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절시비, “박진영 사과 받아주려 했었다”

척박한 한국 R&B를 지탱하고 있는 김신일(39)은 실력과 인기가 가장 반비례하는 싱어송라이터 중 하나다. 30장에 가까운 앨범 프로듀싱 작업과 4장의 정규·기획 앨범을 냈지만 그를 아는 대중은 많지 않다. 숨겨진 국내 명반을 찾는 리스너들이나 다양한 음악을 듣는 마니아들은 김신일에 열광하고 있지만, 본인은 음악성과 대중성의 교차점을 넓히기 위해 끊임없이 고민하고 있다. “낯설고 어렵다”고 여기는 이들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것이 그의 목표. 국내 O.S.T 사상 가장 아름다운 음반으로 분류되는 ‘Fair Love’(페어러브), 평단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은 정규 1집 ‘Soul Soul Soul’의 주인공 김신일을 인터뷰 했다. 김신일은 인터뷰 내내 자신의 음악세계와 아이돌, 엔터테이너에 쏠린 가요계의 현실을 가감 없이 말했다.
Q: 정규 1집 ‘Soul Soul Soul’(소울 소울 소울)수록곡을 노래방에서 부르고 싶었는데 없더라.
A: 따라 부르기 어려워서 없는 것 같다. 나뿐만이 아니라 노래방의 특성상, 음악성을 추구하는 뮤지션들의 곡들은 별로 없을 거다. 흔히 찾는 곡 위주로 업데이트를 할 테니까
Q: 노래 부를 때의 목소리와 창법이 특별하다. 자신의 목소리가 ‘어떻다’ 정의 내릴 수 있나.
A: 사실, 부르는 나조차도 아직 명확하게 파악하지 못한 것 같다.
Q: 평론가들은 전통적인 소울과 가스펠 창법이 뛰어나다고 말하던데
A: 그건 단지 내가 그렇게 배웠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멘토들에게 레슨을 받아 지금과 같은 창법, 바이브레이션을 구사하게 됐다.
Q: R&B의 생명은 블루스적인 ‘Feel’에 달려있다고 들었다. 최고의 R&B는 그 Feel이 타고난 가수들만이 가능할까.
A: 꼭 그런 것은 아니다. 버클리 음악대학의 흑인 교수들의 가르침을 전하자면, 교육과 트레이닝을 통해서 배울 수 있다. 하지만 다들 그럴만한 마음의 여유가 없어 보인다.
Q: 보컬에 있어서 김신일의 강점은 ‘정제되지 않았다’, ‘원초적인 매력이 있다’는 것이다. 이런 날것의 느낌을 내고 싶어 하는 실력자들이 있을 텐데, 방법이 있나.
A: 대부분 목소리로 노래를 부른다고 생각하는데 진짜 노래는 머리와 가슴으로 부른다. 목소리로만 풀려고 하면 모창밖에 안 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많은 음악을 듣고 고민하고 공부해야 된다. 이런 노력이 수반되면 자기 색깔에 대한 욕구는 풀릴 듯하다. 처음에는 느낀 대로, 그 다음에는 배운 대로, 마지막에는 자유로워지는 게 뮤지션의 순서다. 덧붙여 말하자면 보컬의 색깔은 살면서 변할 수도 있다. 인생의 굴곡이 노래를 통해 나타나는 거다. 예를 들어 미국 영화배우 미키루크의 경우 꽃미남 배우의 대명사였는데 많은 일을 겪으면서 개성파 배우로 변하지 않았나.
Q: 성품과 실력의 연관성이 궁금하다. 예를 들어 배려심, 동정심 등 좋은 마음이 좋은 곡을 만드는데 중요하다고 보나.
A: 예술가는 일반적인 선과 악의 탐구보다는 ‘신이 있나, 없나’에 대한 고민이 더 필요하다고 본다. 간접적이든 직접적이든 말이다. 예술가들의 작품은 선과 악에서 자유롭다. 신의 영역에 가장 가까이 가는 게 예술가들이라고 생각한다.
