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저균 배달사고’ 생물 무기 개발 목적 가능성 제기
‘탄저균 배달사고’ 생물 무기 개발 목적 가능성 제기
  • 조아라 기자
  • 입력 2015-06-15 09:49
  • 승인 2015.06.15 09:49
  • 호수 1102
  • 38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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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산 미군기지에 이런일…

치사율이 95%인 탄저균이 오산 주한미군 기지 내로 배달됐다. 미국 국방부는 지난달 27일(현지시간) 이 같은 사실을 인정하며 “유타 주의 군 연구소에서 부주의로 살아있는 탄저균 표본이 캘리포니아와 메릴랜드 등 9개 주로 옮겨졌다"며 ”탄저균 표본 1개는 한국 오산에 있는 주한미군의 합동 위협 인식 연구소(ITRP)로 보내졌다"고 알렸다. 이어 "발송된 표본은 규정에 따라 파기됐다"라고 밝혔다. 미 국방부의 발표에도 탄저균 배달사고에 대한 의혹은 끊이지 않고 있다. 

 
주한미군 “재발 방지 노력”…메르스보다 더 위험
시민단체 "SOFA 개정해 국민 생명·안전 담보해야”
 
탄저균 배달사고를 두고 논란이 가시지 않고 있다. 생물학 테러에서 흔히 쓰이는 병원균인 탄저균이 오산 공군기지에 배달됨으로써 그간 주한미군이 한국 정부 모르게 연구소에서 실험을 해왔다는 의혹이 제기된 것이다. 
 
탄저균은 피부 접촉, 호흡, 오염된 식품섭취 등을 통해 감염된다. 일단 노출이 되면 감염자의 신체 부위가 썩는 등 치사율이 95% 이상이다. 탄저균은 공기 등을 통해 감염될 수 있는 만큼 반드시 죽거나 비활성화 상태에서 운반해야 한다. 살아있는 상태로 탄저균을 옮기는 것은 그간 엄격하게 금지돼왔다.
 
주한미군 측은 지난달 28일 보도 자료를 통해 “오산 공군기지에 있는 응급격리시설에서 탄저균 샘플을 처분했다”고 알렸다. 또한 일반인들에게는 어떠한 위험도 노출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훈련에 참가했던 22명에 대해서는 감염됐을 가능성에 대비해 검사를 진행했음을 알렸다. 항생제와 백신을 투여하는 등 적절한 의료 조치를 취했으며, 누구도 감염 증상을 보이지 않았음을 밝혔다. 더불어 주한미군은 탄저균 표본을 완전히 폐기했으며 시설 내 모든 표면을 닦아내는 방식으로 살균한 사실을 전했다.
 
주한미군의 발표 이튿날인 지난달 29일 보건복지부 질병관리본부는 주한미군과 공동 조사한 내용을 공개했다. 발표에 따르면 탄저균 표본은 5월 초 오산 공군기지로 반입됐다. 보건복지부 질병관리본부는 “‘주피터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새로 들여온 유전자 분석 장비를 행사에서 사용하기 위해 들여왔다”고 설명했다. ‘주피터 프로그램’은 북한의 생물학무기 공격 방어를 위해 2013년 6월부터 착수한 군사 프로젝트다. 이 프로그램의 독소 분석 1단계 실험 대상이 탄저균과 보툴리눔 에이(A)형 독소로 알려졌다. 현재 주한미군은 서울 용산과 경기도 오산 등 국내 3곳의 미군기지 내 연구소에서 생물학전 대응 실험을 진행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미 국방부는 이날 한국과 호주 24개 실험실을 비롯해 미국 11개주로 배달 사실을 확인하고 전수조사를 실시했다. 다음날인 30일에는 애슈턴 카터 미 국방장관이 한민구 국방장관에게 탄저균 배송에 대해 사과했다. 카터 장관은 “군 당국이 탄저균 배달 사고 경위를 조사하고 있다"며 “조사 결과를 한국과 신속히 공유 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사고 관련자에 대해 책임 있는 조치를 취하고, 재발방지를 위해 노력 하겠다"고 덧붙였다.
 
석연찮은 미군 발표
유사시 세균전 대비? 
 
정부와 미국의 발표에도 의혹은 가시지 않고 있다. 주한미군 측은 “탄저균 표본은 오산 공군기지 훈련 실험실 요원들이 훈련하면서 사용했다”고 전했다. 실험 목적을 밝히지 않은 채 정상적인 관리 절차에 의한 정례적인 실험실 규정에 따라 시행됐다고만 알렸다. 
 
