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요서울 | 신현호 기자] 이인원 롯데그룹 부회장의 장례가 끝난 뒤 롯데그룹 수사가 급물살을 타고 있다. 롯데는 창사 이래 최대 위기를 맞고 있다. 총수일가가 잇달아 소환조사를 받고 있는 데다, 그룹 핵심사업이 줄줄이 좌초돼 그룹 안팎으로 흉흉한 분위기다. 설상가상으로 이인원 롯데그룹 부회장의 자살까지 겹쳐 컨트롤타워 부재의 우려까지 나온다.
지난 1일 신동주(62) 전 일본 롯데홀딩스 부회장은 17시간이 넘는 고강도 검찰 조사를 받았다. 서울중앙지검 롯데수사팀은 이날 오전 10시 신 전 부회장을 피의자 신분으로 소환해 2일 오전 3시 30분까지 조사한 뒤 돌려보냈다.
신 전 부회장은 조사를 받기 위해 청사로 들어가기 전 ‘한국 계열사 일에 관여하지 않고 거액 급여 받은 이유’, ‘롯데그룹 비자금 및 탈세 의혹’, ‘동생보다 먼저 검찰조사를 받게 된 심경’ 등 취재진의 질문에 입을 꼭 다문 채 청사로 들어갔다.
신 전 부회장은 지난 10년간 한국 롯데 계열사 여러 곳에 등기임원으로 이름만 올리고 400억 원 상당의 급여를 부당하게 챙긴 혐의 등을 받고 있다. 검찰은 신동빈(61) 회장 역시 비슷한 수법으로 일본 롯데 계열사에서 아무런 일을 하지 않고 급여를 받은 것으로 보고 있다.
신 전 부회장은 검찰 조사에서 급여 수수에 대한 사실관계를 대체로 인정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급여를 받고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아 고의성은 없었다는 입장을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총수일가 잇단 소환조사
지난달 31일에는 신영자(74·구속기소) 롯데장학재단 이사장을 불러 피의자 신분 조사를 했다. 신 이사장이 관련 혐의에 대해 피의자 신분으로 소환 조사를 받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검찰은 신 총괄회장이 차명으로 보유하고 있던 일본 롯데홀딩스 지분 6.2% 중 3.1%를 신 이사장에게 증여했고, 이 과정에서 신 총괄회장 등이 양도세와 증여세를 내지 않은 것으로 보고 있다. 일본 롯데홀딩스 주식 1%의 가치는 1000억~1300억 원 가량으로 전해진다.
검찰은 나머지 3.1%를 딸과 나눠 가진 신 총괄회장의 셋째 부인 서미경(57)씨 역시 소환 대상에 올려둔 상태다. 일본에 체류 중인 서 씨를 상대로 귀국을 종용하고 이를 계속해서 거부할 경우 강제적인 수단도 동원한다는 계획이다.
신격호(94) 롯데그룹 총괄회장과 사실혼 관계로 35년여간 베일에 싸여 있던 서 씨는 최근 신 총괄회장으로부터 증여받거나 매입해 보유하고 있는 부동산이 공시가격 기준으로만 1800억 원이 넘는 것으로 밝혀졌다.
특히 서 씨 보유 부동산 가운데 1000억 원에 가까운 토지와 건물은 2007년 무렵 신 총괄회장으로부터 증여받았다. 재벌닷컴에 따르면 서 씨는 현재 본인 명의로 보유한 서울 강남 소재 빌딩을 비롯해 경기 오산, 경남 김해 등지의 부동산 평가액이 1177억 원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여기에 서 씨와 딸 신유미(33)씨가 사실상 지배하고 있는 유원실업, 유기개발 등 두 회사가 보유한 서울 삼성동과 반포동, 동숭동에 소재한 빌딩 3채도 688억 원으로 평가됐다. 한편 검찰은 신 총괄회장이 2005~2010년 사이 일본롯데홀딩스 지분 6.2%를 서미경씨 모녀와 장녀 신영자 롯데장학재단 이사장에게 증여하는 과정에서 해외 페이퍼컴퍼니를 이용해 과세당국의 눈을 피해 증여세와 양도세를 탈루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탈세규모는 6000억 원대로 지금껏 적발된 재벌가의 증여·양도세 탈루 사례 중에서는 최대 규모다. 검찰은 현재 일본에 체류하고 있는 서 씨를 소환하기 위해 일정을 조율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한 차례 소환 조사를 받은 바 있는 황각규(61) 롯데그룹 정책본부 운영실장(사장), 소진세(66) 롯데그룹 정책본부 대외협력단장(총괄사장)에 대한 재소환도 검토 중이다.
그룹 위기 타개책은?
검찰은 관련자 조사에 속도를 낼 방침이어서 추석 전후로 신동빈 회장에 대한 소환 조사가 점쳐진다. 일각에서는 검찰이 총수 일가를 이틀 연속으로 조사한 만큼 신 회장의 소환 역시 추석 연휴인 14일 이전 이뤄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롯데는 지난 6월 그룹의 컨트롤타워인 정책본부에 대한 압수수색이 이뤄진 후 경영상황이 사실상 올스톱 상태다. 비리 의혹에 직접적으로 연관되지 않은 주요 계열사 최고경영자(CEO)와 최고재무책임자(CFO) 등 20여 명도 출국금지로 발이 묶인 상황이다.
더 큰 문제는 롯데의 핵심 사업들이 잇달아 좌초되고 있다는 점이다. 롯데케미칼이 추진했던 미국 화학기업인 ‘액시올’ 인수가 검찰 수사 직후 무산됐다. 한국 롯데의 지주사 격인 호텔롯데의 기업공개(IPO)도 무기한 연기됐다. 호텔롯데 상장을 통해 일본계 주주의 지분을 낮추고 투명성을 높이겠다는 그룹의 지배구조 개선방안은 내년 실행도 장담하기 어렵게 됐다.
업계에서는 롯데가 당장에는 조기 인사와 해외사업 정상화 등으로 위기를 돌파하지 않겠느냐는 시각을 갖고 있다. 이인원 부회장의 빈자리가 큰 상황이어서 수뇌부 공백 사태가 장기화되는 것을 막기 위해 임원 인사를 앞당기는 방안을 검토하는 등 조직 안정화에 나설 것으로 관측된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검찰 수사의 압박을 받고 있는 롯데가 이 부회장의 자살로 큰 충격에 빠졌다”면서 “위기를 컨트롤할 수 있는 조직이 무너진 셈이기 때문에 롯데로서는 빨리 ‘포스트 이인원’을 찾아야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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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현호 기자 shh@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