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BK’ 하나의 사건,서로 다른 판결
‘BBK’ 하나의 사건,서로 다른 판결
  • 최은서 기자
  • 입력 2011-05-03 15:35
  • 승인 2011.05.03 15:35
  • 호수 887
  • 12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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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BK 사건 둘러싼 상반된 법원 판결 왜?

‘BBK 사건’을 둘러싼 다수의 소송에서 재판부가 상반된 판결을 내려 주목 받고 있다. BBK 수사팀은 김경준씨 변호인단과 정봉주 전 의원을 상대로 낸 명예훼손 소송에서 모두 패소했다. 앞서 재판부는 BBK 수사팀이 시사주간지 ‘시사인’과 주진우 기자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 항소심에서도 원고 패소 판결했다. 반면 2007년 대선을 앞두고 이명박 대통령의 직계 가족과 친인척, BBK 사건 관련자들을 조사한 국가정보원 직원 고모(46)씨에게는 유죄가 선고됐다.

법원이 BBK 수사팀 항소심에서는 “공직자 또는 공직 사회에 대한 감시비판 견제라는 정당한 표현의 범위를 벗어난 것으로 평가되지 않는다”고 판단해 원고 패소 판결을 한 반면, 고씨에 대해서는 “고위공직자 비리를 적발하고 부패를 방지하기 위한 정보활동은 국가정보원법에 위반된다”고 판단, 유죄를 선고한 것이다.

BBK 수사팀이 수사에 대한 의혹 제기로 명예가 훼손됐다며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 항소심에서 전패했다.


BBK 수사팀, 항소심 전패

서울고등법원 민사 19부(고의영 부장판사)는 지난달 26일 수사팀이 김씨 변호인 2명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했다. 재판부는 “공공적·사회적 의미를 가진 사안에 관한 것으로 이에 관해서는 표현의 자유에 대한 제한이 완화돼야 한다”면서 “이 사건 발언 및 공개는 국민의 감시와 비판의 대상이 되는 검사의 직무수행에 관한 것으로 악의적이거나 현저히 상당성을 잃은 공격이 아닌 한 이 사건 공개 및 발표에 의한 감시와 비판 기능이 쉽게 제한되어서는 안 된다”고 판시했다. 이어 “공직자 또는 공직 사회에 대한 감시·비판·견제라는 정당한 표현 범위를 벗어난 것으로 평가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당시 김씨 변호인들은 기자회견을 열어 ‘김경준 접견 대화록’을 공개하는 한편 ‘검찰 수사에서 회유와 협박이 있었다’고 주장한 바 있다. 이에 수사팀은 “수사팀이 수사과정에서 김씨에게 허위 진술을 하도록 강요하고, 검찰 구형량을 무기로 삼아 김씨를 협박하거나 설득 회유한 것으로 인식되도록 한 것”이라며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이날 재판부는 또 수사팀이 정봉주 전 대통합민주신당 의원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 대해서도 원고 패소 판결했다. 재판부는 “정당의 간부나 대변인으로서 정치적 주장이나 논편의 특수성이 고려되어야 한다”며 “정 전 의원의 발언은 공직자 또는 공직 사회에 대한 감시·비판·견제라는 정당한 표현 범위를 벗어난 것으로 평가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정 전 의원은 “검찰이 BBK가 이명박 대통령 후보의 것이라는 김씨 자필 메모를 수사과정에서 누락시켰다”면서 “검찰은 조작수사, 왜곡수사, 부실 수사를 했다는 것을 자백하고 모든 자료들을 국민 앞에 낱낱이 공개할 것을 요청한다”고 의혹을 제기한 바 있다. 이에 수사팀은 “정 전 의원의 발언은 수사팀이 수사과정에서 이명박 대통령 후보의 혐의를 덮어주기 위해 불리한 증거 자료를 숨기거나 은폐하는 방법으로 짜맞추기식 수사를 한 것으로 인식되도록 한 것”이라며 소송을 제기했다.

