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건 전국무총리가 비록 대선 불출마를 선언했지만, 그가 추진하려 했던 통합신당 로드맵 문건의 내용이 알려지면서 관심이 증폭되고 있다. 제3후보의 등장을 기대하는 일부 여론이 상존한다는 점에서 고 전총리가 계획했던 통합신당의 밑그림은 정치권의 비상한 관심을 끌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 하반기에 작성된 ‘로드맵 1219’와 ‘국민통합신당의 골격’ 문건에 따르면 고 전총리는 올해 상반기에 노무현 대통령과의 대립구도를 더욱 격화시킬 예정이었다. 통합신당 추진을 압박하며 열린우리당 사수를 천명해온 노 대통령과의 결별은 피할 수 없는 수순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던 것이다.
<일요서울>이 단독 입수한 문건에는 조순형, 유재건, 정장선 의원 등 고건 전총리가 연대를 모색하던 비호남권 현역 국회의원과 서청원 전 한나라당 대표 등 야당 정치인의 이름이 실명으로 등장한다. 특히, 충청권 표심을 잡기 위해 정운찬 전서울대총장 등을 영입대상으로 명시하고 있다.
고건 전총리가 열린우리당 이탈세력, 민주당 등과 연대를 통해 반(反) 한나라당을 표방한 중도개혁신당을 구축하려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특히, 열린우리당이 혼란 속에서도 큰 이탈 없이 장기간 지속될 경우, 독자신당을 창당하는 방향으로 ‘로드맵’까지 설정하고 있었다.
본지가 지난 18일 단독 입수한 ‘로드맵 1219’에 따르면 고 전총리는 열린우리당의 혼란과 노무현 대통령의 적극적 개입으로 태동할 정치권 ‘빅뱅’을 예상하고 이에 따른 시기별 행동 메뉴얼을 정리해 놓았다.
노무현 대통령과 ‘대립구도’ 전략
‘로드맵 1219’는 지난해 정기국회 직전, 고건 캠프 내부에서 작성된 것으로 향후 정국 방향에 따른 대응방안을 마련하는 한편, 국민통합신당의 기본 골격을 정리해놓은 자료다.
로드맵에는 연초 노무현 대통령과 대립구도가 불가피함을 지적하고 총리 재임 당시 대통령의 부당한 처사에 제동을 걸었거나 반대한 일 등을 사전에 철저하게 정리해 둘 필요가 있음을 언급했다.
자료에 따르면 “노 대통령이 노골적으로 반GK(고건) 책동을 하거나, GK를 공격하면서 열린우리당을 묶어두려 한다면 노 대통령을 거세게 몰아세워야 한다”는 대응전략이 명시돼 있다.
그러나 이러한 대응전략을 준비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고 전총리는 노 대통령과 한 차례 논쟁을 통해 큰 상처를 입고 말았다. 고 전총리가 측근들이 제시한 로드맵을 경시한 부분도 없지 않다는 지적이다.
고건측은 로드맵을 1, 2단계로 나눠 예상 시나리오를 작성했으며, 로드맵 1단계에선 ▲향후 정국 예상 상황 ▲예상 변수 ▲액션 프로그램(Action program) 등이 제시돼 있다.
열린우리당에서 노 대통령 직계와 개혁 강경파를 제외한 온건 중도파의 대거 이탈로 여권이 ‘진공상태’가 되면 고 전총리를 중심으로 하는 통합신당을 띄워야 한다는 논리다. 이 과정에서 잔류하는 강경파는 소수세력화로 전락시킨다는 밑그림도 포함됐다.
물론, 이를 위해서는 몇 가지 변수를 예의주시할 필요가 있다고 내다봤다.
노무현 대통령이 자신의 영향력을 극대화시킬 수 있는 방송, 인터넷, 일부 신문을 통해 이탈을 막기 위한 공세를 전개하는 등 정치에 적극적으로 개입할 것이라는 점이 첫 번째 변수다.
두 번째는 민주당 ‘접수’를 가로막는 돌출 변수를 꼽았다. 호남표와 의석수를 내세워 끝까지 고 전총리를 괴롭힐 수 있다는 것.
마지막으로는 ‘무주공산’ 충청권 전략이다. 지난해 지방선거에서 사실상 한나라당이 장악한 충청권 표심을 얻기 위해서는 충청권 공약, 지분 분배 등 획기적인 대가를 지불해야 할 수도 있다고 분석했다.
이러한 내용을 바탕으로 구성된 액션 프로그램은 매우 구체적으로 명시돼 있다.
고건, 이명박, 박근혜 ‘3강구도’를 더욱 고착화 시키는 동시에 지지도를 상승시킬 대국민 활동을 적극적으로 전개한다는 것이다. 대언론 활동 강화를 위해 기자단 출입 공간, 서비스 인력 확보, 포털사이트와의 친화활동 전개 등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특히 온라인(On-line)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 빠른 시일 내에 전문 인력을 확보하자는 내용이 담겨 있다.
이어서 ‘고건 분신(分身) 만들기’ 프로그램이 전개될 예정이었다.
실질적인 세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저명하고 이미지가 좋은 비호남 인사의 적극적인 도움이 필요하기 때문에 나온 아이디어
로 보인다. 최적의 인물로 조순형 의원을 선정했다.
자료에는 “조 의원은 한화갑 이후(대법원 판결 앞두고 있음) 민주당을 맡을 것으로 예상되는 바, 민주당을 순조롭게 장악하기 위해서도 빠른 시일 내에 신뢰, 협력관계를 구축해야 한다”고 적혀 있다.
