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核전쟁 일어난 줄 알았다 ”
[일요서울|장휘경 기자] 지난 8월 12일 중국 톈진항 화학물질 보관업체에서 114명이 사망하고 400여 명의 부상자가 발생한 대형폭발사고가 일어났다. 열흘 이상이 지났지만 중상자가 많아 사망자는 더 늘어날 전망이다. 사고물질의 유독성으로 인해 텐진항 주변 3km 내 대피령이 내려진 상태로 중국인들의 불안과 공포는 높아지고 있다. 이번 중국 톈진항의 유해 화학물질 폭발 사고를 반면교사 삼아 과연 우리나라의 화학물질 관리는 안전하게 행해지고 있는지 짚어보자.
중국 동북부 톈진(天津)항이 폐허로 변했다. 지난 12일 오후 11시 30분쯤 발생한 두 차례 폭발 사고로 수천대의 자동차가 새까맣게 불에 탔고, 뼈대만 남은 빌딩은 화염에 휩싸였다. 현지 언론은 톈진항 컨테이너 야적장에 있던 현대차 3950대와 기아차 2175대도 불에 타는 등의 피해를 입었다고 전했다.
텐진항 폭발 사고 원인은 아직 정확하지 않지만 유독물질 취급 인허가 과정이나 과다 보관 등의 문제점이 거론되고 있다.
게다가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중국 톈진(天津) 폭발사고 현장에서 신경성독가스 유출가능성도 논란이 되고 있다. 그러나 독가스 유출 가능성에 대해 정부 대책반이 일관되게 부인하고 있어 시민들이 오히려 불안감을 느끼고 있다.
중국중앙(CC)TV가 지난 18일 방송한 '초점방담(焦點訪談)'에서 베이징공안소방총대 부참모장 리싱화(李興華)는 “텐진항 폭발사고 닷새째인 지난 16일 현장조사에서 시안화나트륨과 신경성 독가스가 검출됐다”면서 “이 두 종류 독성기체 수치가 최고치였다”고 말했다.
베이징 화공대학 국가신(新)위험화학품평가 및 사고감정실험실의 먼바오(門寶) 박사는 신경성 독가스는 일단 흡입하면 신경세포에 작용해 호흡기, 심장 등에 갑작스런 기능정지로 사망에 이르게 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톈진시 환경보호국 총공정사 바오징링(包景嶺)은 19일 오전 기자회견에서 "신경성독가스는 우리가 측정하는 대상이 아니라 일반적으로 군사부문에서 측정책임을 맡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는 구체적으로 어떤 물질인지 알 수 없다. 만약 사실이라면 군사부문과 연락해서 조치를 취해야겠지만 누군가의 상상이라면 달리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논란이 가열되자 신화통신은 군사의학과학원 화학무기 전문가조의 말을 인용해 현장에서 근본적으로 신경성 독가스의 발생은 불가능하며 중대한 오판이라고 밝혔다.
폭발사고 전문가조에 참여하고 있는 톈진대학 환경과학공정학원 원장조리 류칭링(劉慶嶺) 교수도 비가 온다고 독성가스가 발생하는 것은 아니라고 말했다.
그는 중국청년보와 인터뷰에서 시안화나트륨은 백색 분말 상태로 물속에서 쉽게 녹는 성질이 있지만, 순수한 물과 화학반응을 일으켜 다른 물질로 바뀌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정부 대책반은 독가스 발생을 부인하고 있지만 시민들 사이에서 불안감은 커지고 있다. 18일부터 톈진지역에 비가 오면서 물과 반응하는 시안화나트륨의 잠재적 위험이 부각됐다. 도로상에 백색거품이 목격되면서 시민제보도 잇따랐다.
현장 취재를 인민일보, 신화통신, CCTV 등으로 제한한 당국의 조치도 불만을 샀다. 시민들이 가장 알고 싶어하는 정보를 통제하고 있다는 것이다.
시민들은 정부의 발표에 하나같이 극도의 불신감을 표명하고 있다.