Q: 정규 2집 진행상황은
A: 싱글앨범과 2집을 함께 작업하고 있다.
Q: 앞으로 나올 2집은, ‘Soul Soul Soul’앨범과 어떤 차이가 있을까.
A: 돌이켜보면 과거에는 좀 바보같이 작업을 했다는 생각도 들었다. 감상하는 음악과 따라 부를 수 있는 음악의 접점을 찾는 데 실패했으니까. 하지만 이제는 그 둘을 만족시키는 방법은 터득한 것 같다. 2집 때는 이 점이 어느 정도 반영되지 않을까.
Q: 완성돼 가지고 있는 곡이 얼마나 있나
A: 습작해 놓은 곡까지 치면 800개 가까이 된다. 맘에 들지 않아서 쓸 생각은 없다.
Q: 아이돌 또는 유명 뮤지션의 피처링 참여를 고려해 본적이 있나, 앨범 인지도에 도움이 될 것 같은데
A: 피처링 같은 경우는 인지도가 있는 뮤지션들이 더 자유로울 거다. 그리고 내가 좀 고지식한 면이 있어서 그런지 내키지 않는다. 고정 팬들의 바람 같은 것도 있으니까.
Q: 다른 프로듀서와의 공동 작업은 어떤가
A: 국내에도 세계적인 프로듀서가 많지만, 아직까지 내 색깔과 맞는 이들을 찾지는 못했다.
Q: 정규 1집 ‘Soul Soul Soul’을 낼 당시 앨범 홍보에 대한 방향이 있었나
A: 지금은 좀 나아졌지만, 1집을 낼 때만 해도 아이돌 음악이 라디오까지 점령한 상태였다. 홍보에 대한 다각적인 분석이 있었던 것은 아니고, 앨범이 완성됐기 때문에 발매했다.
Q: 네이버 ‘오늘의 뮤직: 이주의 발견-국내’에서 처음 앨범을 접했다. 그때 이후 관심도를 보면, 좋은 음악에는 사람들이 모일 거라 생각했는데 아니더라.
A: 1집은 아이돌 밴드 ‘버즈’의 매니저였던 동생이 프로모션 했는데, ‘브라운아이드소울’ 출신의 정엽도 함께했다. 정엽이야 지금은 MBC ‘서바이벌 나는 가수다’로 인기를 얻고 있지만 당시에는 나와 비슷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 매체 등에서 자신의 정규 앨범 ‘Thinkin' Back On Me’에 대해 물어봐야 되는데 나얼, 윤건 얘기만 질문하니까. 우리나라 가요계는 외형적인 조건으로 음악을 판단하거나 편견을 고집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새 앨범이 5~6년 후에 조명되는 경우도 꽤 있다.
Q: 매체 홍보 이외의 소극장 콘서트 등의 라이브 무대 활동은 어떤가
A: 모르는 사람들은 쉽게 얘기하는데 소극장이 종합운동장보다 돈이 더 들어간다. 소극장에서 일주일을 공연하려면 4000만 원이 든다. 하드웨어, 세션맨(Session Musician), 프로모션까지 추가하면 6000~7000만 원이 든다. 그래서 이제는 들국화, 김현식처럼 데뷔전부터 소극장 공연으로 인지도를 얻는 경우가 불가능하다. 하지만 유명한 뮤지션에 한해서는 소극장 측에서 돈을 요구하지 않는다.
Q: 소극장 측에서 지원해주지 않는 이유는, 객석을 채우지 못한다고 보기 때문일까.
A: 과거(포크송, 락 음악의 전성기)에는 대중들이 찾아다니면서 아날로그적으로 음악을 접했다. 그런데 지금은 방송에서 충분히 접한 후에 유명 연예인쯤 돼야 공연장을 찾는다. 음악으로만 사람들의 발길을 인도하기는 힘들어졌다.
