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 가슴에 대못 박은 국민의 경찰
시민 가슴에 대못 박은 국민의 경찰
  • 권녕찬 기자
  • 입력 2016-07-29 21:28
  • 승인 2016.07.29 21:28
  • 호수 1161
  • 18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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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스피싱도 모자라 경찰에 사기 당했다”

▲ 경기도 화성시에서 작은 세탁소를 운영하는 김성자씨. 부업으로 재봉일을 하고 있다.
총책 검거 결정적 역할 시민 김성자 씨

경찰, 김 씨 활약 누락·보상금 나몰라라
 
[일요서울 | 권녕찬 기자] 지난 2월 일단락됐던 보이스피싱 총책 검거를 두고 경찰의 대응이 뒤늦게 도마에 올랐다. 보이스피싱 피해자였던 시민 김성자(42)씨가 제보자를 통해 총책에 대한 핵심 정보와 각종 자료를 경찰에 전달, 사건 해결에 결정적 기여를 했음에도 경찰이 이 내용을 누락한 것이다. 경찰은 김 씨의 노력에 대해 한 마디 언급 없이 조직원의 배신으로 사건을 해결했다고 발표했다. 이 같은 소식이 알려지자 시민들은 이게 국민에게 책임을 다하는 경찰인가,” “경찰인지 도둑인지 도통 모르겠다등 날선 비판을 쏟아내고 있다.
 
김 씨를 둘러싼 이번 사건은 올해 1월에 시작됐다. 경기도 화성시에서 조그만 세탁소를 운영하며 자녀 셋을 키우고 있는 김 씨는 지난 1월 말 보이스피싱 사기를 당했다. 이로 인해 그간 악착같이 모았던 3200만 원을 한 번에 날렸다.
 
김 씨는 정신적 충격으로 몸져 누웠고 평소 입도 안 대던 술과 수면제에 의존하며 살았다. 그렇게 10여일이 지난 2월 초 김 씨의 핸드폰으로 뜻밖의 전화가 걸려왔다. 자신에게 사기를 쳤던 보이스피싱 사기범의 번호였다. 놀람도 잠시 분노가 치민 김 씨는 전화를 받자마자 욕을 퍼부었다. “너희한테 줄 돈 없으니까 끊어. 미친X들아. 왜 또 전화해. 끊어”.
 
하지만 다시 전화가 왔고 수화기 속 인물은 떨리는 목소리로 생각지도 못했던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그는 중국으로 건너와 그간 저지른 사기 행각에 죄책감을 느껴 그만두고 싶었지만 신변의 위협을 느낀다고 했다. 이제 그만 벗어나고 싶다며 총책에 대한 핵심 정보를 넘기겠다고 말했다.
 
김 씨는 귀를 의심했지만 목소리는 진지했고 정보는 구체적이었다. 총책의 본명, 생년월일 등의 정보를 받아 적은 김 씨는 다음 날 관내 파출소, 그 다음 날엔 화성동부경찰서에 이 사실을 신고했다. 하지만 당초 예상과 달리 경찰은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며 이를 가볍게 여겼다고 김 씨는 설명했다.
 
대신 경찰은 총책에 대한 각종 정보와 자료를 구해오라고 하며 오히려 민간인 김 씨에게 적극적으로 지시(?)를 내렸다. 그 때부터 김 씨는 수십 차례에 걸친 조직원과의 통화와 이메일을 통해 정보를 캐냈다. 총책의 사진에서부터 키·용모 등 신상정보, 조선족 아내와 재혼했다는 등의 가족 정보, 중국 근거지와 한국 거주지 주소, 보이스피싱 피해자 명단 등을 경찰에 건넸다. 뿐만 아니라 조직원을 잘 구슬려 당시 설 명절을 앞두고 총책이 한국에 들어오니 꼭 잡아달라는 내용의 진술서와 비행기 시간 등을 받아내 경찰에 알렸다. 이후 김 씨가 제공한 정보를 토대로 경찰은 보이스피싱 총책 최모(51)씨를 인천국제공항 입국 닷새 만에 붙잡았다.
 
총책 검거 소식 주민에게 들어
 
하지만 김 씨는 총책을 잡았다는 소식을 경찰이 아닌 이웃 주민을 통해서 들었다. 당시 경찰이 발표한 보도자료에는 그간 김 씨의 노력은 포함돼 있지 않았다. 경찰이 공을 가로챈 거 아니냐는 지적이 곳곳에서 나오는 이유다.
 
