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비 인터뷰] 초행길을 선택한 '서부전선' 감독 천성일의 도전기
[무비 인터뷰] 초행길을 선택한 '서부전선' 감독 천성일의 도전기
  • 김종현 기자
  • 입력 2015-10-05 17:00
  • 승인 2015.10.05 17: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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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에 열정을 녹이고 영화에 도전을 담아내다

[일요서울 | 김종현 기자] 올 추석연휴를 겨냥해 대작들이 쏟아진 가운데 일명 ‘구구케미’로 개봉 전부터 관심을 끌었던 영화 ‘서부전선’이 도전장을 내밀었다. 특히 이 작품은 그간 스타작가로 승승장구하고 있는 천성일 감독의 도전기로 이제는 작가의 영역을 벗어나 감독으로서도 자리매김하는 뜻 깊은 작품이다. 쉽지 않은 그의 도전기를 만나봤다.

최근 영화 ‘서부전선’ 천성일 감독은 서울 종로구 사간로 한 카페에서 [일요서울]을 만나 개봉하기까지의 우여곡절을 솔직함으로 대변했다.
 
담담한 척 애쓰고 있다는 그는 “계속 최면을 걸고 있다. 수많은 영화중에 내 영화기이도 하지만 담담하게 결과를 받아들이고 현실을 보자라고 생각한다”면서도 “진짜 최면이 안 걸린다”고 답답한 심정으로 인터뷰를 시작했다.
 
천 감독은 이미 영화계에서는 스타작가로 유명하다. 앞서 영화 ‘7급 공무원’을 비롯해 드라마 ‘추노’, 지난해 800만을 돌파했던 영화 ‘해적’도 그의 작품이다.
 
그의 명성 덕분인지 영화감독으로 첫 스크린에 도전한 천 감독에게는 요즘 사는 게 쉽지 않은 듯 했다. 그는 “드라마 같은 경우 일주일이 두 번씩 개봉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결과도 바로 나오고 모든 비난을 받는 등 그간 훈련된 줄 알았더니 그런 고통이나 긴장은 훈련으로 극복되는 게 아닌 것 같다”면서 “스스로 조마조마하면 주위사람들에게 전염될까봐 ‘괜찮아, 잘 될 거야. 열심히 했으니 행복하면 되지’라고 얘기를 하는데 스스로도 납득하기 힘들다고 고충을 설명했다.
 
특히 가족들이 전 대회에서 성적이 좋았으니 메달 권에 들지 않겠다고 낙관하는 것에 대해 종목이 바뀌었다고 강조한다며 자신의 심경을 전했다.
 
하지만 천 감독의 불안감은 영화 흥행에 머물러 있지 않다. 남들이 바라보는 편견에 대해 억울함을 드러냈다.
 
그는 “밖에서는 ‘연출 안 해도 먹고 살잖아’, ‘나중에 안 좋으면 먹고 살 것 있잖아’라는 얘기를 듣고 싶지 않아서 오히려 그게 더 짐이 되고 있다”고 항변했다.
 
천 감독은 “정말 다른 직종에 뛰어든 기분이다. 똑 같은 운동선수여도 종목이 다르다. 똑 같이 영화를 한다고 하고 움직인 기반이 같다 하더라도 작가와 프로듀서, 감독은 전혀 다른 직종이다. 회로 자체가 다른 것 같다”고 첫 연출에 대한 소감을 전했다.
 
이처럼 개봉까지 힘들었다고 역설하고 있지만 영화 촬영과정에서의 행복감은 여전히 그의 눈빛에 담겨져 있었다.
 
무한 진구 사랑…글로 말하고 연기로 답하다
 
우선 캐스팅에 관해 묻자 “진구는 처음부터 인상이 너무 좋았다. 당시 진구가 다른 영화를 하고 있을 때였는데 자리를 피하고 싶어서 좀 기다릴 수 있다고, 지금 하고 있는 작품에 충실하라고 말했더니 진구가 배려심 좋은 감독님이라고 말해줘서 편하게 풀렸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특히 여진구가 감독이 모르는 부분을 솔직하게 얘기해 주는 게 좋았다고 천 감독은 말했다.
 
그는 “글을 쓰고 연출을 했지만 전장에 떨어진 18살의 기분을 잘 몰랐다. 하지만 진구가 그것에 대한 대답을 연기로 해줬다”면서 “자기 캐릭터에 동화돼 만들어줘서 인상 깊었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더욱이 천 감독의 진구사랑은 끝이 없었다. 그는 “진구가 되게 귀엽고 장난 끼가 넘친다. 하지만 울 때는 굉장히 슬프고 그 간극을 잘 메꿔준 것 같다”면서 “다만 진구가 배우로서 욕심을 내고 있는 가 아닌가, 만족하는 가를 파악하기 힘들었다”고 돌아봤다.
 