Q: 1집을 좋아하는 팬들도 적지 않다. 이들은 “이런 게 R&B, 소울의 맛이구나”와 같은 반응을 보인다. 대중성을 어느 정도 섞는데 성공했다고 해석해도 될 것 같은데
A: 그렇게 봐주면 너무 고맙다. 대중적인 취향을 염두 하면서 만들었으니까. 1집 작업 당시 R&B, 소울적인 느낌을 더 강조하려고 했다. 하지만 이해하지 못할 것 같아 콘셉트를 수정했다.
Q: 비슷한 또래, 비슷한 경력의 뮤지션 중 눈여겨보는 이들이 있나
A: 깊이 알고 지내는 뮤지션이 많지는 않다. 바비 킴, 윤도현, JK 김동욱처럼 나와 같은 고민을 나누고 있는 이들은 몇몇 있다.
Q: 영화와 책을 통해서도 작사, 작곡의 영감을 많이 얻는 편인가
A: 가사의 경우, 잘 써진 시나리오, 영화를 보고 좋은 느낌을 얻기도 한다.
Q: 음악 감상을 많인 하는 편인가.
A: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많이 듣는다.
Q: 영화 ‘페어러브’는 시나리오가 맘에 음악감독 자리를 수락했나.
A: 그렇다. 사실은 나 이전에 다른 음악감독이 있었다. 하지만 그 분이 감독과의 트러블 때문에 관두었고 내게 오퍼가 왔다.
Q: 페어러브의 O.S.T는 ‘사운드 트랙의 새로운 시도’라고 들었다. 이런 콘셉트는 어떻게 정해진 건가
A: 대부분 O.S.T가 추구하는 클래식하고 유럽적인 느낌과 차별을 두고 싶었다. 들어보면 알겠지만 영국 모던락 풍의 음악이 특징이다.
Q: 버클리 음악대학을 나왔는데 전공과목이 ‘재즈기타 퍼포먼스’다. 어떤 학과인가.
A: 현재는 바뀌었지만 과거 버클리 음대는 연주자 중심의 학교였다. 학교 분위기도 연주를 전공하는 사람들을 더 높게 쳐주는 성향이 짙었다. 연주학과로 졸업하는 것이 더 어렵다는 얘기를 들었지만 도전해보고 싶은 마음에 ‘재즈기타 퍼포먼스’학과를 선택했다. (버클리 음대는 미국 내 재즈학교 중 가장 유명하며 뛰어난 뮤지션을 많이 배출하고 있다.)
Q: 당시 1집에 대해 소수의 평론가들은 ‘특별히 맛있는 것이 없다’, ‘정교함이 아쉽다’, ‘열 받은 프로듀서의 전형적인 실력 발휘’라는 평가를 내렸다. 일부 동의하나.
A: 합리적으로 생각했을 때 맞지 않으면 냉정하게 듣지 말아야 된다고 본다. 유명 외국 뮤지션과 함께 지낸 적이 있는데 그들도 들을 얘기만 듣더라. 일부 평론가들은 가끔 자신들이 무슨 얘기를 하는지도 모르고 한다는 느낌이 든다.
Q: 프로 뮤지션·프로듀서가 되기까지의 과정은 어땠나
A: 1990년에 미국으로 넘어가서 1998년에 돌아왔다. 돌아오자마자 군입대 했고 제대한 후 본격적으로 도전했다. 처음에는 프로듀서가 될 마음이 없었다. 뮤지션이 되고 싶어 데모 테입을 들고 음반 기획사 문을 두드렸다. 하지만 “그 얼굴로 음악 하겠나”, “수술해라”라는 소리만 들었다. 별별 소리를 다 들은 것 같다. 기억해보면 그 당시는 서태지 후폭풍 시기였는데 엄청나게 많은 아이돌이 쏟아져 나오던 때였다. 음악성을 추구하는 싱어송라이터 입장에서는 암흑기로 봐도 무방했다. 힘든 마음에 음악을 관둘까도 하다가 10년을 공부한 게 아쉬워서 작곡가로 전향했다.