포털 다음 아고라와 화성동부경찰서 홈페이지 게시판에는 경찰의 이러한 행태를 비판하는 글이 줄을 잇고 있다. 29일 현재 400여 개가 넘는 글이 올라왔다. 작성자 김한수씨는 상을 주며 공로를 치하해도 모자를 판에 공적 돌리기를 하다니 너무 실망이다고 지적했다. 다른 작성자 백동현씨는 도둑들이 하는 짓거리를 이제는 경찰들도 하네라며 꼭 물건을 훔쳐야만 도둑이냐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또 김 씨는 이 과정에서 경찰의 무성의한 태도와 의심, 비아냥거림을 참기 힘들었다고 토로했다. 김 씨는 경찰이 ‘(보이스피싱)또 당했어요?’, ‘그 정보를 믿어요?’, ‘잡기 힘든데 이거등 납득하기 힘든 반응을 보였다고 말했다. 김 씨는 경찰이 계속 못 잡는다고 하니까 오기가 생겨 미칠 지경이었다내 개인정보도 범죄 조직에 넘어갔기 때문에 해코지 당할까 두려웠지만 경찰에 본때를 보여주고 싶었다고 했다. 이어 저는 보이스피싱 사기를 당했기 때문에 범인을 잡을 경우 합의금과 신고보상금 등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때문에 눈에 불을 켜고 경찰을 도왔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화성동부경찰서 관계자는 하루 종일 항의전화를 받을 정도로 여론이 안 좋다는 것을 알고 있다그간 김성자씨의 노력과 활약을 인정한다고 밝혔다. 다만 경찰이 공을 가로챈 거 아니냐는 비판에 대해서는 사실이 아니고 그 일로 (우리가) 상을 받는 것도 아니다며 강하게 부인했다. 이어 당시엔 김 씨가 조직원의 전화를 기다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어서 김 씨를 통해 총책 정보가 넘어올 수 있도록 유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 씨가 정확하게 어떤 상처를 받았는지 모르겠지만 우리는 최대한 호의적으로 대했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사과·보상금 재논의 필요
 
당시 보도자료에 왜 김 씨의 노력이 빠져 있는지 기자가 묻자 피해자 보호 차원에서 그랬고, 보도자료를 배포한 뒤에는 언론사가 취재를 하기 때문에 굳이 세세하게 작성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이미 김 씨의 개인정보가 조직원에 넘어갔기 때문에 피해자 보호는 더 이상 의미가 없고, 김 씨의 노력이 총책 검거에 결정적 기여를 했음에도 보도자료에 빠져 있다는 것은 핵심이 빠진 게 아니냐는 지적이다.
 
더구나 경찰은 총책 검거 이후 김 씨에게 보이스피싱 신고보상금 지급은 물론 다섯 달 동안 아무런 얘기도 없었다. 지난해부터 경찰청이 나서 보이스피싱 신고보상금에 대해 최대 1억 원을 지급하겠다고 대대적으로 홍보한 것과는 달랐다. 경찰 내부규정에 따르면 보상금 지급 사유가 발생하면 해당 경찰서에서 과장급을 위원장으로 하는 보상금심사위원회를 연다. 접수는 보상 대상자가 직접 신청하거나 경찰이 직권으로 접수하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경찰은 그간 대상자가 직접 신청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경찰이 직권으로 접수해 보상 절차가 개시될 수 있었음이 밝혀져 이에 대한 비판을 피하기가 어려워 보인다. 이에 대해 김 씨는 경찰의 최소한의 배려가 부족했다고 지적했다. 김 씨는 이 정도 노력했는데 당연히 경찰이 먼저 연락 올 줄 알았다내가 마치 보채는 양 보상금 언제 얼마나 나와요묻기가 되게 민망했다고 밝혔다. 이어 대한민국 경찰이 그 정도의 배려와 봉사 정신은 있다고 믿었다게다가 나는 보이스피싱 피해자다. 이는 전적으로 내 잘못이지만 사기 피해자에게 그간 경찰이 보여준 행동은 보이스피싱 사기범보다 더 나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경찰은 뒤늦게 김 씨에게 보상금을 지급하기로 했다. 하지만 그 액수는 지급 기준에서 가장 낮은 금액인 100만 원. 경찰은 예산이 부족한데다 다른 사건도 20~30만 원 수준의 보상금을 받았다면서 지급 이유에 대해 설명했다. 범죄신고자 등 보호 및 보상에 관한 규칙에 따르면 사기 규모가 50억 이상이면 최대 1억 원, 사기 규모가 50억 미만 5억 이상이면 최대 5,000만 원, 기타 사회이목 집중 사건이면 1,000만 원, ‘기타 사건이면 100만 원이다. 김 씨의 그간 노력은 단순 기타로 치부돼 가장 낮은 금액이 책정됐다.
 
시민들은 이 금액이 부당하다고 주장한다. 화성시 반송동에 사는 시민 박모(27·)씨는 이분의 노력이 없었다면 더 큰 피해가 발생했을 수도 있고 우두머리 검거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는데 이건 좀 아닌 것 같다경찰이 사과도 드리고 보상금도 대폭 올려 지급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 씨는 지난 22일 경찰의 업무 태만과 보상에 대한 의도적 배제 등을 해결해달라는 내용의 진정서를 경기남부지방경찰청에 제출했다. 경기남부지방경찰청 관계자는 사실 관계 확인 중이라며 차근차근 면밀히 조사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kwoness7738@ilyoseoul.co.kr

권녕찬 기자 kwoness7738@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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