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벌기준 제각각…성적 욕망·수치심 유발에 달려
처벌기준 제각각…성적 욕망·수치심 유발에 달려
  • 김현지 기자
  • 입력 2016-01-29 09:51
  • 승인 2016.01.29 09:51
  • 호수 1135
  • 21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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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죄도 될 수 있는 몰카범?

[일요서울 | 김현지 기자] ‘울산 대기업’이란 키워드가 최근 인터넷을 뜨겁게 달궜다. 이유는 해당 대기업의 여자 화장실에서도 몰래카메라(몰카)가 발견됐기 때문이다. 지난달 26일 울산 동부경찰서는 울산에 있는 한 기업의 여자화장실 천장에서 소형 카메라가 발견됐다는 여직원의 신고를 받고 수사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발견된 당시 소형 카메라 렌즈의 방향이 양변기 쪽을 향해 설치돼 있는 것으로 알려져, 이번 사건을 두고 여성의 신체를 촬영하기 위한 ‘몰카범’의 소행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사건 발생 이후 ‘여전한 몰카범’에 대한 문제가 다시 도마에 올랐다.


촬영자 의도가 고의적일때 ‘유죄’
노출 여부와 연관되기도…모호함 여전

# 출근시간대의 지하철역 풍경. 계단 혹은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가는 여성들 틈으로 한 남성이 자신의 스마트폰 카메라를 슬쩍 내민다. 이내 그의 스마트폰은 위로 올라가는 여성의 짧은 치마 안을 향해 ‘일’을 시작한다. 워낙 북적대는 틈이라 모두들 그의 행각을 보지 못했으나, 우연히 아래에 있던 다른 여성이 이를 목격하고 해당 남성의 행동을 제지한다. 그의 스마트폰 파일함에는 여성의 은밀한 신체 부위가 영상으로 저장돼 있었다.

# 추운 겨울, 카페 실내에 있던 한 여성은 몸에 달라붙는 원피스와 살이 비치지 않는 검은색 레깅스를 신고 있었다. 이 여성을 지켜보던 40대 남성은 ‘자신의 이상형에 가깝다’는 이유로 여성의 전신을 촬영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후 카페를 찾은 다른 손님이 이를 보고, 해당 여성에게 사실을 알려줬다.

위 두 남성의 경우, 법원의 기준에서 성폭력처벌법상 카메라 등 이용촬영 혐의로 처벌받을 수 있을까? ▲ 피해 여성의 성적 수치심을 유발했거나 ▲ 비슷한 연령대의 사람들에게 성적 욕망을 불러일으켰거나 ▲ 촬영자의 의도가 고의적이고 불순할 경우 등에 해당된다면 ‘유죄’다. 하지만 여성의 신체가 노출되지 않거나 위 세부사항에 맞지 않는다면 여성의 신체를 촬영한 남성은 ‘무죄’다.

상습 몰카범, 무죄

지난달 24일 대법원 2부(주심 이상훈 대법관)는 몰카 촬영 등 성폭력처벌법상 카메라 등 이용촬영 혐의로 기소된 B(29)씨에게 벌금을 선고한 원심을 무죄 취지로 파기 환송했다고 밝혔다. 판결 내용의 주 골자는 ‘여성의 가슴 상반신을 노출 없이 촬영’했을 때 처벌할 수 없다는 것이다. ‘성적 욕망이나 수치심을 유발할 수 있는 신체’를 촬영했는지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해야 한다는 취지다.


이를 두고 일각에선 몰카 범죄에 대한 법원의 판단 잣대가 ‘노출 여부’라는 해석이 쏟아졌다.


B씨가 피해 여성의 신체를 몰래 촬영한 건 지난 2014년 4월 오후 10시48분경. 당시 B씨는 서울 동대문구의 한 아파트 엘리베이터에 함께 탄 여성의 상반신을 자신의 스마트폰 카메라로 촬영했다. 촬영한 영상 속 여성은 옷을 입고 있어 노출은 없었지만, 가슴을 중심으로 상반신이 촬영됐다는 점에서 피해 여성이 수치심을 느꼈을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었다. 특히 B씨가 이전에도 수십 차례에 걸쳐 여성의 가슴이나 다리 등을 촬영한 것으로 알려져, 몰카 ‘상습범’에 대한 무죄가 타당하지 않다는 의견도 있다.


