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도 많고 탈도 많았다
민족 최대의 명절인 추석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삼일 밖에 안 되는 짧은 연휴지만 기업 총수들에겐 이 시간마저도 매우 귀중하다. 지난 3분기까지의 실적을 되돌아보며 한해를 마무리할 수 있는 소중한 순간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모든 총수들에게 이런 절호의 찬스가 돌아가는 건 아니다. 추석 때 벌어진 역대 재계사건들을 모아봤다. ‘M&A의 귀재’로 통하는 최평규 S&T그룹 회장에겐 지난해 추석이 일생일대 최악의 순간이었다. 그룹 내 자동차 부품회사인 S&T대우(옛 대우정밀)노조가 하던 일을 멈춘 채 수일 째 농성을 벌였던 까닭이다.
보다 못한 최 회장은 지난해 9월 18일 직접 현장에 뛰어들었다. 그가 내민 카드는 다름 아닌 ‘단식농성’. 그러나 고혈압과 당뇨 등의 지병을 앓고 있는 최 회장에겐 이마저도 쉬운 게 아니었다. 결국 닷새간 계속된 그의 단식 농성은 ‘병원 후송’이란 결과를 낳고 말았다.
그가 병원에 실려간 날은 9월 22일. 공교롭게도 이날은 추석연휴 바로 전날이었다. 병원 측에 따르면 당시 최 회장의 혈당수치는 62mg/dl. 이는 정상수치 80~120mg/dl의 절반에 해당하는 수치였다.
역대 추석연휴 어떤 일이?
최 회장이 사경을 헤맸던 지난해 9월 22일, 정몽준 현대중공업 대주주는 쾌재를 불렀다. 추석연휴 동안 골프장을 찾았던 정몽준 대주주는 이날 홀인원을 기록, 뒤늦게 화제에 올랐다.
정 대주주는 한가위 연휴가 시작됐던 22일 경기 고양 뉴코리아CC에서 중견 언론인들의 모임인 관훈클럽 신영연구기금 임원들과 골프를 치던 중 15번홀(파3·170야드)에서 국산클럽인 엘로드 5번 아이언으로 티샷한 공이 홀컵으로 빨려 들어가 홀인원을 기록했다.
정 대주주는 처음에는 홀인원인지 몰랐다가 그린에 다가가 홀인원인 것을 확인하고 뛸 듯이 기뻐한 것으로 알려졌다.
2006년은 현대그룹에겐 최악의 한해였다. 북한의 핵실험 선언으로 대북 경협사업이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대북사업 전담창구인 현대아산뿐 아니라 토지공사, 14개 개성공단 입주 기업 등 대북관련 사업자들은 향후 방향을 어디로 잡아야 할지 판단이 안 선 상황에서 불안한 표정으로 사태추이만 지켜봤다.
이에 따라 현대그룹과 그 계열사들은 북한 핵실험 파장을 주목하며 ‘피 말리는’ 추석연휴를 보내야 했다. 그해 추석연휴가 껴있던 10월은 금강산 단풍이 절정을 이루는 ‘황금 성수기’. 돈을 쓸어 담을 수 있는 절호의 찬스를 놓칠 수 있단 생각에 현대그룹은 그 해 추석연휴를 손에 땀을 쥐며 보냈다고 한다.
삼성그룹 이건희 전 회장은 2005년 추석을 해외에서 보내야만 했다. 대외적으론 건강검진 차 미 체류기간이 길어졌다지만 사실상 삼성X파일 논란으로 인한 도피였다. ‘X파일’ 사건으로 검찰 수사와 함께 이 전 회장이 국회 국정감사 증인으로 부각되었기 때문이다.
한편 이 전 회장은 당시 미국 텍사스주 휴스턴의 한 호텔에 머문 채 MD앤더슨 암센터에서 정기 검진을 받았던 것으로 알려진다. <영>
박지영 기자 pjy0925@ilyoseoul.co.kr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