일각에서는 미군의 석연찮은 해명을 두고 ‘생물무기 개발’을 목적으로 실험이 자행된 것이 아니냐고 주장했다. 이들은 “미국이 한반도 유사시를 대비해 세균전을 준비하고 있는 것 아니냐”고 의심의 목소리를 높였다.
 
주한미군은 우리 정부에 탄저균 국내 반입 사실을 통보하지 않았다. 뒤늦게 이 같은 사실이 알려졌지만 주한미군 측은 “SOFA(주한미군 주둔군지위협정)에 따라 위험 물질 반입 시엔 한국 질병관리본부에 통보하도록 돼 있다”며 “하지만 살아있는 균만 한국 정부에 통보할 의무가 있다”고 잘라 말했다. 이번에 배달된 탄저균은 비활성된 표본인줄 알고 통보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탄저균 표본 실험 훈련은 처음”이라는 주한미군의 발표도 의심스러운 대목이다. 주한미군에 따르면 비활성 상태의 탄저균이 유해하지 않다는 가정 하에 균 식별 용도의 실험이 최초로 실시됐다. 
 
하지만 이것이 탄저균 표본 반입이 처음이라는 뜻인지, 그간 탄저균 실험을 하지 않았다는 뜻인지 의미가 모호하다. 또한 오·배송 됐음에도 합동 위협 인식 연구소에서 탄저균 표본을 배양하는 실험을 했다면 어떤 연구와 실험을 했는지도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北 “탄저균 반입…
생화학 전쟁 준비 활동”
 
정부도 주한미군이 어떤 경로로 탄저균을 반입했고, 어느 정도로 위험한 양이며, 어떤 방식으로 폐기 됐는지를 정확히 설명하고 있지 않아 의혹은 더욱 커지고 있다. 정부는 주한미군의 탄저균 국내 반입 사실 자체를 몰랐다고 발표한 바 있다. 뒤늦게 탄저균 반입 경로가 민간 물류업체를 통해 일반 우편물과 함께 들어왔다는 사실이 알려진 만큼 허술한 안전관리 실태도 문제로 제기됐다.
 
탄저균 배달 사실이 전해지면서 북한은 “생화학 전쟁 준비 활동”이라며 공세를 폈다. 미군범죄진상규명 전민족특별조사위원회 북측본부는 지난 2일 “남한에 대한 탄저균 반입 사건을 계기로 미국이 생화학전쟁을 목표로 체계적인 준비를 해왔다는 사실이 밝혀졌다”고 지적했다. 이튿날인 지난 3일 북한 국방위원회는 “탄저균 배송 사건을 국제형사재판소 (ICC)에 회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시민단체, 
재발방지 대책 요구
 
시민·환경단체들은 미국의 정확한 해명을 촉구했다. 녹색연합 측은 “위험천만한 병원균이 국내에 반입된 시점과 오·배송된 경위, 폐기처분한 방법 등 구체적인 사안은 확인된 게 없다”며 “탄저균 반입 시점과 오 배송된 경위, 한국인들에게 미치는 영향 등을 철저한 진상조사를 실시할 것”을 요구했다. 
 
또한 “미국 정부의 재발방지 대책과 국민의 안전과 생명에 직결되는 사항에 대해 은폐된 정보를 공개할 것”을 강조했다. 더불어 국내법 및 한미 양국이 모두 가입되어 있는 ‘화학무기금지협약(CWC)’을 지킬 것을 거듭 촉구했다.
 
시민단체들은 미군의 위험물질이 국내에 반입되더라도 자발적 통보 없이는 알 수 없는 상황을 지적하며 SOFA개정을 요구했다. 한국진보연대 등 66개 시민단체는 “한·미군이 사용하는 물자의 반입, 반출 시 한국정부에 통보하고 위험물질에 대해 사전 협의와 동의를 거치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주한미군 기지 내에 무엇이 반입되고, 무엇이 반출되는지 알아야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담보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한편 정부는 오는 7월 열리는 한미 SOFA합동위에서 이번 탄저균 사태를 의제에 올려 논의할 것으로 전해졌다.
 
chocho621@ilyoseoul.co.kr
 

조아라 기자 chocho621@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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