Q: 프로듀서로의 첫 작품은 뭐였나
A: 지영선의 ‘사랑’ 앨범에 실린 ‘가슴앓이’란 곡이다. 이 곡은 컨필레이션 앨범 ‘연가’에 수록돼 많은 인기를 얻기도 했다.
Q: 당시 아이돌 음악에 대한 시선은 대부분 “음악성이 전무하다”, “10대들이나 좋아하는 음악”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그동안 댄스 그룹, 아이돌 음악도 발전하지 않았나.
A: 전혀 그렇지 않다. 최근 아이돌 그룹이 세계 속에서 한류 열풍을 주도하고 있다지만 뮤지션으로서 인정받고 있는 것은 아니다. 단지 그런 이미지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것에 주목할 뿐이다.
Q: K-POP 한류에 거품이 꼈다고 보나
A: 서양 문화권에서는 일본 애니메이션을 필두로 아시아 대중문화, 아시아 여성에 대한 호기심이 있다. 이런 것들의 충족 차원으로 관심을 받지만 음악성이 결여돼 있다면 반짝하고 사그라질 수밖에 없다. 물론 음악 강국인 미국, 유럽도 과거보다 문화가 가벼워졌기 때문에 상업음악도 많이 듣는다. 그러나 음악성에 대한 인정과는 별개다.
Q: 원더걸스에 이어 소녀시대가 새 앨범 ‘The Boys’로 미국 시장에 도전한다. 성공 못한다고 보나.
A: 성공할 수가 없다. 미국에서 오랫동안 음악을 공부한 경험으로 비추어볼 때 호기심 또는 걸 그룹의 선정성과 관련된 성적 만족감을 해소하는 정도다. 딱 ‘귀엽다’ 수준이다.
Q: 몇몇 아이돌의 앨범은 음악적인 가치 측면에서도 인정을 받는 것 같은데
A: 포장만 멋있게 변한 거다. 트렌드만 끊임없이 변할 뿐 음악계에 발전을 준 게 아니다. 음악성은 ‘예술이냐 아니냐’로 판가름 난다. 그리고 예술은 영속성이 있어야 한다. 음악적으로 접근하면 블루스나 리듬의 카타르시스적인 존재 여부로 볼 수도 있다. 스티비 원더의 앨범이 1970년대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사랑 받는 것처럼 내가 가진 음반을 자식들에게 물려줘도 들을 수 있어야 한다는 거다. 가요 프로그램 1위를 차지했던 곡들도 쉽게 잊혀지고 있지 않나. 그래서 2008년에 나온 내 앨범이 아직도 매달 10장, 2~3장이라도 팔리는 사실이 나는 고맙다. 물론 대중들의 기호에 충실한 가수, 그들의 음악이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스타’를 꿈꿀 수도 있으니까. 단지 음악성이 있다고 보지 않는 거다.
Q: 마지막으로 ‘JYP엔터테인먼트’ 대표 박진영과의 표절 시비로 인한 손해배상청구소송의 진행을 알고 싶다.
A: 표절과 관련해 증명해야 하는 주장들은 1차적으로 모두 마쳤다. 담당 판사가 합의 또는 화해를 유도하고 있는 상황이다. 어떤 조건을 내걸고 합의하려는 것인지 들어보고 있다. (김신일씨는 자신이 프로듀싱한 곡 ‘내 남자에게’를 박진영이 ‘Someday’란 곡으로 표절했다고 확신하고 있다)
인터뷰 막바지에 김신일은 음악성을 추구하는 뮤지션으로서의 걱정을 털어놓기도 했다. 알고 있는 유명 뮤지션들조차도 과거 자신이 동경하는 장르를 추구했을 때, 시장으로부터 외면 받았고 더 이상 자신의 원하는 곡을 부르지 않는다는 것. 대중음악에서 대중성은 필연적일 지도 모른다. 두마리 토끼를 쫓는 그의 열정을 지켜보자.
[이창환 기자] hojj@dailypot.co.kr
이창환 기자 hojj@dailypo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