이에 앞선 지난달 21일 수사팀은 시사인과 주 기자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 항소심에서도 패소했다. 재판부는 “해당 기사는 공공적·사회적 의미를 가진 사안에 관한 것으로 이에 관해선 언론의 자유에 대한 제한이 완화되어야 할 것”이라며 “해당 기사는 공직자 또는 공직 사회에 대한 감시·비판·견제라는 정당한 언론활동의 범위를 벗어난 것으로 평가되지 않는다”고 판시했다.


고씨의 정보수집, 불법 판단

반면, 서울중앙지법 형사 16단독곽부규 판사는 지난달 7일 국정원 협력단 현안지원과 정보관(5급)으로 재직하면서 정부 기관을 통해 이 대통령 부동산 관련 정보를 열람·수집하는 등 직권을 남용한 혐의로 기소된 고씨에게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2007년 7월 한나라당은 국정원이 이 대통령 후보에 대해 뒷조사를 했다고 의혹을 제기한 바 있다. 대선 이후 서울중앙지검은 본격 수사에 들어가 2009년 7월 고씨를 기소했고, 법원은 2년에 가까운 재판 끝에 고씨의 정보 수집을 불법으로 판단, 유죄를 선고했다.

판결문에 따르면 고씨는 2006년 하반기에 이 대통령 후보와 주변인물 131명의 부동산 보유현황과 소득내역 등 560건에 달하는 정보를 불법 수집한 것으로 드러났다. 고씨가 뒷조사한 대상에는 이 대통령의 직계가족과 친인척은 물론, 김경준 전 BBK 대표 부인인 이보라씨, 김씨 장인인 이두호 전 보건사회부 차관, BBK 직원의 주민정보까지 포함 됐던 것으로 드러났다.

고씨는 2006년 11월, 불법 수집한 내용을 종합해 42쪽에 달하는 보고서를 작성했으며 컴퓨터에 보관하며 관리해 온 것으로 드러났다. 재판부는 “고씨의 수집 정보가 여부를 알 수 없으며, 사용됐더라도 어떻게 사용됐는지 알 수 없다”고 밝혔다. 검찰 조사와 공판과정에서 고씨는 “상부 지시에 따른 것으로 정보 열람 이후 수차례 보고했다” 진술한 반면 고씨의 직속 상급자는 “고씨가 개인적 관심사에 의해 뒷조사를 한 것”이라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재판부는 “고위공직자의 비리를 적발하고 부패를 방지하기 위한 정보수집활동은 국정원법상 규정된 국정원 직무범위에 포함되지 않는다”며 “법에 따른 절차를 지켰다는 고씨의 주장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또 “국정원 업무는 국민의 기본권을 제한 또는 침해할 수 있어 국정원법에 명시된 내용으로 한정돼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지위와 권한을 남용해 특정 공직자 1인을 상대로 개인정보를 수집한 것은 위법행위로 기존 업무 관행에 따른 것이라 볼 수 없다”며 “이 대통령의 차명 부동산 보유 소문을 듣자 마자 조사에 착수, 상급자에게 보고 없이 뒷조사한 점 등은 납득할 수 없다”고 판시했다.

한편 국정원은 “국정원의 직무범위와 관련 모 언론은 ‘전 국정원 직원 고씨를 두둔하는 것처럼 비칠 수 있는 의견서를 법원에 제출했다’고 보도한 바 있다”며 “이에 대해 국정원은 2009년 12월 16일 법원의 사실 조회 요청에 ‘부정부패는 국가안전보장에 대한 중대한 이협으로 국정원의 업무 범위에 포함되지만 고씨의 경우처럼 개인적 정치적 목적 하에 특정인의 사생활을 광범위하게 탐지하는 것은 직무범위에 속하지 않는다’는 내용의 답변서를 제출한 바 있으며 이는 고씨를 두둔하는 내용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최은서 기자] choies@dailypot.co.kr

[사진=정대웅 기자] photo@dailypot.co.kr

최은서 기자 choies@dailypo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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