당시 대법원은 “성폭력처벌법상 카메라 등 이용 촬영죄에서 촬영한 부위가 ‘성적 욕망 또는 수치심을 유발할 수 있는 다른 사람의 신체'에 해당하는지는 객관적으로 피해자와 같은 성별, 연령대의 일반적이고 평균적인 사람들의 관점에서 성적 욕망이나 수치심을 일으킬 수 있는 신체에 해당하는지 고려해야 한다”며 “피해자의 옷차림, 노출의 정도 등은 물론 촬영자의 의도와 촬영에 이르게 된 경위, 장소, 각도, 거리,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구체적이고 개별적으로 결정해야 한다”고 설명한 바 있다. 


또한 “비록 B씨의 행동이 부적절하고 피해자에게 불안감이나 불쾌감을 유발하는 것은 분명하지만 B씨가 촬영한 피해 여성의 신체 부위가 ‘피해자와 같은 성별, 연령대의 일반적이고 평균적인 사람들의 성적 욕망이나 수치심을 유발할 수 있는 신체’에 해당한다고 단정짓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이에대해 대법원 관계자는 “촬영자의 의도 등 종합적인 고려를 한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하지만 성범죄 전문 법무법인의 한 관계자는 “현재 몰카 및 몰카를 둘러싼 2차 범죄 피해가 큰 상황에서 나온 이번 판결은 시대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 것 같다”며 “특히 노출 여부 등 ‘성적 욕망이나 수치심을 유발할 수 있는 신체’에 대한 해석 기준이 모호하다”고 평하기도 했다.

과거와 비슷 

지난 2008년 대법원은 인터넷 사이트에 게재된 여성들의 치마 속을 촬영한 몰래카메라(몰카) 등 음란사진 및 만화를 올린 혐의로 기소된 피고인 A씨에게 유죄를 선고한 원심판결을 파기 환송했다.


당시 대법원은 전라의 여성 및 여성의 치마 속을 촬영한 사진 등의 음란물에 대해 “직접적인 노출은 전혀 없는 것임을 알 수 있다”며 “그 내용이 상당히 저속하고 문란하나 느낌을 주는 것은 사실이나 이를 넘어서서 형사법상 규제의 대상으로 삼을 만큼 사람의 존엄성과 가치를 심각하게 훼손·왜곡했다고 평가할 수 있을 정도라고 단정지을 수 없다”며 파기 환송의 배경을 설명했다.


또한 “음란 여부를 판단함에 있어서는 표현물 제작자의 주관적 의도가 아니라 그 사회 평균인의 입장에서 그 시대의 건전한 사회통념에 따라 객관적이고 규범적으로 평가해야 한다”는 기존의 판시를 언급했다. 몰카 등 불법 음란물을 인터넷상에 게시하는 행위에 대해 사회통념을 참작해야 한다는 셈이다. 문제는 ‘건전한 사회통념’의 기준이 모호하다는 점이다.


이에 대해 과거의 판결 취지와 최근 대법원의 판결 취지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는 목소리가 높다. 여전히 성폭력 처벌법 적용을 두고 소극적이라는 지적이다.


한편 정부 통계에 따르면 몰래카메라 촬영 사건은 2014년 6천623건에서 2015년 7천623건으로 크게 증가했다. 이는 2014년 기준 전체 성폭력 범죄 중에서 24.1%를 차지하는 것으로, 지난 10년간 약 20%이상 증가했다.


이에 지난달 28일 서울정부청사에서 황교안 국무총리 주재로 열린 국가정책조정회의에서 정부는 몰카 성범죄자에 대한 전문치료 프로그램을 개발할 계획을 포함한 ‘4대악 근절 추진실적 및 2016년 계획’을 발표했다. 

yon88@ilyoseoul.co.kr

김현지 기자 yon88@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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