그러나 천 감독은 “늘 뭐가 됐던 간에 단 한 점의 후회도 남기지 말라”라고 주문했던 만큼 배우가 하고 싶은 것에 대해 맞춰 갔다고 설명했다.
 
여진구와 반대로 배우 설경구에 대해서는 힘들었다고 토로했다.
 
천 감독은 “제가 작품을 하면서 못이기는 사람이 있다”며 “그게 배우다. 항상 드라마를 할 때도 배우들과 소통을 많이 했다. 배우를 다 안다고 생각하고 썼다. 근데 그 역할을 연기 하는 배우랑 얘기를 할 때는 배우를 반도 파악을 못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이런 상황은 설경구를 만나면서 더욱 뼈저리게 공감한 듯 했다.
 
그는 “글을 쓰고 연출을 한다고 해서 다 안다고 생각했다. 막상 경구 형이랑 캐릭터 얘기를 하다보니깐 나보다 더 잘 알고 있었다”며 자존심이 상할 정도 였다고 푸념을 늘어봤다.
 
그 만큼 감독으로서는 호되게 신고식을 치른 셈이었다.
 
특히 설경구의 조언 덕분에 촬영 내내 도움을 받았다며 “중간에 시나리오들은 조금씩 수정하면서 찍었다. 글로는 맞는데 연기에 대입하니 안 맞는 부분이 있었다. 또 배우에게 졌지만 같이 만든다는 것은 재미있었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초보감독, 신뢰로 거장과 소통하다
 
설경구에 대한 애증 아닌 애정은 인터뷰 내내 가득했다. 천 감독에게 설경구에 대한 첫 인상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천 감독은 “영화계에 첫 데뷔한 작품이 ‘원스어폰어타임’인데 ‘실미도’랑 같이 개봉했었다”고 회상하며 “평생 한 번 볼까 말까 하는 배우였다. 결코 쉽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첫 느낌을 전했다.
 
그러나 준비과정에서 소통을 통해 신뢰를 쌓아갔다며 “대등한 입장에서 토의하고 두세 번 찍고 나니깐 되게 편해졌다”면서 “설경구 씨가 한 모든 말에는 이유 없는 말들이 없었다. 쓸때 없이 고집을 부린다거나 논리적이나 감정적으로 이유가 없는 말이 없었다”고 깊은 신뢰를 나타냈다.
 
특히 설경구 덕분에 굉장히 펀하게 작업을 했다며 감탄할 정도였다.
 
서로의 신뢰감 때문인지 천 감독과 설경구는 만화 ‘톰과 제리’ 같은 모습이다.
 
천 감독은 “경구 형이 제작보고회 때 감독이랑 호흡이 엄청 안 맞았다고 애기하더라. 웬만하면 배우가 감독이랑 호흡 안 맞았다고 얘기하기 쉽지 않을 텐데 그런 얘기를 서슴지 않고 할 정도로 편해졌다”면서도 “홍보하는 자리에서 ‘여진구의 서부전선’ 기대해 달라”고 소심한 응수를 뒀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설경구에 대한 만족감을 대단했다. 그는 “우는 연기에서 삶에서 우러나오는 울음 같은 것이 담겨야 된다고 생각했다. 그 간극을 메꿔줄 수 있는 최고의 배우”라고 호평했다.
 
출연배우들과 스태프들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고 자평하면서도 천 감독은 연출가로서의 모습에 아직 낯설어 하는 표정이었다.
 
그는 “글을 항상 써서 낼 때는 발가벗고 앞에 서는 같은 느낌이다. 내가 가지고 있던 감성, 지식 등이 다 쏟아져 나온다. 결국 ‘나는 이 정도 밖에 안 되는 인간이야’라고 보여주는 것 같다”며 “연출가로서는 발가벗고 춤추고 있는 느낌”이라고 설명했다.
 
천 감독은 “연출로서 이름을 내세우는 게 아니라 연출로서 나가야만 하는 상황인데 그게 더 심하더라. 글은 병풍을 치면 가려줄 수 있는 장치가 있는데 연출은 적나라하게 보여줘야 한다. 마치 아무도 안보고 있는 데도 춤추고 있는 느낌”이라고 심경을 토로했다.
 
더욱이 그는 “아내와 지인들뿐만 아니라 스스로도 어느 순간 영화가 아니라 영화를 보는 사람들을 보는 습관이 생겼다”며 “살면서 재미있는 것을 잃어버린 느낌”이라고 아쉬워했다.
 
