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요서울 | 오유진 기자] 파행을 거듭한 제20대 국회 국정감사(이하 국감)가 여당의 복귀와 함께 힘겹게 시작됐다. 이로 인해 이번 국감은 국민들의 큰 관심을 얻지 못하며 ‘부실국감’, ‘뒷북국감’이라는 오명을 받고 있다. 이런 가운데 ‘예산낭비’, ‘전관예우 특혜’, ‘일감 몰아주기’ 등 날 선 지적으로 관심을 끄는 국정감사들이 있다. 이에 일요서울은 재계로 향한 칼끝을 따라가 봤다.
국감 정상화 첫날인 지난 4일 강원랜드와 자회사인 하이원엔터테인먼트(이하 하이원E), 하이원상동테마파크(이하 하이원T)가 신규사업 발굴 연구 용역에 113억 원을 투입하고도 성과가 전혀 없다는 점과 수익성 없는 사업에 과도한 투자를 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국회 산업통상자원위원회 홍의락 무소속 의원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강원랜드가 2007년부터 추진하고 있는 워터파크 건설사업에 지출된 금액은 모두 120억4000만 원이라고 밝혔다.
워터파크 사업은 지난해 7월 강원랜드가 사업계획(4차 변경)을 전면 변경하는 과정에서 감사원이 설계용역업체 선정에 대한 ‘특혜 및 용역비 과다지출’을 지적(2016년 5월)하자 강원랜드가 정면 반박(2016년 9월)하면서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 2010년 국회 국정감사에서 ‘객관적 사업성 평가 실시’ 지적 이후 진행된 한국개발연구원(KDI) 타당성 조사 결과(2012년 1월 발표), 강원랜드가 제시한 비용에 재추정한 편익을 적용한 시나리오1과 타당성 조사에서 재추정한 비용과 편익을 적용한 시나리오2 모두 각각의 경제성 분석은 0.61, 0.92로 경제적 타당성 기준 ‘1’에 미치지 못했다.
한국개발연구원의 타당성 조사 발표 직후 2012년 2월 열린 강원랜드 제108차 이사회에서 최대주주(지분 36%)인 한국광해관리공단 소속 이사는 “왜 1을 넘어야 하는지 모르겠다”면서 사업계획 및 투자비 변경안을 원안의결했다.
이에 홍 의원은 워터파크 사업은 처음부터 무리한 사업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애초 면밀한 사업 검토와 설계를 했었다면 지금의 참사에 가까운 일은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사행산업 기관인 강원랜드가 ‘사행성’에 가까운 ‘묻지마 투자’를 한 셈이다”며 “이를 묵인하고 방기한 산업통상자원부와 한국광해관리공단의 책임 또한 엄중히 물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강원랜드 자회사들 역시 예산낭비라는 지적을 피하지 못했다. 박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공개한 하이원E와 하이원T의 신규사업 발굴 연구용역 자료를 보면 지난 10년간 14건의 연구 용역에 112억9700만 원을 지출했다. 하지만 사업실적이 전혀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게임 개발 및 애니메이션 제작이 주요 사업인 하이원E에서 8차례의 연구용역을 진행하며 28억2000만 원을 썼다. 강원랜드가 3건의 연구용역비로 47억1800만 원을 추가 투자해 총 75억4000만 원을 용역비로 지출했다. 하지만 총 11차례의 용역을 진행한 하이원E는 지난 4월 게임 서비스를 완전 중지했다.
또 하이원T의 경우 강원랜드와 함께 3차례에 걸쳐 37억6000만 원의 연구용역비를 들였다. 사업타당성과 2단계 사업 기본계획 등이 주내용이다. 그 결과 매년 큰 폭의 적자가 예상된다는 답을 받았고 진행하던 공사를 중단했다.
박 의원은 테마파크 조성 전 시점에서 시행했더라면 적절했을 용역이라는 점을 지적했다. 그는 “경영진이 달라지면 연구용역 과제도 달라지는 비상식적 사태가 발생한 게 원인”이라며 “결과적으로 우리 국민들만 피해를 본 셈인데 거액을 들여 진행한 연구용역이 실제 사업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도피아’ 엔지니어링 업계에 만연
국정감사에서 한국도로공사(이하 도공) 전관 영입 이른바 ‘도피아’가 엔지니어링 업계에 만연해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에서 한국도로공사 대상으로 지난 4일 진행된 국정감사에서 윤후덕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도공 출신을 영입한 업체가 도공이 발주하는 실시설계의 93%를 수주한다며 엔지니어링 업계에 만연한 도공의 전관예우 특혜를 지적했다.
윤 의원은 “한국도로공사가 지난해와 올해 실시설계를 발주한 공구는 4개 사업, 28개 공구로, 실시설계비는 총 1160억 원이었다”며 “참여 설계업체 총 41개사 중 38개사가 도공 퇴직자가 근무하는 회사로 전체의 93%에 달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실시설계비로 계산해 봐도 총액 1160억 원 중 도공 퇴직자를 영입한 38개사가 수주한 금액이 1040억 원으로 전체의 90%였다”며 “도공 퇴직자를 데려오지 않으면 도공 발주사업을 수주할 수 없다는 것을 증명하는 수치”라고 꼬집었다. 도공 퇴직자는 공직자윤리법 제17조에 의해 퇴직일부터 3년간 퇴직 전 5년 동안 소속했던 부서 또는 기관의 업무와 밀접한 관련성이 있는 기관에 취업할 수 없다.
