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 | 류제성 언론인] 지금 새누리당에선 ‘이한구의 난(亂)’ 벌어지고 있다. 4·13 총선 공천관리위원장을 맡아 거침없는 하이킥을 날리기 때문이다. 공천장을 받으려는 현역 국회의원과 예비후보자들은 그 앞에서 고개를 180도로 숙인다.
특히 권역별로 실시한 면접심사에서 이 위원장의 위세는 하늘을 찔렀다. 친박계의 좌장인 서청원 최고위원, 돌아온 핵심 실세 최경환 의원은 물론, 6선의 이인제 최고위원을 비롯한 당 중진들도 모두 이 위원장 앞에서 ‘자기소개’를 하고 질문에 공손히 답변해야 했다. 공관위원인 황진하 사무총장과 홍문표 제1사무부총장, 친박계에서 공공의 적 취급을 하는 유승민 의원도 마찬가지였다.
심지어 김무성 대표조차 면접 대상이다. 당초 김 대표는 부산·경남·울산 출마자 면접 날짜였던 26일 다른 공천신청자들과 함께 이 위원장의 심사를 받을 예정이었다. 그러나 김 대표의 선구인 부산 영도구가 선거구 조정 대상지역이기 때문에 늦춰졌다.
이 위원장은 “면접 심사를 통해 숨은 보석을 찾아냈다”며 현역 의원 대폭 물갈이를 예고하고 있다. 서울 강남과 영남권 같은 새누리당 강세 지역의 현역 일부가 ‘저성과자’나 ‘비인기자’라는 이유로 경선에 참여하지도 못하고 탈락할 수 있다.
대구 수성갑이 지역구인 이 위원장은 이미 20대 총선 불출마를 선언한 상태다. 따라서 잃을 게 없는 입장에서 칼을 휘두를 태세다. 당 관계자는 “이한구는 4선이지만 불출마 선언 후 당내에서 ‘투명인간’ 같은 존재였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현역 의원들의 생사여탈권을 가진 ‘저승사자’가 되어 나타났다”고 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위원장을 ‘저승사자’로 만들어준 인물은 결과적으로 김무성 대표다. 김 대표는 처음에 친박계 핵심부에서 ‘이한구 공관위원장 카드’를 내밀었을 때 거부했다. 하지만 잠시 밀고 당기기를 하다가 결국 이 카드를 받았다. 김 대표는 ‘이한구의 난’을 충분히 예견했음에도 왜 칼자루를 쥐어줬을까.
최근 김 대표는 사석에서 지인들에게 그 이유를 소상하게 털어놨다고 한다.
“이한구는 전략공천 제도를 없애고 경선을 원칙으로 우선추천제 정도만 적용하도록 공천 룰을 바꾼 2014년 2월에 당헌·당규개정특위 위원장이었다. 이미 공천 룰을 확정해놓았으므로 이한구가 와도 뒤집을 방법이 없다고 생각했다.”
김 대표는 또 한 가지 이유를 댔다고 한다.
“내가 ‘이한구 카드’를 받느냐, 안 받느냐로 시간을 끌게 되면 안 되는 상황이었다. 경선을 하려면 안심번호를 확보하고, 실제 여론조사를 하는 데 최소 한 달이 걸리지 않나. 그런데 이한구 카드로 공방을 벌이다가 시간을 잡아먹으면 어떻게 되겠나. 결국은 총선이 다가오면서 ‘시간이 없다’는 핑계로 ‘전략공천으로 갈 수밖에 없는 거 아니냐’ 그렇게 주장할 가능성이 있었다. 따라서 공관위원장이 뒤집을 방법이 없는 당헌·당규를 믿고 받아준 거다.”
그러나 이는 김 대표의 순진한 생각이었다. 당헌·당규 곳곳에 나와 있는 공직후보자 부적격 기준, 우선추천제, 단수추천제 등의 조항은 친박계 입장에서 충분히 ‘전략공천’으로 해석할 수 있는 여지가 있었다. 특히 이 위원장의 경우 평소에도 “통제가 안 되는 외골수”라는 평을 받아왔던 인물인 점을 감안하면 김 대표가 이 카드를 받은 건 최악의 선택, 가장 큰 실수였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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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제성 언론인 ilyo@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