폭발 파급력 상당…국내외 관심 집중
거론되고 있는 사고원인 물질 중 시안화나트륨, 질산칼륨, 질산암모늄은 급성독성과 폭발성이 강해서 우리나라의 경우 사고대비물질로 규정하고 있는 위험물질이다. 특히 질산암모늄의 경우 로켓발사 화약으로 쓰일 만큼 폭발성이 아주 강한 물질로 알려져 있다. 핵폭탄급 폭발의 원인을 짐작할 수 있는 부분이다.
또한, 물과 접촉 시에는 시안화나트륨은 시안화수소, 탄화칼슘은 아세틸렌이라는 유독가스를 발생시켜 인체에 노출되면 호흡기, 피부, 눈 등에 치명상을 입힐 수 있고, 시안화나트륨의 경우에는 태아나 생식능력에 이상을 주는 대표적 생식독성 물질 중 하나이다.
이들은 유독성이 강한 만큼 유출 방지와 수중 누출 시 석회 등을 첨가 후 제거하는 방제를 실시해야 하는 등 신속한 조치를 취해 확산을 막아야 한다. 중국 당국의 발 빠른 유출 실태와 방제 작업이 이루어져야 하는 이유다.
특히 이번 사고에서 가장 큰 문제점은 아직까지 정확한 사고원인이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부실한 안전관리가 거론되고 있다.
또한 600m 떨어진 아파트 단지를 포함한 지역주민들이 이처럼 위험한 물질을 취급하는 업체의 존재를 모르고 있었다는 것도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더구나 사고 이후에도 중국당국의 정확한 정보전달이 이뤄지지 않아 주민들의 공분을 사고 있다.
그렇다면, 이번 사고로 본 우리나라의 화학물질관리 현주소는 어떨까. 우리나라에서 제2의 텐진항이 나오지 않기를 바라며 시급히 정비되어야 할 법제도적 문제를 짚어본다.
다음은 작년 5월 발의된 후 현재까지 국회에서 잠자고 있는 ‘지역사회알권리법(화학물질관리법 일부개정안)’에 포함되어 있는 내용이다.
첫째, 사고대비물질의 범위를 확대해야 한다. 우리나라는 현재 화학물질관리법(이하 화관법)상 사고대비물질을 69종으로 한정하고 있다. 그 독성과 폭발성이 강해 화관법 42조에 의해 사업주는 물질별 위해관리계획서를 작성, 제출하고 지역주민에게 1년에 1회 이상 고지하게 되어 있다. 사고 시 피해가 심각한 물질인 화관법 상 정해놓은 유독물질은 너무 적다. 미국의 경우 응급대응계획 수립 대상을 고위험 물질(Extremely Hazardous Substances) 355종으로 확대 적용하고 있는 만큼 우리나라도 시급히 유독물질 중 사고대비물질로 확대 지정하거나 유독물질 전체를 위해관리계획서 작성, 제출, 고지의무 물질로 규정해야 한다.
둘째, 화학물질 정보공개 범위가 확대 적용돼야 한다. 우리나라도 미국이나 유럽처럼 소규모 취급사업장 전체를 포괄하고 사용량, 저장 보급량은 아니더라도 사업장별 취급량이 공개되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주민거주 지역과 인접한 곳에 취급사업장이 설치되고 있는 문제다. 성장만을 중시한 무분별한 화학물질 취급사업장의 설치운영이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화학물질 주요 산단 곳곳에서 문제가 발생하였고 주민 보상과 집단이주 등의 사례가 있었다. 더군다나 아직까지 우리나라는 전국 항구의 화학물질 보관업체 관리가 체계적이지 못해 심각성을 더하고 있다. 이번 사고로 엄연한 현실로 위험의 정도를 실감한 만큼 중앙정부와 주요 산단 지자체에서는 화학물질관리와 사고 시 대응체계인 ‘지역사회알권리법과 조례’ 제정에 적극 나설 것을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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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휘경 기자 hwikj@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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