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박시은 기자]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현대증권 매각 불발로 추가 자구안을 내야 하는 상황이 녹록치 않다. 특히 정부의 현대상선에 대한 압력이 크다. 해운업 불황에 따른 정부의 구조조정 의지가 강력한 것이다. 이로 인해 현대그룹은 각종 설의 중심에 섰다. 현대상선 포기설, 현대사상선-한진해운 강제합병설 등이다. 뿐만 아니라 현 회장의 경영권 위협 상황에 대한 우려의 시선도 나온다.

현대상선 강제합병·포기설 나돌아
현대그룹 안팎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특히 주력 계열사인 현대상선을 둘러싼 각종 설이 불거지면서 그룹 전반에 위기감이 감도는 모양새다.
그동안 현정은 회장은 ‘구조조정 모범생’으로 지목됐다. 2년가량 벌여온 자구 노력으로 현대그룹 전망도 청신호를 보인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그동안 현대그룹은 비주력 계열사 매각 등을 통해 3조3000억 원 수준의 자구안을 실행해왔다.
하지만 현대증권 매각 불발 이후 현 회장은 다시 한 번 위기에 빠졌다. 추가 자구안을 내야 하는 상황에서 정부 당국의 압박이 심해지고 있고, 도움을 청할 존재도 불투명한 상황에 놓인 것이다.
더욱이 정부 당국이 해운업 구조조정 의지를 강력하게 내비치고 있어 현대상선의 행방을 놓고 각종 설이 나오기 시작했다.
우선, 현대상선과 한진해운의 강제합병설이 제기됐다. 이미 양사의 합병안이 2010년부터 꾸준히 제기돼 왔으며, 해운업 구조조정의 해결 방안으로 거론되고 있다는 것이다. 재계에 따르면 정부는 두 회사의 영업구조가 컨테이너선 중심인 점과 항로가 미주 및 구주 에 편중돼 있다는 것을 이유로 합병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같은 설이 불거지면서 현 회장의 현대상선 포기설도 고개를 들었다. 더 이상의 금융권 자금 지원이 어렵고, 자금 확보 채널이 불투명해 현 회장이 현대상선을 매각하는 방향으로 추가 자구안을 계획한다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현 회장이 지주회사 격인 현대엘리베이터의 지원을 통해 현대상선과 현대증권 경영권을 모두 지켜낼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현대상선이 보유한 현대증권 지분을 현대엘리베이터가 사들이는 방식으로 현대상선에 유동성을 지원한다는 것이다. 또 이를 통해 현대증권에 대한 지배력도 높일 수 있다.
하지만 정부와 금융당국의 반응은 싸늘한 분위기다. ‘언 발에 오줌누기’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고 보는 것이다. 현대증권 매각 무산, 현대상선의 유동성 위기로 그룹 전체 위기 확산이 우려되는 상황이어서 근본대책이 되기는 어렵다는 시선이다.
언 발에 오줌 누기?
현대그룹을 둘러싼 우려가 깊은 가운데 현정은 회장이 보여준 위기극복 능력에 대한 기대를 거는 시선도 있다. 그동안 현 회장이 숱한 고비를 잘 해결해온 만큼 이번 고비도 극복할 것이란 기대다.
현 회장은 지난 2003년 8월 남편인 故 정몽헌 전 현대그룹 회장 타계 후 12년간 그룹을 이끌어오고 있다. 당시 현 회장은 전업주부로서의 삶에 전념하다 경영인의 자리에 올랐다. 이 과정에서 현 회장은 시숙 관계에 있는 범현대가 방계 기업들과의 분쟁이 잇따랐다.
시숙부인 정상영 KCC명예회장과 경영권 다툼을 벌였고, 시동생인 정몽준 전 의원과는 현대상선을 놓고 갈등을 겪었다.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회장과도 현대건설을 두고 인수전을 벌였으나 현대건설 인수에 실패했다.
이후 현대그룹의 덩치는 전과 비교해 작아졌지만 현 회장은 실용성을 강조하는 긍정경영을 펼쳤고, 제 모습을 회복하는 데 성공했다.
현 회장의 두 번째 위기는 2013년에 찾아왔다. 잠재적 유동성 위기 논란이 일어난 것이다. 이때 현 회장은 현대증권을 과감히 포기하고, 비주력 자산을 모두 정리하는 자구안을 내놨다.
각종 설이 난무한 가운데 현대그룹 측은 “정해진 것이 없다”고 대답했다.
한 관계자는 “현대증권 매각이 불발되면서 이런 저런 얘기들이 나오지만 모두 근거 없는 소문일 뿐이다”며 “강제합병에 대해서는 금융감독위원회와 해양수산부 모두 아니라고 해명했고, 현대그룹 역시 강제합병에 관해 알고 있는 바가 없다”고 설명했다.
또 “해운업계에서 합병이 이뤄졌을 때 시너지가 일어날 부분은 없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이어 현대그룹 위기설에 대해서는 “2013년에 발표한 자구안이 100% 가까이 달성됐다. 현대증권이 차질 없이 매각됐다면 좀 더 여유가 생겼겠지만 핵심자산들을 더 팔고, 유산증자를 하는 방법이 남아 있다”고 말했다.
해당 관계자는 “추가 자구안 제출 기일은 정해지지 않은 상태이며, 내부적으로 계속 논의하고 있다”면서 “해운업의 경우 업계 전체가 불황을 맞은 상황이기 때문에 정부의 지원도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또한 현 회장에게 현대상선의 개인적인 가치를 고려했을 때 아직까지 매각설이 ‘설’에 그칠 확률이 크다. 현대상선은 현대그룹 계열사 중 유일하게 현 회장의 핏줄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는 회사다. 현 회장의 아버지인 故 금석 현영원 전 현대상선 회장의 흔적이 남은 곳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남편인 故 정몽헌 전 회장이 가장 공을 들인 계열사이기도 하다. 회사 곳곳에 아버지와 남편의 혼이 서려 있는 만큼 쉽게 팔기는 어려울 것이란 관측이다.
더불어 현대상선이 매각될 경우 현대그룹 지배구조에도 혼란이 올 수 있다. 현대증권과 현대상선을 모두 매각하게 되면 현대엘리베이터만 남는 소그룹으로 전락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현 회장의 경영권도 위협받을 수 있다.
때문에 현 회장이 범 현대가에 도움의 손길을 청할지에 대한 관심도 높다. 과거 시숙들과 갈등을 빚었지만 구원투수가 부재한 상황에서 현대자동차그룹에 손을 내밀 가능성도 있는 것이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현대자동차그룹의 경우 현대글로비스나 HMC증권 등을 갖고 있기 때문에 현대상선, 현대증권 등과의 시너지 효과를 기대해볼 수 있다”고 관측했다.
박시은 기자 seun897@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