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나 하대 했으면 상관을 찌를까?
얼마나 하대 했으면 상관을 찌를까?
  • 이범희 기자
  • 입력 2015-04-27 09:27
  • 승인 2015.04.27 09:27
  • 호수 1095
  • 16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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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전기사의 ‘폭로’

[일요서울 ㅣ 이범희 기자] 기업인이나 정치인의 불법 행위 폭로에는 운전기사가 주인공인 경우가 많다. 최근 이완구 국무총리의 경우도 그 중 하나다. 한 때 수족이었던 운전기사의 폭로로 이 총리는 궁지에 몰렸다. 이번 사건 말고도 운전기사의 폭로도 신분이 하루 아침에 바뀐 사례는 재계에도 종종 발생한다. [일요서울]은 이런 사례를 모아 보도한다.

▲ <정대웅 기자>

    ‘말 한마디에…’사회적 지위·명예 무너져 //   고위 임원 운전기사에 정보원 접근하기도


흔히 기사는 운전만 한다고 생각하지만 비서일까지 맡는 경우가 많다. 모 기업 총수의 운전을 오랜 기간 맡아왔다는 김 모씨는 “오너의 일거수일투족을 모두 알아야 하고, 밥 먹고 화장실 가는 것까지 전부 오너 기분과 스케줄에 맞춰야 한다”고 했다. 김 씨는 운전기사들이 철칙으로 삼는 것이 ‘귀머거리, 장님, 벙어리가 되자’는 것이라고 했다.

수행 운전기사가 되는 것도 간단한 일이 아니다. 대기업 임직원의 운전기사 자리는 하늘의 별 따기란 말이 있을 정도다. 운전실력은 물론이고 주변 인맥도 탄탄해야 한다. 일부 기업체는 선발 때 회사 설립일·오너의 생년월일 등과 지원자의 사주를 맞춰보기도 한다.

지금도 일부 베테랑 정보 담당자들은 기업 내 운전 기사 대기실 또는 정부서울청사나 삼청동 총리공관, 국회의원 회관의 운전기사 대기(휴게)실에 들러 동향을 파악하는 것으로 알려진다.
취재진과 만난 한 정보담당자는 “힘들게 발품 팔아 관료들을 접촉하기보다 장차관급 운전기사(기능직 공무원)에게 먼저 접근한다"며 “그들의 정보는 대개 정확하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자신이 모시는 VIP가 근래 누구와 만나는지, 통화할 때 누구를 언급하는지, 심지어 청와대 수석 누구를 욕하는지도 자연스럽게 알게 된다"며 “그들은 성격 고약한 관료 차를 몰게 되면 낙담하고, 인품 좋은 관료는 서로 모시려 한다"는 이야기도 들려주었다.

과거 임명직 경남도지사를 역임한 윤한도 전 의원(15·16대 국회의원)이 도지사 시절, 공무원 인사를 할 때 청사 내 기사 대기실에 들러 이들의 여론에 귀를 기울였다는 일화는 지금도 회자될 만큼 유명하다.
반면 이들의 폭로로 고배를 마셔야 했던 인사들도 있다. 이완구 총리의 전 운전기사의 폭로가 최근 나오는 대표적 사례다.

앞서 성완종 경남기업 전 회장은 “2013년 4월 4일 부여·청양 재보궐 선거에 출마한 이완구 국무총리의 부여 선거사무실을 찾아가 현금 3000만 원을 건넸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완구 국무총리는 그런 주장을 전면 부인했다.

그런데 이 총리의 전 운전기사 윤모(45)씨가 이 총리의 부인을 반박하고 나섰다. 2013년 3~6월 4개월 동안 이 총리의 차량을 운전했던 윤씨는 “성완종 전 회장이 확실히 부여 사무실을 방문했다”고 17일자 조선일보에 알리면서 이 총리의 거짓 논란을 만들었다.

 이완구 총리 겨냥
“부여 사무실 방문했다”

몇 년 전 파이시티 로비 사건으로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과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차관의 발목을 잡은 것도 이들에게 돈을 준 브로커의 운전기사였다.

금호아시아나에 따르면 박찬구 회장의 운전기사인 부장 A씨와 자료 유출을 도운 보안용역 직원 B씨에 대해 방실침입 및 배임수·증재죄 등의 혐의로 고소장을 종로경찰서에 접수했다고 밝혔다. 금호아시아나는 이와 함께 B씨가 회장 비서실에 잠입해 박삼구 회장의 개인비서가 관리하는 문서를 무단으로 사진 촬영하는 모습을 담은 내부 CCTV 화면 중 일부를 공개했다.

금호아시아나 측은 “회장 비서실 자료 외부 유출에 대해 자체 조사한 결과 그룹 회장실 보안용역 직원 B씨가 금호석화 운전기사 A씨의 사주를 받아 몰래 빼낸 것을 확인했다”며 “불법적으로 유출된 자료들이 누군가에 의해 금호아시아나그룹을 공격하는 데 활용돼 온 것으로 보인다”며 고소 배경을 설명했다.
박근혜 대통령 정부 초기 운전기사와 관련한 형사소송이 불거진 일도 있다.
서울중앙지검 형사4부(문찬석 부장검사)는 2012년 말께 당시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 등에 대한 허위사실을 퍼뜨린 혐의(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로 부산저축은행 로비스트 박태규씨의 운전기사였던 김모(35)씨를 불구속 기소했다.

검찰에 따르면 김씨는 인터넷 팟캐스트 방송 ‘나꼼수’에 출연, 2010년 서울에서 개최된 G20(주요 20개국) 정상회의 무렵에 박태규씨가 부산저축은행 로비를 위해 박근혜씨와 박지만씨를 만났다고 말한 혐의를 받았다.

새누리당 박상은 전 의원은 운전기사의 폭로로 정치인생에 종지부를 찍었다. 운전기사 김모씨는 2014년 6월 박 전 의원의 에쿠스 차량에 있던 현금 3000만 원을 불법정치자금이라며 검찰에 직접 신고했다. 검찰은 이 돈의 출처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박 의원과 관련한 비리 연루 의혹을 파헤쳤고, 결국 박 의원은 구속됐다

오너 은밀한 일
최후 목격자

이런 분위기 탓인지 전용차량을 이용하는 임원들이 줄었거나 나름의 원칙을 세워 이용하는 분위기도 점차 늘고 있다. 개인약속이라면 가급적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여의치 않으면 약속장소까지만 운행케 하고 운전기사를 돌려보내는 일이 늘고 있다.
오랜 기간 함께한 수행비서만을 대동해 각별함을 강조하는 경우도 있고 사비를 들여 쌈짓돈을 만들어 주는 사례도 알려진다.

일부 기업에선 임원차량을 운전하는 기사들의 복지를 상당부분 개선하기도 한다.
한편 이완구 총리 운전기사의 폭로 기사를 접한 누리꾼들은 “얼마나 운전기사를 하대 했으면 비리를 폭로하냐" “운전기사들 무섭다"는 등의 반응을 보였다. 

skycros@ilyoseoul.co.kr

이범희 기자 skycros@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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