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ㅣ홍준철 기자]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이 4박5일간 한국을 방문했다. 박근혜 정부가 들어선 이후 공식방문은 이번이 처음이다. 2013년 8월엔 ‘휴가차’ 고향을 찾은 바 있다. 그러나 반 총장의 이번 방한은 고향 방문과는 달리 머리가 무거운 게 현실이다. 유엔 창설 70주년 광복 70주년을 맞이해 고국으로 ‘금의환향’하는 자리지만 ‘성완종 리스트’ 여진이 사그라들지 않았고 ‘대망론’까지 ‘뜨거운 감자’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설상가상으로 반 총장 방한에 맞춰 터진 경남기업 베트남 소재 랜드마크72빌딩 매각 관련 친동생과 조카 이름이 거론되고 있다. 반 총장의 방한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미묘한 국내 정치의 파문을 알아봤다.
- ‘성완종 리스트’ 부담 ‘대망론’ 흔들
- 경남기업 랜드마크72 ‘동생&조카’ 사기의혹까지
반 총장은 한국을 방문하기전 지난 9일에는 러시아 제2차 세계대전 승전 70주년 기념행사에 참석했다. 이 방문에서 반 총장은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 대신 김영남 북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을 만난 것으로 전해졌다. 현 남북관계가 경색된 마당에 반 총장의 김 상임위원장과 만남을 통해 나눈 대화나 김정은 위원장 밀지를 이번 박 대통령 예방 때 건넬 공산도 높다는 분석이다.
4박5일 방한 ‘세계대통령’ 위상 강화
반 총장은 세계교육포럼 개회식 개막 연설을 시작으로 글로벌콤팩트 지도자 정상회의와 주한 국제기구 행사에 19일 참석했고 20일에는 유엔협회·유엔협회세계연맹·한국외교협회가 여는 유엔창설 70주년 기념행사에 모습을 보였다. 또한 서울디지털포럼과 유엔아아카데미임팩트 서울포럼에도 참여했다. 여성권익 향상에 이바지한 공로로 이화여대에서 여성학 명예박사 학위도 받았다. 이처럼 반 총장은 국내에 4박5일 머무는 동안 다양한 일정을 소화하며 사실상 ‘세계 대통령’으로서 위상과 리더십을 보여줬다.
이어 반 총장은 20일에는 정의화 국회의장을 만나고 오후에는 청와대에서 박 대통령과 회동했다. 박 대통령과 반 사무총장의 회동은 2013년 8월이후 두 번째다. 물론 박 대통령은 2013년 5월 뉴욕 방문 시, 같은 해 9월 러시아 주요 20개국 정상회의, 지난해 9월 유엔총회에 참석해 박 대통령과 공식 면담을 가진 바 있다.
반면 ‘성완종 파문’으로 인해 44년간 친분을 이어온 백소회 임덕규 총무가 주관하는 22일 조찬모임에는 불참했다. 임 총무는 [본지]와 전화통화에서 “반 총장은 백소회 모임에는 단 한 번도 온적이 없지만 내가 반 총장 측에 연락해 ‘안 만나는 게 좋겠다’고 제안했다”고 밝혔다. 이뿐만 아니라 반 총장은 자신의 고향인 충북 음성군 원남면 상당1리도 찾지 않았다.
한편 국내 기자들이 반 총장의 방한 소식이 알려지자 몰려들 것이 예상된 행사에도 불참했다. 반 총장은 방문 기간에 한국거래소의 ‘지속가능한 증권거래소 이니셔티브’ 가입 세레머니에 참석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거래소 방문일정이 외부로 알려지면서 경호문제로 돌연 취소되는 해프닝도 겪었다. 물론 한국 기자들의 관심은 공식행사보다는 ‘성완종 파문’ 관련 질문이 쏟아질 것을 우려해 불참한 게 아니냐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또한 반 총장은 2017년 대선에 불출마하겠다는 명확한 뜻을 공식화하지 않은 상황으로 ‘반기문 대망론’도 여전히 뜨거운 감자일 수밖에 없다.
증권거래소·고향방문 지인모임 취소…왜
특히 ‘성완종 리스트’로 충청권 대망론을 이어가던 이완구 전 총리가 낙마하고 성 전 경남기업 회장이 “반 총장과 가깝기 때문에 이를 견제하고자 검찰이 표적 수사를 한 것”이라고 주장한 바 있어 입장이 난처한 지경에 빠진 형국이다. 일단 반 총장은 이에 대해 “성 회장을 충청포럼 등 공식 석상에서 본 적 있어 알고 있지만, 특별한 관계는 아니다”고 부인한 바 있다.
