육박하는 중견그룹으로 성장해 갔다. 그는 지난해에도 세양선박을 놓고 최평규 S&T중공업 회장과 경영권 공방을 벌이는 와중에도 정기선 사업 진출을 위해 동남아해운을 인수하기도 했다. 이는 전남 해남출신인 대주그룹의 허재호 회장이 경영권 분쟁에서 임 회장의 백기사 역할을 했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평이다.
이러한 가운데 임 회장은 지난해 김재록 게이트와 연루 의혹으로 고초를 겪은 바 있다. C&그룹의 우방 인수과정에서 불거진 의혹으로 임 회장은 검찰 조사를 받아야 했다. 결국 무혐의로 귀결되긴 했지만 김재록씨와 같은 전남 영광 출신이며 동년배라는 점과 우리은행 사모펀드를 매개로 김씨와 임 회장이 결합한 의혹 등은 아직도 의문시 되고 있는 상황이다.
문어발 성장 후유증 드러나
임 회장과 C&그룹은 올 들어 그간의 무리한 성장에 따른 후유증 진화에 나서고 있다.
올 초 증권가와 금융업계에서는 임 회장이 주요 채권은행 들을 찾아다니며 대대적인 자금 수혈을 위해 발 벗고 나섰다는 소문도 나돌았다. 이러한 소문의 발단은 지난해 C&그룹의 경영실적에서 비롯됐다.
대표적인 그룹의 골치덩어리는 바로 정기선 진출을 위해 설립한 C&동남아해운. 해운업계에 따르면 이 회사는 한척의 선박만 보유한 채 용선에 의존해 운항하고 있는 선사다. 특히 과열된 항로로 운임이 하락 할대로 하락한 한중과 한일 정기노선을 중심으로 일부 동남아지역간 정기선 사업을 운영하고 있었다. 이러한 C&동남아해운은 지난해 400억원이라는 적자를 기록했다. C&동남아해운의 적자로 인수주체였던 C&진도는 지분법 손실을 따라 258억원의 적자를 기록했고 C&진도 지분 47%를 갖고 있는 C&상선도 450억원의 손실을 봐야 했다. C&그룹의 지주회사격인 C&해운도 연결재무제표상 550억원 적자를 냈다.
이러면서 C&그룹은 지난달까지 C&동남아해운과 패션 회사인 진도 F&을 매각하려 한다는 방침을 정했으나 특히 C&동남아해운은 인수에 나서는 기업이 없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에 대해 C&그룹은 “차입 없이 경영하는 그룹이 어디 있으며 기업 총수가 금융권 인사들과 만나는 일은 비일비재한 일”이라며 “그룹차원에서 C&동남아해운과 진도F&을 매각하지 않기로 잠정결론을 내렸다”고 밝혔다.
올 들어 두 번 사업개편과 증시 활황
시너지가 미약한 기업들을 인수해서 일까. 올 들어서만 C&그룹은 중장기 조직개편을 두 번이나 변경하는 해프닝을 벌이고 있다.
첫번째 조직 개편 공표는 지난 3월이었다. 사업영역을 해운제조계열, 건설계열, 패션레저계열 등 3개 계열로 세분화하고 계열별로 통합관리 시스템을 운영한다는 것이었다.
최근 C&그룹은 계열사 정리에 따른 공백을 조선업이라는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설정해 조직개편을 구상하고 있으며 곧 발표하겠다고 선언했다.
C&진도를 중심으로 C&효성금속을 합병했으며 이어 C&중공업의 조선업을 이관 받아 철강과 조선이라는 수직계열을 통한 시너지 창출에 나선 다는 것이 C&그룹의 새로운 전략이다.
특히 최근 조정장세를 받고 있지만 C&그룹은 올 들어 지속된 증시활황과 해운계열사들의 주력사업인 벌크 화물선 부문의 시황이 좋아 유동성위기에서 한숨은 돌렸다는 관측들이 나오고 있다. C&그룹은 주가 호황기로 접어든 이후 구조조정과 사업조정 개편 및 해외자원개발 사업 진출, 테마파크사업 진출 등에 이어 최근의 조선사업 강화 선언까지 잇따라 발표한 바 있다.