윤 의원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73억 원을 수주한 ‘건화’에 2명, 54억 원 ‘대콘’ 2명, 53억 원 ‘동명’ 2명 등 38개 엔지니어링사에 도공을 퇴진한 65명이 재직 중인 것으로 드러났다.
이에 윤 의원은 “문제는 도공 퇴직자를 보유한 설계회사 간의 설계 경쟁 입찰 시 공구담합, 가격담합의 개연성이 높다는 점”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나 관련 업계의 한 관계자는 “운찰제(낙찰제가 가격, 설계, 능력 등의 경쟁이 아닌 로비와 운에 따라 낙찰자를 결정)로 변질된 국내 입·낙찰제도의 현황을 보지 못하는 국회의원들이 대안 없이 지적을 위한 지적만 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전, 일감 몰아주기와 담합 의혹
전남 나주에서 지난 5일 열린 산업통상자원위원회의 한국전력공사(이하 한전) 국정감사에선 한전의 일감 몰아주기, 담합 의혹 등에 대한 문제가 제기됐다.
박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한전이 자회사인 한전KDN에게 ‘담합포착 시스템’ 개발을 맡겼는데 한전KDN이 한전 전체와 맞먹는 수준의 낙찰률로 사업을 따내고 있다고 지적했다.
박 의원이 한전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를 분석한 결과 한전은 최근 3년간 물품구매 6조7656억 원, 공사 5조4375억 원, 용역 2조867억 원 등 모두 12조4898억 원을 발주했다고 밝혔다. 공사 계약은 1만2062건으로 평균 낙찰률은 89.13%, 용역 계약은 9702건으로 88.65% 수준으로 한전KDN 역시 이와 비슷한 수준의 낙찰률을 보였다.
박 의원은 “한전의 자회사로 담합 의혹이 가장 높은 업체에게 담합 방지 시스템을 개발하게 한 것 자체가 이해하기 어렵다”며 “유독 물품 계약 낙찰률만 높은 것을 보면 담합의 개연성을 의심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송기헌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한전이 자회사나 퇴직자 모임 출자회사에 여전히 일감 몰아주기 행태를 보여주고 있다고 질책했다. 송 의원은 올해만 자회사인 한전KDN, 퇴직자 모임 출자회사인 전우실업에 수의계약으로 각각 94억 원, 540억 원 규모로 일감을 몰아준 것으로 밝혀졌다고 비판했다.
한전 퇴직자 모임 출자회사 전우실업은 한전과 2012년부터 2016년 7월 말까지 8건의 수의계약을 맺어 총 2675억 원 규모 일감을 받아 냈다. 이에 지난 3월 진행된 감사원 감사에서 한전과 전우실업 간 거래에 대해 지적이 제기된 바 있다.
감사원은 ‘한전이 전력계량설비 용역을 경쟁 입찰로 변경했지만, 위탁물량을 세분화하지 않고 전체 물량의 85%(84억 원)를 통합 발주해 이 회사에 일감을 몰아주는 ‘꼼수’를 부렸다고 지적했다.
기업은행 KT결합부스 사업 위기 직면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유의동 새누리당 의원은 지난 4일 기업은행에서 운영 중인 ATM 6293대 가운데 23%인 1440대가 KT결합부스로 운영 중이라고 밝혔다. 기업은행에서 운영 중인 ATM 10대 중 2대 이상은 KT 공중전화와 결합한 부스다.
유 의원은 “KT결합부스의 운영주체인 KT링커스와의 계약 내용이 한시적이어서 향후 운영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고 꼬집었다.
현재 공중전화부스의 운영주체인 KT링커스와 기업은행이 계약한 내용은 기본 계약기간이 10년이며 부스 사용기간이 5년이다. 2011년에 처음으로 계약을 맺어 올해 부스 사용기간 5년째가 된다. 2017년에는 KT결합부스의 67%에 달하는 963곳에서 부스 사용기간 5년이 도래하게 된다.
이 와중에 KT가 주도적으로 인터넷 전문은행 출범을 준비하고 있는 K뱅크 준비 법인이 금융위원회에 본인가를 신청했다. K뱅크는 공중전화부스, 편의점 ATM 등을 적극 활용해 신규 고객을 확보한다는 전략을 내비친 바 있다. K뱅크가 사업을 구체화해서 공중전화부스를 이용하겠다고 하면 기업은행의 KT결합부스는 이후에 계약 연장이 어려워질 수도 있는 상황이다.
유 의원은 “5년 전 KT결합부스 탄생은 당시로는 파격적인 선택이었지만 핀테크를 비롯한 변화무쌍한 금융환경은 기업은행에 또 다른 결단을 요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오유진 기자 oyjfox@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