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요서울 | 김종현 기자] 올 초부터 부진했던 한국영화계가 여름 대작들의 관객몰이에 한국영화사상 첫 쌍 1000만 관객등원이라는 대기록을 앞두고 있어 한껏 고무돼 있다. 더욱이 영화 ‘암살’과 ‘베테랑’은 주연배우들의 과감한 변신을 통해 영화의 흥행을 가속화했고 최근의 사회 현상도 영화에 집중시키는 감초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이들의 흥행 비결을 만나본다.
올여름 흥행왕좌에 오른 영화 ‘암살’은 지난 21일 영화진흥위원회 통합전산망 집계 결과 누적 관객 수 1110만 명을 돌파하며 올해 첫 국내 천만 영화자리에 이름을 올렸다.
또 흥행질주 중인 영화 ‘베테랑’도 누적관객수 769만7100여 명을 기록해 천만관객 동원까지 240만 명 정도 남겨놓은 상태다. 여기에 ‘베테랑’은 개봉 3주차에 접어들었지만 여전히 박스오피스 1위를 수성해 가까운 시일 내에 무난히 1000만을 돌파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이에 한국영화계는 역사상 최초의 쌍 천만 시대를 개막하게 됐다.
이 같은 경이적인 기록달성에 대해 전문가들은 출연배우들의 변신과 재발견을 손꼽는다.
‘암살’에서 극의 중심을 담당하며 저격수로 등장한 전지현은 최근까지 영화 ‘도둑들’, SBS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까지 도도하고 까칠하면서도 사랑스러운 스타이미지를 굳혀왔다. 하지만 영화 속에서 장총을 들고 지붕을 뛰어다니고 깨진 안경을 쓰고도 백발백중의 적중률을 자랑하는 안옥윤으로의 변신은 그저 놀랍기만 하다. 관객들 역시 영화 속 캐릭터를 자연스럽게 표출해내는 전지현의 변신에 감탄을 금치 않는다.
‘베테랑’에서 잔인한 악당으로 변신해 관객들을 소름끼치게 했던 유아인도 그간 늘 가진 것 없어 고난을 겪지만 결국 재능을 인정받는 캐릭터를 벗어나 방탕한 재벌의 모습을 제대로 보여줬다. 특히 수줍게 웃으면서도 섬뜩한 명령을 내리는 조태오를 연기하며 황정민, 유해진, 오달수 등 쟁쟁한 선배 배우들에게 밀리지 않는 자신감을 드러냈다.
이와 함께 충무로 흥행보증수표인 황정민과 하정우 역시 관객들의 믿음처럼 캐릭터를 완벽히 소화해내며 한국영화계의 대들보임을 다시 한 번 입증했다.
황정민은 ‘베테랑’에서 재벌남 조태오(유아인 분)와 대결을 펼치는 형사 서도철 역을 맡아 화끈한 액션을 선보였다. 이미 ‘신세계’, ’부당거래‘ 등에서 액션 연기를 선보였지만 이번만큼은 황정민 액션의 완성판이라고 불릴 정도로 화끈하면서도 디테일 넘치는 연기를 완성했다. 더욱이 범인 검거 순간에도 막춤을 추는 여유 있는 모습까지 소화해내는 등 투박하지만 소신있는 서도철을 서도철답게 만들어냈다.
‘암살’속 하정우도 “이제 서야 하정우의 섹시한 모습을 봤다”는 평가가 나올 정도다. 그는 말끔한 코트를 차려입고 쌍권총을 휘두르며 총격전을 펼쳐 어느 서부 영화의 주인공을 연상시켰다. 또 극 중반부터 자연스럽게 스며들며 후반부에서 극의 주연으로 부각되는 모습은 하정우의 기량을 확인할 수 있는 묘미였다.
몸 사리지 않는 연기로 박수를 받은 이정재 역시 변신의 귀재였다. 그는 청년 학도병부터 60대 노인까지 소화하면서 수시로 체중조절을 하며 몰입감을 높였다 ‘베테랑’에서 홍일점으로 등장한 장윤주도 망가짐을 주저하지 않으며 첫 연기 도전에 성공했다.
흥행열풍은 예기치 않은 우군이 등장해 가속화 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한동안 우리 사회의 뜨거운 화두였던 갑을 논란이 근간에도 잇달아 터지면서 ‘베테랑’의 흥행에 불을 붙였다. 최철원 M&M대표의 매값 폭행사건을 비롯해 남양유업 갑질 논란,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의 땅콩회항 사건, 롯데그룹의 소유권 분쟁 등으로 국민들의 재벌가를 향한 시선이 차가운 상황에서 이번 작품은 을의 분노를 표출하며 공감대를 이끌어냈다.
‘암살’은 광복 70주년을 맞아 아베 신조라는 뜻하지 않은 우군을 만났다. 아베 日 총리는 지난 14일 전후 70년을 맞은 담화문에서 진정성 있는 사과가 빠져 한국과 주변국가의 공분을 샀다. 이 같은 주변 정세는 영화의 관객층을 확대시키는 영향을 미쳤다. ‘암살’의 한 관계자는 “주 관객층이 20~30대에서 40~50대 이상으로 옮겨가고 있다”면서도 “(아베 신조는) 영화 외적인 요인 일뿐 직접적인 영향력은 거의 없을 것으로 판단한다”고 말을 아꼈다.
이처럼 대표 흥행 비즈니스인 영화는 흥망성쇠를 결정하는 요인으로 단연 콘텐츠와 캐스팅, 감독의 역량을 꼽을 수 있다. 하지만 최근 ‘연평해전’이 메르스를 피해 6월 호국 보훈의 달에 개봉하면서 기대 이상의 성과를 얻은 것처럼 대외 환경 역시 흥행성적을 좌우하는 요인으로 급부상했다.
뜻 밖의 호재를 만난 ‘암살’과 ‘베테랑’의 선전에 최근 개봉한 ‘뷰티 인사이드’까지 흥행주로 급등하면서 한국영화계의 훈풍이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앞으로 어떤 흥행요인들이 한국영화의 전성기를 이끌지 더욱 궁금해지는 지점이다.
김종현 기자 todida@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