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흥 안동고분서 5C유물 ‘다량출토’
고흥 안동고분서 5C유물 ‘다량출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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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6-04-04 09:00
  • 승인 2006.04.04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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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흥군에서 5세기 초 무렵에 축조된 것으로 추정되는 한 대형 고분에서 금동관과 금동신발, 동경(銅鏡), 환두도(環頭刀·둥근고리가 달린 칼)를 비롯한 유물이 다량으로 나왔다.이는 이 무렵 고흥반도 일대에 대규모 정치세력이 존재하였음을 암시하고 있는 것으로 이 시기의 역사적 실체에 대한 새로운 연구 과제를 던져주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지난 24일 전남대박물관(관장 임영진)에 따르면 지난달 14일 이후 고흥군 포두면 길두리 877-2번지 소재 ‘안동고분’을 조사한 결과, 석실(石室·돌로 만든 무덤방) 안에서 이같은 유물들을 발견했다.금동관은 뒤쪽에 반구형(半球形) 장식을 매달고 있으며, 전체적인 형태는 전북 익산 입점리 고분 출토품과 흡사하나 문양은 투조문이라는 점에서 타출문인 입점리 유물과는 다르고, 충남 서산 부장리 출토품과 통하고 있다고 조사단은 말했다.

금동신발은 훼손이 극심해 전모 확인은 불가능하나 바닥에서 원주 법천리 고분군 제1,4호분 출토품과 유사한 T자형 투조문이 확인됐다.동경은 지름 10.5㎝ 크기로, 중앙에 자리잡은 원형 뉴(꼭지)를 박쥐를 닮은 작은 뉴 4개가 감싸고 있다. 작은 뉴들 사이에서는 자손들이 길이 번창하라는 의미인 ‘장의자손’(長宜子孫)으로 추정되는 글자가 보이고 있다. 또 동경 테두리 부근을 돌아가면서 안쪽을 향한 8개의 괄호 모양 무늬인 연호문(連弧紋)이 있으며, 그 사이에서도 판독이 쉽지 않은 8글자가 나타났다.

이 ‘연호문경’(連弧文鏡)은 중국에서 제작연대가 후한(後漢) 희평(熹平) 3년(서기 174)인 같은 종류의 동경보다 약간 앞서는 서기 2세기 중엽 무렵에 제작됐을 것으로 추측된다. 이밖에도 안동고분에서는 환두도 3점과 쇠창 2점, 금귀고리 1쌍, 갑옷, 투구, 쇠도끼, 방추차, 유리 소옥, 쇠화살촉 등도 출토됐다.조사 결과 안동고분은 지름 약 34m, 높이 약 6m에 이르는 봉토를 갖춘 원형분으로서 전남 남해안 지역에서는 최대급 고분에 속한다. 구릉 정상부 땅을 깎아내 무덤을 조성했으며 그 주변은 편평하게 땅을 다졌다고 추정되고 있다.

이 지역 고분에서는 대체로 보이는 주구(周溝·도랑)는 확인되지 않았다. 석실은 길이 320㎝, 너비 150(동)~130㎝(서), 깊이 130㎝인 사다리꼴이었다. 석실은 동서 방향으로 놓여 있었는데 먼저 서벽과 북벽을 함께 축조하고 나중에 동벽과 남벽을 함께 만든 것으로 밝혀졌으며 각 벽은 가공한 판석을 벽돌 쌓듯이 축조했다.

덮개돌은 3장의 대형 판석을 이용했으며 석실 주변에는 깬돌들을 여러겹 덧대어 보강했다.임영진 관장은 “출토 유물로 보아 고분은 5세기 초반대에 축조된 것으로 보이며 이는 이 시기에 고흥반도 일대에 대규모 정치세력이 존재하였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며 “그 역사적 실체에 대한 새로운 연구 과제를 제시하고 있다”고 말했다.이 고분은 약 40년 전에 도굴 당했다고 알려져 있었으나 조사 결과, 도굴 시도는 이뤄졌으나 실패한 것으로 밝혀졌다.<무등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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