일부 증권 전문가들로부터는 이러한 일련의 내용들이 내실과 구체적인 알맹이가 부족한 가운데 투자자들의 자금을 끌어들이기 위한 작전 논란이 아니냐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이에 대한 근거로 특히 지난 5월에 사업구조개편과 해외자원개발사업 진출을 발표한 이후 계열사들의 주가는 한동안 폭등세를 기록했다. 지난달 초 조선업 진출 강화선언 이후 공교롭게도 같은 달 20일 각각 주당 지난 1년간 최저가 대비 C&진도(2670원→1만3050원), C&상선(365원→2525원), C&우방(3140원→9420)원으로 최고가를 기록한 바 있다. 이에 대해 C&그룹은 “주가 상승에 따라 그룹 경영이 도움을 받은 것은 사실이지만 증시활황에 따라 C&만 득을 본 것은 아니다” 며 “작전 논란은 당치도 않은 일”이라며 일축했다.
#끝없는 호남기업 영토확장 DJ 집권 전후 승승장구
김대중 대통령 이전에는 호남지역에 대형 기업들이 드물었다. 고 박정희 대통령 이후부터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전 대통령까지 영남 출신 국가 원수의 계보가 이어지는 가운데 상대적인 영남위주 인사 등용과 기업 육성에 따라 호남지역 주민들은 상대적 박탈감 속에서 살아야만 했다.
DJ 이후 노무현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지역균형발전’이라는 명제 아래 호남기업들은 비약적인 성장을 이루고 있다는 데 재계 관계자들은 이의를 달지 않고 있다. 일각에서는 특혜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대표적인 호남기업으로는 단연 금호아시아나그룹이다.
전라남도 나주 출신인 박인천 창업주가 지난 1946년에 5인승 포드 자동차 2대로 전남 광주에서 택시회사에서 출발한 금호아시아나는 지난해 60주년을 맞았다. 아이러니컬하게도 금호아시아나는 호남기업으로의 성장 한계를 느껴서일까. 일찍부터 창업주 시대부터 외부적으로는 ‘탈 호남’을 선언한 기업이기도 하다. 전두환 대통령 당시 대한항공에 이어 제2민항으로 선정돼 아시아나항공을 설립했던 것은 지금도 일부 호남인들이 색안경을 끼는 대목이다.
이후 금호아시아나는 무리한 투자와 외환위기까지 겹친 유동성위기를 정권의 입김 등 특혜 의혹 속에서 군인공제회의 2500억원이란 자금 수혈로 넘긴 바 있다.
지난해에는 건설업계 1위인 대우건설을 인수했고 이를 바탕으로 단숨에 재계 7위(공기업 제외)로 부상했다. 올해는 사상 최초로 매출 20조원 시대를 돌파하겠다고 선언한 바 있다. 금호아시아나는 쟁쟁한 기업들이 노리고 있는 대한통운 인수도 추진 중이다.
올 들어 홈에버와 뉴코아 등 노사간 첨예한 대립으로 연일 집중 조명을 받고 있는 이랜드그룹도 총수인 박성수 회장이 광주일고 출신이다.
이랜드그룹은 1997년 말 외환위기 때 부도위기까지 내몰리며 28개 계열사를 8개 계열사로 정리하고 직원도 50%나 감원하는 초강수 구조조정 카드를 내밀었으나 부도 직전 기적적으로 외국인 투자가로부터 5000만 달러(당시 환율 달러당 1800원 이상)란 거액을 차입해 전열을 가다듬을 수 있었다.
지난 4년간 이랜드는 데코, 뉴코아에 이어 한국까르푸 등 등 공격적인 M&A를 성사시켜 30대그룹 반열에 올라섰다. 지난해에는 올해 매출 10조원 시대를 열겠다고 선언한 바 있으나 장기화 되는 유통계열사 노사 분규로 얼마나 목표를 달성할지는 지켜볼 일이다.
그 외에도 시행사로부터 출발해 프라임개발, 한글과컴퓨터, 옛 건설명가인 동아건설을 인수하며 사세를 불려가는 프라임그룹도 광주 출신 백종헌 회장이 이끌고 있다.
최근 공격적인 M&A 횡보로 재계의 주목을 받고 있는 유진그룹의 유경선 회장도 전남 출신이다.
C&그룹(옛 세븐마운틴그룹)과 S&T그룹과의 세양선박 경영권 분쟁에서 C&그룹의 백기사 역할을 한 해남출신의 허재호 회장이 이끄는 대주그룹도 1981년 건설사로 출발 이후 시멘트, 조선, 보험 등 10개가 넘는 계열사를 아우르는 중견그룹으로 성장했다.
일부 재계 관계자들은 DJ정권 이후 이어진 호남기업의 성장이 정권교체 이후에도 지속될지 아니면 어떠한 판도로 재계의 지각변동이 발생한 것인지 주목하고 있다.
장익창 sanbada@dailysu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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