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요서울 | 신현호 기자] ‘최순실 게이트’로 촉발된 검찰의 사정 칼날이 경제권을 휩쓸고 있다. 기업들은 연일 압수수색과 소환조사로 긴장의 연속이다. 금융권과 유통, 게임업계는 물론 문화계까지 사정권에서 벗어나기 어려워 보인다. 칼끝은 최순실을 향하고 있지만 이 과정에서 최 씨와 관계된 기업들에 대한 수사는 한동안 지속될 전망이다.
검찰은 지난달 31일 밤 국정 농단의 몸통으로 지목받고 있는 비선 실세 최순실 씨의 금융거래와 관련, 시중은행을 대상으로 압수수색에 착수했다. 대상은 신한·KB국민·KEB하나·우리·NH농협·IBK기업·SC제일·씨티은행 등 8곳이다. 검찰은 각 은행 본사로 찾아가 계좌 추적을 위한 자료를 요구했다.
은행들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에 따르면 검찰이 정확하게 어떤 건으로 압수수색을 한 것인지 파악이 어려웠다고 한다. 이 관계자는 수사관들이 왔다가 금방 떠났다고 증언하기도 했다.
시중은행 관계자들은 “검찰이 영장을 가져와서 계좌조회를 요청했다” “특정은행이 문제여서가 아니라 전 금융기관을 상대로 자료를 수집한 것으로 안다”고 해명을 내놨다.
하지만 당초 최 씨 관련 자료를 요청했다는 보도와 달리 당시 검찰은 차은택 씨와 법인들의 계좌만 들여다본 것으로 알려졌다. 정작 논란의 당사자인 최 씨와 딸 정유라 씨의 금융거래 내역은 요구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최 씨는 자신이 소유한 강남구 신사동의 한 건물 등을 담보로 국민은행으로부터 약 5억 원의 대출을 받아간 것으로 알려졌다. 최 씨의 딸 정유라 씨에게 KEB하나은행이 특혜대출을 제공했다는 의혹에 대한 관련 자료 요청도 없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최 씨는 지난해 12월 8일 하나은행 압구정중앙점에서 딸 정씨와 공동명의인 강원도 평창에 있는 10개 필지를 담보로 지급보증서(보증신용장)를 받은 뒤 약 25만 유로(3억2000만 원)를 대출받았다. 이를 둘러싸고 지급보증서를 이용해 독일에서 직접 외화를 받은 것은 송금기록을 남기지 않기 위한 편법이라는 의혹이 제기됐다.
차은택 관련회사 압색
게임업계까지 덜덜
검찰은 시중은행 압수수색이 있던 날 국정 논단의 다른 한 축인 차은택 전 창조경제추진단장이 운영하는 ‘아프리카픽쳐스’ 등 3곳을 압수수색했다. 차 씨 관련 다른 회사 ‘엔박스에디트’, 차 씨가 실소유주라는 의혹이 제기된 광고기획사 ‘더플레이그라운드’도 대상에 포함됐다.
검찰의 사정 칼날은 문화계 전반으로 확산됐다. 현재 검찰은 차 전 단장 측의 광고 강탈 의혹과 관련해 포스코그룹 계열 광고회사 포레카 전 대표이사 등을 소환 조사하고 있다. 검찰은 현재 중국에 체류 중인 차 전 단장이 조만간 귀국해 조사를 받을 것으로 보고 있다.
검찰은 지난 3일 포레카 전 대표이사 김모씨와 한국콘텐츠진흥원 입찰 담당 직원 등 2명을 참고인 신분으로 불러 조사했다.
김 씨는 차 전 단장 측과 함께 포레카를 인수한 중소 광고사 C사를 상대로 지분 80%를 넘길 것을 회유·협박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김 씨는 당시 권오준 포스코 회장과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의 이름을 거론한 것으로도 알려졌다.
송성각 전 한국콘텐츠진흥원장도 이 과정에 관여한 것으로 전해진다. 세무조사 등을 언급하며 지분을 넘길 것을 거듭 종용했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검찰은 전날 전남 나주 한국콘텐츠진흥원 사무실과 송 전 원장 주거지 등을 압수수색한 바 있다. 압수수색이 진행되자 게임업계도 심상치 않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송 전 원장은 관련 논란이 불거지자 지난달 31일 사직서를 제출하고 자리에서 물러난 상태다. 차 전 단장의 측근으로 평가받는 송 전 원장은 제일기획 상무로 재직하던 당시 광고감독으로 일하던 차 전 단장 측에게 일감을 줬다는 의혹을 받아왔다.
스포츠 업계 등
전방위 수사 예고
검찰은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에 거액을 모금한 기업 등 전방위적으로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 최순실 게이트 특별수사본부(본부장 이영렬 서울중앙지검장)는 이들 재단에 기금을 낸 53개 기업들을 모두 수사 선상에 올려뒀다.
미르재단에는 16개 주요 그룹 486억 원, K스포츠 재단에는 19개 그룹이 288억 원을 출연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최순실 게이트 수사 여파로 주요 대기업들의 2017년도 사업계획 마련에 비상등이 켜졌다. 가뜩이나 다음해 경제성장이 불투명한 상황이어서 기업들은 대책 마련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더구나 임종룡 경제부총리 내정자의 임명과정이 예정대로 될지 알 수 없고, 부총리에 임명된다 해도 임무를 원활하게 수행할 수 있을지도 미지수라는 평가다.
재계 한 관계자는 “최순실 게이트에 따른 국내 정치 불안 요소와 경제적 불확실성과 겹치면서 상당수 주요 그룹들이 내년도 사업계획 초안조차 작성하지 못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신현호 기자 shh@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