또한 유흥수, 이해구, 추미애 전의원을 영입해 전력을 강화하고자 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한나라당 출신 인사로는 서청원 전 한나라당 대표를 염두에 두고 있었다. 서 전대표는 충남 천안 출신이다. 성향 등으로 볼 때, 공을 들일 가치가 충분하다고 평가한 것. 중견 정치인으로는 부산 출신 김영춘 의원과 온건파에 속하는 정장선 의원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로드맵에는 중도개혁실용주의 세력 결집을 위해 “멀지않아 사면초가에 처할 김근태 의장 진영과 대화가 필요하다”면서 “순수개혁세력의 좌장인 김 의장의 정치철학을 일부 수용하면서 결집을 유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나라당 서청원 전략적 영입 대상
유대를 강화해야 할 비호남 출신 중진 정치인으로는 이근식, 정덕구, 유필우, 심재덕, 김부겸, 조일현, 홍재형, 박병석, 이호웅(의원직 상실) 의원 등을 선정해 놓고 있었다.
색깔이 옅은 초재선 의원과 안개모 소속 의원들과의 접촉도 강화해야 한다면서 이종걸, 노웅래, 권선택, 우제항, 안병엽, 오제세, 이시종, 서재관, 변재일, 박상돈, 우윤근 의원 등을 그 대상으로 꼽았다. 세력규합을 위해 비호남권 정치인을 접촉하는 과정에서 민주당과 호남출신 의원들은 2선에 포진시켜 놓는다는 전략이었다.
앞서 언급했던 정지작업이 어느 정도 완성되면, 고 전총리측은 정계개편을 본격적으로 대비하는 단계로 들어설 예정이었다. 이 시기에 가장 중점을 둔 사안은 충청권 공략이다.
자료에 따르면 “충청권을 양분하지 못한다면 (대선) 승리는 어렵다. …중략… 충남권에서는 심대평 지사와의 관계를 유지하는 한편 정운찬 전서울대총장과 연대가 필요하다”고 했다.
참모들은 노 대통령의 신행정수도와 이명박 전서울시장의 청계천 프로젝트와 같은 대형 미션을 준비하고 있었다.
로드맵에는 열린우리당 이탈자가 극소수 이하로 한정될 경우에 대비해 ‘고건 대세론’ 띄우기 전략도 구상하고 있다.
고 전총리측은 노 대통령은 충청권이나 영남권 인물을 물색하는 한편 정동영, 김근태 양자와 당 붕괴를 막는데 동의할 것으로 전망했다. 이 경우, 대세론을 형성하기 위해 독자신당 창당 또는 국민후보로 대선에 출마해야 한다는 전략을 갖고 있었다.
2단계 로드맵에 따르면 “국민후보 형식의 출마를 위해 자금, 제3의 후보 출현 가능성, 정치인 규합, 후보단일화 단계 예측, 위기관리 등 몇 가지 문제점을 보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특히 “몇 개월에 걸친 대선을 치르자면 예기치 않은 사태를 만나 지지도가 떨어지는 등 위기를 맞을 수 있다. 정당 후보는 당이라는 큰 힘이 버텨줄 수 있지만 느슨한 형태의 국민후보는 상대적으로 더 힘이 들 수밖에 없다”고 진단했다. 실례로 지난 1997년 이회창 후보, 2002년 노무현 후보가 겪었던 후보교체론을 거론했다.
후보단일화 구체적 전략 수립
눈에 띄는 대목은 후보단일화 전략의 수립에 있다.
일정기간 동안 고건, 한나라당 후보, 열린우리당 후보, 민노당 후보의 4파전 양상이 치열하게 전개되고 나면 비한나라당 진영의 후보단일화가 필연적이라고 본 것. 오는 10~11월로 예상되는 후보단일화 작업을 위해 여론조사 전략을 세우라고도 했다.
한편, 고 전총리가 대선 불출마 선언으로 인해 로드맵은 ‘휴지 조각’이 됐지만, 제3의 국민후보가 등장할 경우 고 전총리의 전철을 밟을 것으로 보여 더욱 주목된다.
#“부패추방 위한 개혁 정당 추진”
고건 전국무총리는 임기 4년의 정부통령제와 4년 중임제 개헌안을 대선 공약으로 검토하고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고 전총리측이 작성한 ‘국민통합신당 골격’ 자료에 따르면 중도실용개혁정당으로서 당의 이념과 노선을 결정하고 개헌 등의 대선 공약사항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신당 자료에는 당의 이념과 노선으로 ▲중도, 실용, 개혁주의에 입각한 실사구시 ▲극좌, 극우를 배제한 중도대통합 ▲세계 10대 경제강국을 목표로 하는 경제성장 노선 등을 제기했다.
이들이 구상했던 신당은 기존 정당과의 차이를 분명히 하고 있다. 미국식 원내정당을 지향하고 부패 방지의 제도화를 중점사안으로 다루고 있다. 또 대통령과 당정의 유기적 협력 제도화, 공천제도 등도 기존 정당과 달리 운영할 방침이다.
신당의 기본 정책은 개혁적인 내용이 많았다. 당헌의 내용에는 대통령을 당 최고고문으로 위촉, 정무장관제 도입, 부패방지위원회 설치, 사무총장 및 대변인제 폐지 등이 포함돼 있다. 감사원 폐지, 국회 회계 감사기구 설치, 기초단체 공천제 폐지, 주민소환제의 국회의원 확대 등에서 정치에 대한 개혁 의지를 읽을 수 있다.
김대현 suv15@dailysu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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