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통시장의 혼란만 가중시키는 정가제들
소비자들 “싸게 파는 걸 제재” 의문 제기
[일요서울 | 오유진 기자] ‘단통법’(단말기 유통구조 개선법)에 빗대어 생겨난 신조어 ‘아통법’(아이스크림 가격 정찰제), ‘책통법’(도서정가제)에 대한 소비자들의 불만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이 법들의 공통점은 과도한 할인경쟁으로 발생하는 유통시장의 혼란을 막고자 생겼다. 하지만 소비자들은 자율경쟁을 통한 가격 형성이 ‘하향평준화’가 아닌, 정부가 담합을 주도해 가격이 ‘상향평준화’됐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이에 일요서울은 현재 실시되고 있는 ‘아통법’, ‘책통법’이 유통시장의 안정화에 얼마나 기여하고 있는지, 소비자들의 불만은 무엇인지 들여다봤다.
아이스크림의 가격은 2010년 7월 ‘오픈프라이스(최종 판매업자가 실제 판매 가격을 표시하는 가격제도)’를 도입하면서 ‘1+1’, ‘50% 세일’, ‘1000원에 3개’ 등의 문구가 등장했다. 이런 문구가 생긴 것은 대형 유통업체들이 싼 값에 아이스크림을 받아 싸게 판매하는 ‘박리다매’ 전략 때문이다.
영세 소매점들은 대형 유통업체들과의 경쟁에 밀려 매출에 타격을 입었고, 이에 정부는 과도한 할인 경쟁 때문에 유통 시장이 교란되고 있다며 6년 만인 지난 8월 가격 정찰제를 도입했다.
하지만 ‘아통법’을 두고 소비자들의 불만은 거셌다. 가격 정찰제 도입 당시 누리꾼들은 “올리는 걸 제재하는 게 아니라 싸게 파는 걸 제재하는 나라가 있나?”, “날도 더운데 소비자 입장도 좀 생각해 주면 안 될까” 등 전기 누진세로 인한 성난 민심을 아이스크림으로도 못 추스른다며 반발했다.
‘아통법’ 실효성 의문
추위가 다가오자 아이스크림 정찰제에 대한 관심은 줄었다. 하지만 여전히 ‘아통법’의 실효성은 의문점을 남기고 있다.
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는 지난 10월 20일 보도자료를 통해 서울 시내 아이스크림 판매 가격이 유통업소별로 최소 2배∼최대 3배나 차이난다며 아이스크림정가제 도입 이후에도 소비자 혼란을 가중시키고 있다고 주장했다.
보도자료에 따르면 지난 9월 기준 서울시 유통업소 300곳의 아이스크림 판매 가격은 같은 제품이더라도 구매 업소에 따라 2배에서 3배, 최대 3250원 더 비싸게 판매되고 있었으며 천차만별의 가격에 소비자들은 비교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어느 가격이 적정한 가격인지 알 수 없어 혼란을 겪고 있다. 빙과업체들이 투명한 가격을 위해 ‘권장소비자가격 표기 확대’를 시행했지만 여전히 소비자 간 차별이 심한 것.
이런 논란에 대해 롯데제과 관계자는 “(아이스크림 가격 정찰제가) 정상적인 상거래가 이뤄질 수 있도록 하면서, 붕괴되어 있는 유통시장을 정상적인 위치로 돌아갈 수 있게 한 제도”며 “반발하는 분들이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대부분 바뀐 가격제에 대해 수용을 하고 그분들도 가격 정상화에 대해 공감 하고 있다. 가장 많이 공감한 것은 ‘소비자’다”고 주장했다.
또 그는 “그동안 (아이스크림 가격에) 불신이 많았다. 가격구조가 어떻게 돼 앞집과 뒷집 가격이 다르냐는 등의 의문이 많았다. 문제가 많았던 부분에 이런 법이 시행된 것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고 말했다.
자율 경쟁의 붕괴로 ‘상향평준화’ 되는 것 아니냐는 의견에 대해 이 관계자는 “자율경쟁도 계속해서 일어나리라고 본다. 점주 분들의 노력에 의해서 일어나지 공급되는 가격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큰 차이가 없다. 전에 가격을 붙이지 않았기 때문에 가격을 붙여서 소비자들이 투명하게 이해할 수 있다. 그 부분이 바뀐 거다”며 “점주 분들이 가격을 동일하게 하지 않고 스스로 가격을 내려왔던 거다. 가격이 투명하게 가면서도 점주 분들이 자율경쟁을 통한 ‘진정한 경쟁’을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도서정가제는 2014년 4월 국회를 통과하며 2014년 11월 21일부터 전면 시행됐다. 과도한 할인을 막아 출판 생태계를 바로잡고 동네서점을 살리는 것이 주요 목표다. 그러나 소비자들은 할인율이 줄고 정가제 적용 대상이 늘어남에 따라 도서구입비가 증가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개정 이후 모든 도서는 가격 할인과 간접할인을 포함해 정가의 15% 이내로 조정됐기 때문이다.
도서정가제 편법 성행
시행 직전까지도 실효성 논란이 끊이지 않았던 도서정가제는 현재도 구설수에 오르고 있다.
한 예로 온라인 서점에서 책을 구입할 때 판매가 할인율 10%와 회원 포인트 5%로 15% 할인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실제 책을 온라인 서점을 통해 구입하면 제휴 카드 결제 할인으로 추가 할인금액이 붙는다. 도서정가제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앞서 출판유통심의위원회는 2015년에 카드사 등 서점, 출판사가 아닌 제3자가 할인 비용의 100%를 부담해야 정가제 위반이 아니라고 의결한 바 있다.
그러나 대형 서점의 경우 할인 비용의 50%를 자체 부담하고 있었다. 연 매출 1000억 원이 넘는 기업의 경우 카드사와 제휴카드를 출시할 때 할인되는 비용의 50%를 기업이 부담하게 돼 있다. 그렇지 않으면 금융감독원의 카드 승인이 이뤄지지 않으며 카드사의 경영 부실을 초래할 위험이 있어서다.
또 문화체육관광부 주도 아래 지난 1월 출시된 문화융성카드가 발행됐다. 그러나 지역 서점을 살린다는 취지로 발급된 이 카드는 카드사 할인이라는 편법을 이용해 도서정가제의 취지에 반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문화융성카드는 지역서점에서 책을 구입할 때 15% 청구할인을 해 주는 체크카드로 BC카드에서 출시돼 7000장 넘게 발급됐다.
인터파크 도서 관계자는 “도서정가제 시행 전에 온라인 서점들이 도서 정가제 앞두고 할인 폭을 늘려 일시적으로 매출이 상승했다. 당시 책 구매가 한꺼번에 이뤄졌다. 반면 시행 직후에는 책 판매량이 많이 줄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평균 수준으로 돌아왔다. 지난해 매출과 대동소이한 수준으로 크게 변화는 없다”며 “도서 구매 특성상 한번 구입한 고객은 변하지 않고 있다. 특색 있는 사은품을 통해 신규 독자 유치 등의 방법을 쓰고 있다”고 말했다.
오유진 기자 oyjfox@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