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요서울 | 신현호 기자] 언제부턴가 우리나라는 ‘비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쓰게 됐다. 우리 사회를 구성하는 조직마다 연쇄적으로 불거지는 부정과 부패는 국민들의 신뢰를 잃게 만들었다. 사회 지도층부터 공직 실무자, 말단 사원까지 잘 짜인 각본처럼 이뤄지는 비리 행위에는 감탄사(?)까지 나온다. 혹자는 이를 인체에 비유해, ‘머리부터 심장, 말초신경까지 썩어 있다’고 표현한다. 대한민국을 불치병 환자로 놔두는 것보다는, 이제라도 신약을 개발하고 적절한 요법을 적용해야 한다. 하지만 본인의 치료의지 없이는 백약이 무효다. [일요서울]이 대한민국 비리 현주소를 시리즈로 조명해본다. 세 번째는 ‘교육비리’다.
최근 대전 지역에서 잇달아 사립학교 문제가 불거져 진통을 겪고 있다. 지난 21일 학력인정 평생교육시설인 대전예지중고의 정상화추진위원회는 교내집회를 열고, 교사·정상화추진위원 삭발식을 단행했다.
이 학교 학생들은 현재 수업거부를 진행하고 있다. 예지중·고는 학력인정 평생교육시설로 학생 대부분이 성인으로 이뤄져 있는데, 이들은 시교육청에 예지재단 이사진 전원 승인 취소와 정상화 특별기구 설치 등을 촉구하고 있다.
지난 16일에는 정상화추진위가 박 전 예지재단 이사장 겸 예지중고 교장을 각종 비리혐의로 대전지검에 고발했다. 예지중·고는 박규선 전 교장 겸 이사장이 교직원 연수·회의시간에 ‘본인 연봉의 10% 정도는 자기 성장을 위한 학교발전기금으로 내야 한다’고 수차례 강요하는 등 물의를 빚어 갈등이 장기화됐다. 특히 재단측이 최근 정상화추진위 핵심인사를 징계위에 회부하면서 갈등은 절정을 맞았다.
최종합격자, 알고 보니 ‘간부 자녀’
최근 대전지역의 사학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지난달 자립형 사립고를 가진 대전지역 사학법인 대신학원의 교사 채용 시험 비리 의혹이 일어 이에 대해 대전시교육청이 경찰수사 의뢰했다.
이 법인은 지난 2월 교사채용 1차 필기시험 ‘직무능력평가’를 실시하면서 채용 공고문과 달리 시험지에 개인정보를 노출한 수험생을 합격시켰고, 수학 과목의 합격 최저 점수 기준도 변경했다.
이번 필기시험에서 수험생 정보 표기란이 아닌 답안에 자신의 이름을 쓴 수험생은 모두 4명이다. 당초 공고문 ‘수험생 유의사항’에는 “답안지에 불필요한 표시(개인정보 노출 또는 암시) 등을 하면 채점을 하지 않는다”고 명시했다. 처음에는 4명 모두를 0점 처리했다.
하지만 전형위원회에서 일부가 이의를 제기했고 답안지 처음과 끝에 이름을 쓴 2명만 0점 처리한 뒤 중간에 쓴 2명은 점수를 인정, 이 가운데 1명이 최종 합격했다. 이 합격자는 대전시교육청 간부의 자녀로 알려졌다.
학교 측은 직무능력평가의 경우 전형위원회가 내용을 검토한 후 답안 중간에 이름을 쓴 경우 채점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판단, 점수를 인정했다고 설명했다.
또 수학 과목 최저 점수 기준 변경도 필기시험에서 채용인원의 5배수를 뽑게 돼 있는데 40%로 하면 통과자가 적어 전형위원회가 법률 검토를 거쳐 30%로 낮췄다는 것이다.
대전시교육청 관계자는 “전형 자료 등을 제출받아 채용 과정을 조사한 결과 개인정보 노출과 수학과목 최저점수 기준 변경은 사실로 드러났다”며 “공고문과 다르게 조정해 합격자를 결정하는 등 특정 응시생을 배려한 의혹이 있어 대전둔산경찰서에 수사를 의뢰했다”고 밝혔다.
전교조 대전지부는 “이번 의혹의 핵심 쟁점은 임용전형 공고 내용을 전형 단계에서 임의로 변경해 적용했다는 것이다”며 “사립 교원 임용시험의 교육청 위탁을 제도화하거나 전형위원회 구성 및 운영 시스템을 대폭 개선하는 등 근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지난 1일 시교육청의 특별감사 결과 채용비리가 확인돼 부정채용 교사 1명의 임용이 취소되고 7명에 대한 징계처분 요구가 이뤄졌다. 일주일 뒤엔 또 다른 사학재단의 전 이사장이 횡령사건에 휘말려 구속됐다.
교수 연구비=눈먼 돈?
교육계의 비리는 한 지역만의 문제가 아니다. 최근 잇따르고 있는 교육계의 고질적 비리는 광범위하게 이뤄지고 있다. 최근 전북지역 대학교 교수들이 연구비를 횡령하다 잇따라 적발됐다. 학문 발전과 학생들의 역량 강화를 위해 쓰여야 할 연구비가 교수들의 개인적 용도로 사용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전북경찰청은 지난 13일 인건비 등을 부풀려 연구비를 횡령한 혐의(업무상 횡령)로 전북의 한 사립대학 A교수를 불구속 입건했다. 경찰에 따르면 A교수는 지난 2009년 산학협력 연구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다른 사람의 명의를 빌려 연구원으로 등재하는 수법으로 인건비 일부를 빼돌린 혐의를 받았다. 경찰은 이달 초 A교수의 연구실을 압수수색, 관련 서류 등을 확보하고 분석작업 중이다.
지난달 23일에도 해당 대학의 B교수 등이 국가연구비를 횡령한 사실이 드러나 경찰의 수사대상에 오른 바 있다. B교수 등은 지난 2013년부터 1년여 간 국가과제 연구를 수행하면서 연구원 인건비와 출장비를 부풀려 1억 원 상당의 연구비를 횡령한 혐의다.
학교 측은 사건에 연루된 교수들을 해임 또는 정직 처분하고 경찰에 수사를 의뢰했다. 이어 지난 20일 발표된 농림축산식품부 종합감사에서는 전북혁신도시의 한 국립 전문대학 교수들의 연구비 횡령 사실이 밝혀졌다.
감사에 적발된 교수들은 연구에 참여하지 않은 학생을 연구원으로 등록해 수천만원의 인건비를 타냈고 해외연수 경비를 사적으로 유용하는 등 비리를 저질렀다. 농식품부는 감사 결과를 학교에 통보하고 연구비와 해외연수 경비를 횡령한 교수들을 경찰에 고발하기로 했다.
교수들의 연구비 횡령 등 교육계 비리로 인해 대학 역량 부실, 고질적 병폐화가 우려된다는 게 전문가의 설명이다.
교육계의 한 관계자는 “우리나라를 이끌어갈 미래 인재 육성을 위해 반드시 없애야 할 게 바로 교육 비리”라면서 “입시나 채용 등의 문제 뿐 아니라 양질의 교육을 위해 모두가 나서 척결해야할 과제”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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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현호 기자 shh@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