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국민 여동생’은 싫어요!”

문근영이 SBS 드라마 스페셜 <바람의 화원>으로 안방극장에 돌아왔다. KBS 2TV <아내> 이후 무려 5년 만. 그 사이 소녀에서 숙녀가 된 문근영은 조선시대 천재화가 ‘신윤복’으로 분해 한결 성숙한 외모와 연기력을 보여준다. 남장과 동성애 코드를 소화하고 박신양과 멜로라인도 형성한다. “더 이상 ‘국민 여동생’ 호칭은 필요 없다”는 문근영을 만났다.
“이번 작품하면서 그림 실력이 늘줄 알았는데 달리기 실력이 늘었어요.(웃음)”
요즘 문근영은 ‘달려라 근영’으로 지낸다. <바람의 화원>에서 워낙 뛰는 장면이 많아서다. 이정명 작가의 동명소설이 원작인 <바람의 화원>은 조선시대 천재화가 김홍도와 신윤복의 삶과 사랑을 그림 중심으로 풀어낸 팩션 드라마. 극중 문근영은 아버지의 죽음에 얽힌 비밀을 풀고 마음껏 그림을 그리기 위해 남장여자로 살았던 비운의 인물 ‘신윤복’을 연기한다.
아버지 죽음 비밀 푸는 여장 남자
“윤복이는 슬퍼도, 화가 나도 뛰어요. 덕분에 저도 주변사람들한테 드라마 끝나면 마라톤 나가야 할 것 같다면서 뛰고 있어요.(웃음) 많이 뛰고 밥도 잘 못 챙겨 먹고 밤샘 촬영을 하다 보니 살도 빠졌어요.”
달리기만이 아니다. 신윤복 역을 소화하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산을 넘어야 한다. 그림 공부는 기본, 남장은 필수다. 동성애 연기도 있다. 이런 점 때문에 출연을 망설였을 것 같지만 오히려 문근영은 “윤복이 쉽지 않은 캐릭터라 <바람의 화원>을 선택”했다고 말했다.
“윤복 역할에 도전하고 싶었고 호기심도 생겼어요. 쉽지 않은 걸 풀었을 때 성취감이 더 크잖아요. 나이 들어서보다 조금 어리고 젊을 때 어려운 역할을 맡아서 헤매기도 하고 틀려도 보는 게 맞는 거 같아요.”
만만치 않은 윤복 역을 위해 철저한 준비를 한 건 물론이다. 촬영 2~3개월 전부터 동료배우들과 동양화, 서예 등을 배웠고 도산서원이 있는 안동에서 3박4일간 합숙하며 전통 생활양식도 몸에 익혔다.
지난 3월 촬영에 돌입한 후부터는 ‘남자 연기’에 초점을 맞췄다. 남자 같은 말투와 행동, 표정 연출에 신경을 썼고 훈련으로 목소리도 남성화 시켰다. 일자눈썹도 일부러 다듬지 않았다. 인터뷰 도중 류승룡, 배수빈, 이준 등 남자배우들을 자기도 모르게 “형”이라 불렀다. “행동과 말투가 점점 남자처럼 된다”는 문근영에게서 연기 열정이 느껴졌다.
“소리 지르는 감정신이 많은데 그때도 굵은 목소리를 유지하려고 힘을 주니까 목이 성할 날이 없어요.(웃음) 윤복은 남자로 살아온 인물이기 때문에 남장연기가 아니라 그냥 남자를 연기한다는 마음으로 촬영에 임하고 있어요.”
문근영은 윤복을 사랑하는 기생 정향(문채원)과 동성애 코드도 선보인다. 윤복이 정향의 몸을 손으로 만져 그 느낌을 화폭에 담는 장면에서의 연기는 대담하면서도 섬세하다. 동성애 연기가 힘들지 않았을까 싶지만 사랑에 관해 열린 생각을 가진 문근영의 대답은 “NO”.
“사랑할 때 나이나 성별, 국적 등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해요. 그러다보니 동성애 연기도 싫다는 느낌은 없었어요. 다만 사랑에 관한 연기는 늘 설레고 여자와 촬영했지만 은밀한 장면인 만큼 긴장감이 있긴 했죠.”
문근영은 이번 드라마에서 ‘김홍도’ 역의 박신양과 멜로라인도 형성한다. 스승과 제자로 만나 연인으로 발전하는 두 사람의 관계는 <바람의 화원>의 재미 중 하나. 무려 19살의 나이차가 나지만 화면 속 박신양과 문근영은 의외로 잘 어울린다.
문근영은 박신양과의 호흡에 대해 “워낙 선배라 처음엔 어려움이 있었는데 촬영하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서로를 이해하게 됐다. 지금은 편하고 재미있다”며 만족감을 나타냈다. “박신양을 비롯한 선배 배우들에게 많은 걸 배우고 예쁨 받아서 감사하고 행복하다”는 말도 덧붙였다.
2003년 KBS 2TV <아내> 이후 <댄서의 순정> <사랑 따윈 필요 없어> 등 영화에만 출연한 문근영에게 5년만의 드라마 작업이 마냥 즐겁다면 거짓말. 처음엔 많은 등장인물, 빡빡한 일정, 콘티 없는 촬영 등이 어렵고 답답해서 짜증이 나기도 했다.
<명성황후> <가을동화> 등 이전엔 아역을 맡아 “촬영장이 재미있는 놀이터”였지만 이번엔 주연인 만큼 부담도 적지 않았다. 다행이 지금은 적응해서 밤샘 촬영을 해도 아무렇지도 않고 <바람의 화원>이 가진 매력도 누구보다 잘 파악하고 있다.
“우리 드라마는 그림이 중심이라 동양화를 보는 재미가 쏠쏠할 거예요. 미스터리, 멜로, 추리 등 원작 소설에 담긴 다양한 장르적 재미도 자연스럽게 살리려 하고 있고요. 무엇보다 ‘좋은 작품을 만들 수 있다’는 배우와 스텝들의 열정을 느끼실 수 있을 거예요.”
‘국민 여동생’ 호칭은 김연아·원더걸스에 물려줘야
<바람의 화원>을 통해 다양한 매력과 성숙한 면모를 보여줄 문근영은 ‘국민 여동생’ 타이틀(?)에도 미련을 두지 않는다. 피겨스케이트 선수 김연아와 아이돌 그룹 원더걸스에게 그 자리를 넘겨주고 열심히 배우의 길을 갈 계획이다.
“이제 호칭 따위는 필요 없어요.(웃음) 저도 김연아 선수와 원더걸스를 무척 좋아하는데 그렇게 귀엽고 멋진 친구들에게 ‘국민 여동생’ 호칭이 더 잘 어울리는 것 같아요. 다만 제가 이제 더 이상 ‘여동생’으로 불릴 나이가 아니라는 게 섭섭하긴 해요.(웃음)”
신혜숙프리랜서 기자 tomboyshs@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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