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요서울|장휘경 기자] ‘미혼모’라는 단어에는 부정적인 어감과 함께 미묘한 차별적 요소가 담긴 편견이 깔려 있다. 이러한 시선은 미혼모에게 학업을 유지하거나 직장을 얻는 데 적잖은 불이익을 가하며 많은 어려움을 제공한다. 국가적으로 저출산 대책이 시급한 상황에서 많은 불이익과 비난에도 불구하고 어머니로서의 기본 역할을 당당히 감수하는 미혼모들에 대한 인식개선이 필요한 시점이다.
“큰 죄를 지은 것도 아니고 그냥 아이를 낳아 잘 키우고 싶다는 소박한 바람이 이렇게 냉대를 받을 줄 몰랐어요. 더욱 걱정되는 것은, 이 싸늘한 시선이 나중에 내 아이에게 고스란히 돌아갈 수 있다는 사실이에요.”
박유정(가명ㆍ20세ㆍ여)씨는 원치 않은 임신을 한 이후 많은 고민을 하다 아이를 낳아 키우기로 결심했다. 다음 달 출산 예정인 김 씨는 자신을 향하는 주위의 염려와 편견 어린 시선을 감당키 어려웠지만 뱃속의 생명을 죽일 순 없다는 생각에 미치자 결심을 굳혔다. 아이의 아빠는 임신 소식을 듣자마자 무책임하게 그녀를 떠났다.
어릴 적 부모님을 여의고 혼자인 김 씨는 다행히 미혼모시설에 입소해 도움을 받고 있지만 출산 후 경제적인 문제 등으로 막막한 건 사실이다.
하지만 경제적인 문제보다 더 힘든 것은 주위의 따가운 시선이라고 김 씨는 고백한다. 그녀를 바라보는 지인들의 시선은 예상보다 훨씬 냉혹했다는 것.
저출산 시대에 접어들면서 출산을 장려하는 목소리가 높지만 미혼모에 대한 우리 사회의 편견은 여전하다. 통계청이 발표한 ‘2015년 인구주택 총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 미혼모의 숫자는 2만4487명에 이른다. 곱지 않은 사회적 시선 탓에 스스로의 존재를 드러내기 꺼린다는 점을 감안하면 실제 미혼모 수치는 통계청 조사에서 나타난 수치보다 훨씬 더 높을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관측한다.
사회적 인식개선 시급
미혼모들은 문란한 성가치관을 가졌거나 행동거지가 바르지 않은 여성이라는 잘못된 인식은 미혼모들을 더욱 위축시키고 있다. 여기에 아이를 키우며 최소한의 기본적인 생활을 할 수 있는 경제적인 토대가 전혀 마련되지 않고 있다는 점도 심각한 문제로 부각되고 있다.
지난해 여성가족부가 실시한 ‘2015년 한부모 가족 실태조사’ 결과 전체 한부모 가족의 41.5%가 기초생활보장, 차상위 가구 등 저소득층에 속했다. 한부모 가족의 상당수를 차지하는 것이 미혼모 가정이라는 점은 미혼모의 경제적 고충이 심하다는 반증이다.
이와 관련해 정부나 지자체 등 공적 기관을 통한 지원은 미미하다. 현재 ‘한부모가족지원법’에 따라 기준 중위소득 52%인 143만 원(2인 가족 기준) 이하인 가정의 자녀가 12세 미만이면 월 10만 원, 5세 이하면 15만 원의 경제적 지원을 정부 차원에서 하고 있지만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미혼모들의 마지막 피난처라고 할 수 있는 미혼모 시설의 경우도 열악하기는 마찬가지. 시설수도 많지 않을뿐더러 지역 간 편차가 심해 지방의 미혼모는 그야말로 우리 사회의 도움을 거의 받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미혼모 시설은 한국사회가 미혼모에 대한 편견과 차별, 경제적 어려움 없이 자립해 살 수 있는 환경에 이르기까지 꼭 필요한 시설이다.
저출산 해결을 위해 정부가 막대한 예산을 쏟고 있다. 이 가운데 무엇보다 시급한 것은 이미 태어난 아이들이 기본권을 확보해 잘 자랄 수 있는 정책이 고려되어야 하는 만큼 시설에 대한 지원 확충이 절실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선진 복지국가의 사례가 답이다
미혼모에 대한 인식과 지원 정책에서 외국의 사례는 어떨까?
여성 복지가 ‘부엌에서 탁아소까지’ 거의 완벽하게 실시되고 있는 스웨덴에서는 결혼에 관계없이 배우자, 자녀에게 법적으로 동등한 권리를 부여하고 있다. 덴마크에서도 미혼모를 다양한 가족 형태 중 하나로 받아들이고 혼전 임산부나 혼외 출생아에 대해 비난하거나 사회적 낙인을 찍지 않는다. 이러한 인식 아래 미혼모들에게 차별이 전혀 없는 각종 지원정책을 만들어 시행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빈곤층 한부모를 대상으로 하는 정책으로 TANF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으며, 가까운 일본도 미혼모와 그 자녀를 위해 ‘모자 및 과부 복지법'을 제정해 지원하고 있다.
미혼모를 바라보는 선진국의 시각과 그 나라에 발달한 복지제도의 유형에 따라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미혼모와 사생아에 대한 처우는 우리나라와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훌륭한 체계를 갖추고 있는 것.
특히 미국의 경우 ‘미혼모’의 부정적인 의미를 줄여 ‘편모(single parent)’라는 단어를 쓰고 있다. 북유럽의 복지국가들도 이혼녀와 미망인들까지 포함하는 포괄적 개념인 ‘독신모(single mother)’ 혹은 ‘무의탁모(unsupported mother)’라는 단어를 사용함으로써 미혼모들에 대한 차별을 원천적으로 없애고 있다.
지난 2008년 출판된 이옥수 작가의 소설 <키싱 마이 라이프>는 평범한 열일곱 살 소녀가 미혼모가 되면서 겪게 되는 우리 시대 미혼모들의 아픔과 함께 청소년들의 성과 고민을 그려 낸 수작이다.
작가는 십대 미혼모라는 주제를 다루면서, 그것이 어느 한쪽의 일방적인 잘못 때문에 생겨난 일이 아니라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임을 강조했다. 또한 작가는 이 책을 통해 우리 시대 미혼모들에게 주위의 따가운 시선과 함께 어떤 어려움이 닥치더라도 아픔을 이겨내고 자신의 삶을 사랑할 것을 당부하고 있다.
장휘경 기자 hwikj@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