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 떠는 등산객 “이제 山도 마음대로 못 가겠다”
등산로 초입·길목 등 CCTV 늘려야…개인 차원 대비도
[일요서울 | 권녕찬 기자] 지난해 10월 창원 무학산 살인사건, 지난 4월 광주 어등산 살인사건에 이어 최근 서울 수락산에서도 살인사건이 발생해 등산객들의 불안이 커지고 있다. 수락산 일대에서 만난 주민들은 “무서워서 산도 마음대로 못 가겠다”며 최근 잇따라 발생한 사건이 자신에게 일어나지 않을지 걱정하고 있었다. 전문가들은 주요 등산로 부근에 방범시설을 확충하고 개인 차원의 대비, 사회적 차원의 제도 개선 등 특별대책을 서둘러야 한다고 지적한다.
지난달 29일 오전 5시 32분쯤 서울 노원구 상계동 수락산 등산로에서 60대 여성이 시신으로 발견됐다. 주부 A(64·여)씨가 혼자 산에 올랐다가 목과 배를 수차례 흉기로 찔려 숨졌다. 자창(예리한 흉기로 찔린 상처)에 따른 좌측 경동맥·기도·식도 절단으로 인한 사망으로 추정된다는 부검 결과가 나왔다.
수락산 인근 주민들은 평소 다니던 산에서 잔인한 살인사건이 일어나자 불안함을 감추지 못했다. 상계동 주민 70대 이순자씨는 “남편 다치기 전 최근까지 매일 등산했던 곳”이라며 “무서워서 절대 혼자는 안 갈 것”이라고 말했다. 등산로에서 친구와 함께 걷던 등산객 김모(50·여)씨는 “사건이 일어난 등산로 주변은 얼씬도 안 하고 다른 길로 다니고 있다”며 “여자가 안전하게 등산을 하려면 가급적 여럿이서 다녀야 한다”고 기자에 조언하기도 했다.
근심·걱정은 여성들에게만 그치지 않는다. 산악동호회에 다닌다는 택시기사 주 씨는 “동호회가 있어 주로 사람들과 수락산을 등산하긴 하지만 가끔씩 혼자 가기도 한다”며 “앞으로 혼자서는 못 갈 것 같다”고 불안감을 애써 지우는 모습이었다.
찌르고…때리고
이번 수락산 살인사건 외에도 최근 산에서 강력범죄가 잇따라 발생했다. 지난 4월 광주 광산구 서봉동 어등산 팔각정 인근에서 등산객 이모(63)씨가 목과 가슴, 등, 허벅지 등에 9차례 흉기로 찔려 숨졌다. 당시 예비군복 차림의 피의자 김모(49)씨는 범행 직후 산 정상인 동자봉 부근으로 달아나며 또다시 흉기로 등산객을 위협하기도 했다.
지난해 10월에는 경남 창원시 마산합포구 무학산 6부 능선 등산로 인근에서도 A(51·여)씨가 살해됐다. 혼자 산행하던 A씨를 우연히 보고 성폭행 충동을 느껴 범행을 저질렀다. A씨가 소리를 지르며 반항하자 주먹과 발로 폭행한 뒤 목을 졸라 살해했다.
수원 광교산 등산로에서 지난해 2월 조현증(정신분열증)을 앓던 피의자의 몽둥이에 한 등산객이 얻어맞아 숨지는 사건도 있었다. 2012년 7월에 제주 올레길에서도 한 여성 등산객이 살해됐다. 서귀포시 성산읍 올레1코스에서 강모(47)씨가 B(40·여)씨를 나무 뒤편으로 끌고가 성폭행하려다 반항하자 목 졸라 살해하고 피해자의 시신 일부를 훼손, 유기해 충격을 줬다.
CCTV 부족
대부분 등산로는 인적이 드물고 CC(폐쇄회로)TV 같은 방범시설이 부족해 강력 범죄에 노출되기 쉽다. 이번 사건이 발생한 수락산의 경우 모두 9개의 주등산로 초입 부근에 총 9개의 CCTV가 설치돼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하나의 등산로에 많으면 3개까지 설치돼 있지만 CCTV가 없는 등산로도 있기 때문에 이곳에서는 범죄 위험에 노출될 가능성이 크다. 이번 사건 도 피의자가 찍힌 CCTV는 등산로에 있는 CCTV에 찍힌 것이 아니라 대로변에 있는 CCTV에 잡힌 것이다.
탐방객이 가장 많은 국립공원으로 알려진 북한산 국립공원의 경우 총 49대(도봉산 구역 포함)의 CCTV가 있다. 하지만 사무실 내, 주차장, 계곡 위험지, 산불 예방 감시 등 대부분 CCTV의 용도 및 위치가 범죄 예방용과는 거리가 멀었다. 국립공원 관계자는 “넓은 산 곳곳에 CCTV를 달기에는 비용 측면과 전력 사용 문제 등 현실적인 문제가 있다”면서도 “둘레길 3구간 흰구름길과 4구간 솔샘길에 CCTV를 각각 1대씩 총 2대를 올해 설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는 이어 “다목적 위치 표지판이 50m 간격으로 설치돼 있어 범죄 등 유사사건 발생 시 활용할 수 있다”며 “관리사무소 직원들이 2인 1조로 9시부터 오후4시까지 주요 거점을 돌면서 순찰하고 있다”고 말했다.

관악산의 경우는 등산객의 60%가 들어가는 서울대학교 정문 입구쪽의 주 등산로에 총 7대의 CCTV가 설치돼 있어 다른 곳과 비교해 안전해 보인다. 200-300m 간격으로 설치된 CCTV에는 비상벨이 기둥에 있어 위급 상황 시 버튼을 누르면 관악구청의 CCTV관제센터로 파견된 경찰관이 출동하게 된다. 또한 119산악구조대가 관악산에 상주해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고 있다.
개인 차원 철저한 대비
전문가들은 특히 등산로 초입이나 길이 갈라지는 길목에는 CCTV를 설치해 범죄 유발 가능성을 낮추고 사건이 터지면 신속하게 범인을 잡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또 전기 충격기, 호루라기 등 개인 호신 장비를 갖춰 각자의 안전 관리에도 신경써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등산 지역은 굉장히 넓어 모든 지역에 다 CCTV를 달기는 어렵다”며 “호신 물품을 가지고 개인 차원에 대비하되 되도록 혼자서 등산하지 말고, 가능하면 여러 사람이 있는 시간대에 등산할 것”을 권고했다.
이 교수는 또 등산로 보안시스템 강화와 별도로 수감자에 대한 교정제도의 개선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그는 “CCTV나 순찰 같은 ‘일반 제지’가 아닌 보호관찰 등 ‘특수 제지’가 필요하다”며 “보호관찰제도를 서둘러 보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출소 한 달 안에 강력 범죄를 저지르는 이들은 교도소에서도 폭력성을 보일 가능성이 높으므로 출소 단계에서 보호관찰을 검토할 수 있다”며 “소년범처럼 성인도 가석방 심사 때 보호관찰을 추가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kwoness7738@ilyoseoul.co.kr
권녕찬 기자 kwoness7738@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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