천 감독은 “영화를 보통 시간으로 보는 경우가 많다. 시간을 확인해서 반응들이 있는 지를 확인하게 된다. 습관적으로 잘못됐다고 생각하지만 끊임없이 객관화를 해야 하니 당연하다. 영화를 보는 재미를 잃어버린 것 같다”고 영화인으로서 감내해야 하는 안타까움을 전했다.
 
힘든 영화인의 길…코믹으로 승화시켜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에 대한 도전정신은 여전했다. 특히 가장 표현하기 어렵다는 코믹 장르를 접목시키면서 스스로 쉽지 않은 길을 개척하고 있다.
 
천 감독은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좀 어울리지 않지만 주제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 것인 데가 중요했다”며 “영화 ‘해적’도 마찬가지였다. 당초 주제가 영화가 가지려고 하는 무게랑 맞닿아 있었다. 그 나름 의미 있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가장 편안한 코드가 코미디라고 생각했었다”며 “드라마 ‘추노’에서도 제일 힘을 준 부분이 얘기가 무겁다 보니깐 유머러스하고 코믹한 것을 살리려고 얘를 썼다”고 강조했다.
 
그는 “의미라는 것은 누가 주장해서 전달되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 노래처럼 읊조려서 천천히 젖어들도록 담기는 게 아닌가 싶어서 강한 주장은 안하려고 애를 쓴다. 그래서 코미디를 자주 선택하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굉장한 부담감이 전제된다는 게 그의 속내다. “배우들도 힘들고 저도 힘들고 ‘희극을 노래하는 비극’이라는 말만 기억하자고 독려했다”며 “본질과 현장에서 느끼는 괴리가 크다. 그게 조화되거나 담아내는 과정들이 많이 무리가 되는 부분들도 있었다. 대가가 아니고 많은 경험이 있었던 것도 아니어서 늘 의심하고 질문하며 찍어갔던 것 같다”고 털어놨다.
 
특히 영화 ‘서부전선’에서 천 감독은 “같이 했던 배우나 스태프들 모두 행복했던 작품”이라고 정의했다.
 
그는 “영화의 본질이 울고 나오던 간에 재미있게 보고 나오는 것이잖아요. 영화를 만드는 과정 자체가 영화만큼 재미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 에너지가 나와야 하기 때문에 그런 면에서는 성공했다. 정말 행복하게 만들었다”고 평가했다.
 
특히 스태프 시사회를 따로 마련할 정도로 각별한 애정을 드러냈다.
 
그간 수많은 우여곡절을 겪으며 개봉까지 완성했지만 여전히 ‘서부전선’에 대한 아쉬움도 남아 있었다.
 
천 감독이 꼽은 가장 아쉬운 부분은 배우 정석원의 촬영 분량이었다. “정말 애정을 가진 역할이었다. 배우도 좋지만 역할도 중요했다. 하지만 편집에서 다 드러낼 수밖에 없었다. 가장 큰 불찰”이라고 전했다.
 
이에 정석원 씨에 대해서는 다음 작품으로 꼭 갚겠다는 게 그의 의지다. 더욱이 천 감독은 “후반 작업에서 갈등을 빚었다며 백지영(정석원 아내) 씨가 간식차도 보내줬는데 촬영분을 결국 지키지 못했다”며 미안함을 전했다.
 
이와 더불어 후반작업 중 극 중 앞뒤 설명 장면들을 많이 드러냈다며 “어디서 그쳐야 할지를 그게 참 힘들었다”고 털어놨다. 하지만 비교적 쉽게 작업을 마무리 했다는 것이 천 감독의 솔직함이었다.
 
글에 열정을 녹이고 영화에 도전을 담아내다
 
앞으로 그는 이야기를 계속 만들어 놓는 게 할 일인 것 같다며 “이야기를 담을 수 있는 그릇이 영화나 드라마가 될 것 같다. 시나리오로 나오건 대본이 나오건 그걸 가장 어울릴 만 분들에게 드리는 게 첫 번째 임무인 것 같다”고 전했다.
 
당분간은 천 감독은 작가로서의 업무에 더 충실하겠지만 그 중 하고 싶은 작품이 나오면 다시 도전할 생각이라는 각오도 전했다.
 
그는 “의지만 가지고는 연출에 도전할 수는 없는 것 같다. 다음 작품 뭐 할 것이냐고 물어보는 제작자가 아직 나타나지 않았다”며 “아직은 다음 작품에 욕심내는 것조차 건방진 것 같다. 아직 평가를 제대로 못 받았다”고 조심스러운 입장을 전했다.
 
하지만 천 감독은 앞으로 의지가 생길만한 작품이 나오면 다시 힘을 내보겠다고 바람과 함께 당찬 포부로 인터뷰를 마쳤다.
 
<사진촬영=송승진 기자>

 

김종현 기자 todida@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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