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지지 않는 연예인 성상납
사라지지 않는 연예인 성상납
  • 최은서 기자
  • 입력 2010-10-19 12:44
  • 승인 2010.10.19 12:44
  • 호수 860
  • 16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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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은 연예기획사, 속은성매매 포주
‘인기 스타’가 되려면 성상납은 관행인가. 연예인 지망생들을 회유 협박해 성상납을 강요하는 ‘스폰서 성상납 관행’이 여전히 존재한다는 것을 알려주는 사건이 발생했다. 가수를 지망하는 10대 연습생 2명에게 ‘스폰서 성매매’를 알선하고 강요한 연예기획사 대표가 경찰에 덜미를 잡힌 것. 연예계의 고질적인 병폐로 지적되어 온 ‘성상납’은 10대에게도 예외가 아니었던 셈이다. 비극적으로 생을 마감한 고 장자연씨 사건 이후 내부 자정을 다짐했던 연예계에 적잖은 파문이 예상된다. 가수가 되겠다던 10대 소녀들의 꿈을 짓밟은 사건의 전모를 들여다봤다.

가수를 꿈꾸던 정모(17)양과 박모(19)양은 지난 1월 H연예기획사의 오디션 공고를 보고 지원했다. 이 기획사는 바로 그 달 설립된 신생기획사로 회사를 차리자마자 여성 가수 그룹 모집 공고를 낸 것이다. H사로부터 합격 통보를 받은 이들은 뛸 듯이 기뻐했다. 전속계약을 맺고 매일같이 구슬땀을 흘리며 연습에 매진하던 이들에게 악몽이 시작된 것은 지난 2월이었다.

계약 후 얼마 안 있어 기획사 대표 김모(31)씨가 서서히 마각을 드러냈다. 김씨는 “성공하려면 스폰서를 만나야한다”며 성 접대를 강요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 말에 소스라치게 놀란 정양과 박양이 “성상납은 절대로 할 수 없다”며 완강히 거절했다. 그러자 김씨는 회유와 협박으로 두 사람을 빠져 나올 수 없는 ‘수렁’으로 내몰았다.


“성공하려면 스폰서 만나야”

김씨는 “연예계에서 잘 하려면 스폰서가 필요하다. 스폰서와 애인관계를 유지하고 성관계를 해야 투자를 받고 뜰 수 있다”며 구슬리고 7년 전속계약을 운운하는 한편 만약 일이 잘못 되면 부모에게 거액의 손해배상을 청구하겠다고 협박도 했다.

결국 겁에 질린 정양 등은 김씨의 강요에 굴복해 김씨와 친분이 있는 의류원단업자 A(41)씨와 서울과 경기도 일대의 호텔 등에서 성관계를 맺었다. 심지어 A씨는 고등학생이던 정양의 학교 앞과 집까지 찾아가 불러냈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 ‘스폰서 성상납’은 김씨가 A씨에게 “월 500만 원 씩 스폰을 해주면 소속 연예인 지망생과 일주일에 2~3회씩 성관계를 갖도록 해 주겠다”고 제안해 이뤄진 것으로 경찰 조사 결과 밝혀졌다.


기획사 대표 4600만 원 챙겨

스폰서 성상납은 무려 3개월이나 이어졌다. 계속되는 성상납에 치가 떨린 정양 등이 성상납을 정리하려고 하자 “멍청한 짓 말고 일이라 생각하고 계속하라”며 “왜 스폰을 그만 두냐. 이용해 먹어야지”라는 등 파렴치한 말도 서슴지 않았다고 경찰은 전했다.

2월부터 5월까지 총 10여회에 걸친 성상납으로 인해 정양 등이 정신적·육체적으로 피폐해져 가는 동안 김씨는 한몫을 단단히 챙겼다. A씨가 성상납을 대가로 4600만 원을 건넸기 때문이다.

경찰은 “김씨가 이 중 3000만 원을 챙기고 나머지는 피해자 두 명에게 병원 치료, 성형수술, 선물 등의 명목으로 제공했다”고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김씨는 이 돈을 개인생활비와 유흥비로 모두 탕진했다.

경찰은 전속 계약에 관한 의혹도 수사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계약 금액이 정양은 300만 원, 박양은 200만 원으로 7년 전속 계약을 터무니없이 적은 금액으로 체결했기 때문이다. 계약서에 명시된 수익 배분 역시 불공정했던 것으로 드러나 사실상 노예계약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다.


“돈 받아 쇼핑몰 투자” 주장

김씨는 지속적인 성상납을 견디다 못한 정양 등의 신고로 쇠고랑을 찼다. 경찰 조사에서 김씨는 “A씨에게 받은 돈은 모두 인터넷 의류 쇼핑몰 투자금”이라며 혐의를 전면 부인했다. 하지만 A씨가 성매매 알선 사실을 자백한데다 경찰이 계좌를 추적한 결과 이 돈은 쇼핑몰 운영에 전혀 쓰이지 않은 것으로 파악돼 궁지에 몰리게 됐다.

한편 H연예기획사 공동대표를 맡고 있었던 김씨의 애인 심모(24·여)씨에게도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심씨는 케이블 TV에도 출연했으며 지난 6월에는 ‘월드컵 응원녀’로 유명세를 타는 등 알만한 사람은 아는 인기인. 그러나 심씨는 이번 사건과 관련됐다는 물증이 없어 무혐의 처리됐다.

H연예기획사측은 지난 12일 보도 자료를 통해 결백을 주장하고 나섰다. “구속 수사 중인 김 대표는 성상납 의혹을 전면 부인하고 있고 회사 측에서도 결백을 증명하기위해 노력 중이다”라고 밝히며 “보도 이후 모든 회사 관계자 및 연습생들이 파렴치한이 됐다”며 강한 불만을 표시했다.

[최은서 기자] choies@dailypot.co.kr


# “60.2% 성접대 제의 받은 적 있다”
인권위 조사…유력 인사와의 만남도

지난해 탤런트 장자연이 스스로 목숨을 끊어 신인 연예인의 성상납 문제가 이슈로 떠올랐다. 당시 논란이 됐던 ‘장자연 리스트’가 알려지면서 거센 후폭풍을 일으켰다. 연예계의 기형적 일면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사건이었지만 가해자는 명확히 밝혀지지 않아 논란의 여지를 남겼다.

고 장자연씨 죽음을 계기로 국가인권위원회가 지난 4월 27일 발표한 ‘여성 연예인 인권상황 실태조사’도 충격을 안겨다 줬다. 성상납과 스폰서 문화가 연예계의 고질적 문제로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이 조사는 지난해 9월부터 12월까지 여성 연기자 111명과 연기자 지망생 240명 등 모두 351명을 대상으로 이뤄졌다.

실태조사 결과 조사대상 중 연기자의 45.3%가 술시중을 들라는 요구를 받은 경험이 있었고, 60.2%는 방송 관계자나 사회 유력 인사에 대한 성 접대 제의를 받은 경험이 있다고 응답했다. 또 여성 연기자의 55%가 유력 인사와의 만남 주선을 제의 받은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실태조사에 따르면 조사 대상의 심층 면접에서도 스폰서 관계를 매개하는 만남은 연예계 주변에서 매우 일상적이고 빈번한 것으로 평가됐다.

조사 대상의 58.3%가 술시중과 성상납을 거부하면 불이익을 받는다고 생각했으며, 실제로 성 접대 제의를 받은 48.4%는 이를 거부한 뒤 캐스팅이나 광고출연 등 연예활동에서 불이익을 경험했다고 응답했다.


최은서 기자 choies@dailypo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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