또한 특정 언론사가 주최하는 행사에 참여해 주목 받기도 했다. 반 총장은 19일 조선일보가 주최하는 ‘아시안 리더십 컨퍼런스’에 참석해 ‘한반도 평화를 위해 유엔이 할 수 있는 기여’를 주제로 연설할 것이라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타 매체에서 볼멘소리가 나왔다. ‘왜 조선일보 행사에만 참석하느냐’는 불만이었지만 반 총장은 이를 무시하고 애초 일정대로 참석했다.
반 총장의 국내일정을 보면 ‘반기문 대망론’이나 ‘성완종 리스트’관련 오해할 수 있는 민감한 자리는 피하는 대신 유엔 사무총장으로서 국내외에 위상을 강화할 수 있는 자리는 일정이 빡빡함에도 불구하고 참석해 자신의 역할을 충실히 이행했다. 반 총장의 방한에 맞춰 반 총장의 형님과 조카가 국제 사기의혹을 받는 사건이 터져 그 배경에도 관심이 쏠렸다.
첫 보도는 중앙일보 계열사인 jtbc에서 나왔다. 요지는 경남기업 핵심 자산인 베트남의 랜드마크72 건물 매각 시 반 총장의 조카인 박주현(37·미국명 데니스반)씨가 개입해 사기 의혹이 있다고 공개한 것이다. 12일에 나온 것으로 지난 3월 말 경남기업이 채권단에 밝힌 카타르 투자청의 랜드마크72 건물 매입 의향서가 반씨에 의해 위조됐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카타르 투자청에서는 “해당 문서와 서명이 모두가 위조된 것”이라고 주장했고 이에 대해 반주현씨는 “회사의 비밀조항으로 인해 문제가 된 관련 서류의 위조 여부를 포함한 거래와 관련된 어떠한 내용에 대해서도 답변을 할 수 없다”고 함구로 일관했다. 주현씨는 최근까지 경남기업에서 상임고문으로 일한 반 총장의 동생 반기상(69)씨의 장남으로 랜드마크72의 매각 주관사인 영국계 부동산 투자자문사 콜리어스 인터내셔널 뉴욕지점(이하 콜리어스)에서 매니징 디렉터로 일하고 있다.
‘2017년 대선출마’, ‘성완종 관계’ 입장 나오나
중앙일보와 jtbc는 한발 더 나아가 조카뿐만 아니라 동생 기상씨 역시 매각 추진과정에 깊이 관여했다는 관계자의 e메일과 경남기업 측의 증언을 첨부해 강도를 높여갔다. 특히 이 과정에서 경남기업 한 인사의 말을 빌어 기상씨가 “반기문 총장이 카타르 국왕에게 잘 부탁한다”는 언급을 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에 대해 기상씨는 “2년 전 일이라 기억나지 않는다”며 “상식적으로 국가원수급 인사들을 만난 자리에서 그런 말을 한다는 게 맞지 않다” 고 반박했다.
한편 랜드마크72는 베트남 하노이 서남쪽에 위치한 72층 높이의 베트남 최고층 오피스 건물과 48층 높이의 주거용 아파트 2개동으로 구성된 복합몰로 경남기업은 지난 2011년 10월 1조2000억원을 들여 이 건물을 완공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무리한 자금 조달로 인해 채권단에 대출금 5300억원을 갚지 못하면서 법정관리에 들어가는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결국 유엔을 대표해 한국을 방한한 반 총장은 희비가 교차하고 있다. 밖으로는 세계 대통령으로서 국내에서 위상을 높일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인 반면 ‘성완종 리스트’에 ‘대망론’으로 얽히고 설킨 국내 정치적 이해관계는 반 총장의 이미지를 격하시키는 아이러니한 처지에 몰려 있다.
한편 정치권 일각에선 ‘반기문 대망론’은 물 건너 간 게 아니냐는 회의적인 반응도 나오고 있다. 정치권은 반 총장이 이번 방문을 통해 차기 대권뿐만 아니라 성 전 회장과의 명확한 관계를 밝힐지 예의주시하기도 했다.
홍준철 기자 mariocap@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