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두순 “아내외에 잠자리한 여자 없다”

“조두순은 면담이 진행되는 동안 눈물을 흘리며 울먹거리다가도 자신을 추궁하는 듯한 느낌을 받을 땐 큰소리를 내거나 위협적인 동작을 하는 등 극도의 분노를 표출했다.”
지난 가을 대한민국을 분노로 물들인 조두순의 정신감정 결과가 공개됐다. 조두순은 일명 ‘나영이 사건’의 범인으로 지난 2008년 당시 8살이었던 김나영(가명) 어린이를 잔혹하게 성폭행해 불구로 만든 파렴치한이다.
정신감정 결과 조두순은 화를 억누르지 못하며 죄책감이나 책임감이 거의 없다시피 한, 전형적인 ‘사이코패스’로 드러났다. 하지만 그동안 언론보도를 통해 알려진 것과 달리 소아기호증(Pedophilia·소아성애)은 아닌 것으로 파악됐다.
1시간 반에 걸쳐 조두순과 직접 면담한 경기지방경찰청 형사과 과학수사계 이유라 범죄분석관은 최근 수사전문월간지 <수사연구>에 기고한 보고서에서 조두순의 행동적 특성, 과거 생활 패턴 등을 자세히 분석했다. 8살 어린 소녀를 참혹하게 짓밟은 ‘잉여인간’ 조두순의 실체를 낱낱이 공개한다.
이 분석관에 따르면 조두순은 면담 내내 극심한 감정적 기복을 드러냈다.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거나 아내에 대한 자신의 헌신을 강조하며 눈물을 흘리다가도 사건과 관련해 자신을 추궁하는 듯한 느낌이 들면 벌컥 화를 내며 위협적인 반응을 보였다는 것이다.
경찰에 따르면 조씨는 전과 17범으로 1983년 성인 여성을 폭행, 강간한 죄로 3년 간 복역한 전력이 있다. 나머지는 상해와 폭행 전과가 대부분이다. 거의 술자리에서 모르는 사람과 시비끝에 벌어진 일이었다.
이 분석관은 보고서에서 “조두순이 사소한 자극도 쉽게 분노로 연관지었으며 불편한 감정을 상대에게 위협적인 방법으로 표출했다”고 전했다. 이런 성미가 사람들과의 다툼을 유발하는 원인이 됐다는 얘기다. 특히 공격적인 성향이 강해 스스로의 행동을 제대로 통제하지 못했고 이는 나영이를 성폭행하는 과정에서 고스란히 드러났다.
조 “여자는 아내뿐, 정절 지켰다”
이 분석관의 보고서에서 눈에 띄는 것은 조두순이 아내에 대해 상당한 집착과 ‘애정’을 토로했다는 대목이다. 그에 따르면 조는 면담 내내 처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감정에 북받친 듯 눈물을 흘렸다. 또 “나는 아내에게 있어 절대적인 존재”이며 “아내 이외에는 누구와도 잠자리를 하지 않고 정절을 지켜왔다”고 주장했다.
이 분석관은 이를 조의 취약한 인간관계가 단적으로 드러난 대목이라고 분석했다. 이 분석관에 따르면 조두순은 연락하는 친구도 없었고 아내 외에 다른 가족과도 전혀 왕래 없이 지내왔다. 알코올 의존증에 가까울 만큼 술을 즐겼지만 이마저도 혼자 마셨다. 원만하지 못한 대인관계를 아내에 대한 병적인 집착으로 대신했다는 얘기다.
면담과 함께 진행된 PCL-R 검사에서 조두순은 지난해 검거된 연쇄살인범 강호순보다 더 심각한 정신병질적 성향을 드러낸 것으로 나타났다. PCL-R은 일명 ‘사이코패스 테스트’로 잘 알려져 있으며 대인관계, 생활방식, 반사회적 특성, 정서적인 문제 등 4가지 용인을 평가해 정신병질자(사이코패스)를 분류하는 도구다.
전문 분석관이 개별 면담을 통해 점수를 매기는 PCL-R 테스트에서 25점 이상을 얻으면 사이코패스로 진단된다. 테스트에서 조두순이 얻은 점수는 29점. 희대의 연쇄살인범 유영철과 강호순은 각각 26점과 27점이었다.
이 분석관에 따르면 조두순은 죄책감과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는 능력이 턱없이 부족했다. 당시 사건을 담당했던 안산단원경찰서 문경연 강력2팀장의 증언에서도 조두순의 사이코패스적 성향은 고스란히 엿보인다.
강호순보다 심각한 정신병자
문 팀장은 “범행 현장에서 조씨 지문이 확보돼 체포한 뒤 범행을 추궁했지만 혐의를 완강히 부인했다”고 말했다. 문 팀장에 따르면 범행 증거를 들이대자 조는 오히려 형사를 비웃듯 “교도소에서 열심히 운동하고 나올 테니 그때보자”며 위협까지 했다. 조두순은 사건 당일 나영이가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는데도 범행을 은폐하기 위해 화장실 바닥에 수돗물을 틀어놓고 달아난 것이 검찰 조사에서 드러난 바 있다.
하지만 이 분석관은 조두순을 소아기호증, 즉 아동에게 성적인 욕구를 느끼는 변태성욕자로 단정 짓는 것은 무리라고 분석했다. 소아기호증을 진단하는 기준은 크게 세 가지다. 먼저 사춘기 이전의 소아(13세 이하)를 대상으로 성행위 등 성적 흥분을 강하게 일으키는 공상이나 충동이 적어도 6개월 이상 지속돼야 한다.
또 이 같은 성적 충동이나 공상으로 인해 심각한 고통을 느끼거나 사회생활에 있어 치명적인 장애가 초래돼야 한다. 마지막으로 피의자의 나이가 16세 이상이며 성적 대상이 된 소아들에 비해 적어도 5세 이상 나이가 많아야 한다.
조두순이 해당되는 것은 세 번째 기준 뿐이다. 또 과거 그가 강간한 대상이 성인 여성이었고 나영이를 단순히 성욕을 채우기 위해 겁탈했다고 하기엔 폭행 정도가 지나치게 과도하다. 뿐만아니라 지금까지 조두순의 범행은 폭력을 통해 분노를 해소하는 식이었으며 그 대상도 주로 성인 남자였다.
이 분석관은 이에 대해 조두순의 강한 공격성과 희박한 통제능력이 술이라는 매개체와 합쳐져 ‘성’을 도구로 폭발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즉 성욕해소가 목적이 아니라 내제된 분노를 폭발시키기 위해 성폭행을 도구로 이용했다는 얘기다.
그에 따르면 조두순은 범인이 누구인지 특정되지 않은 또 다른 아동 성폭행 사건에 대해 “천인공노할 짓이다” “사람이 할 짓이 아니다”며 격한 반응을 보였다. 나영이에 대해 명백한 증거를 들이대도 “모르는 일”이라며 발뺌하던 것과는 정반대다.
이 분석관은 “성범죄자들은 스스로 변태, 흉악범, 정신이상자 등 범죄 가해자에 대한 사회적 통념을 갖고 있다”며 “이런 두려움을 줄이기 위해 의식적으로 범행을 최소화하거나 부인한다”고 설명했다.
[이수영 기자] severo@dailysun.co.kr
이수영 기자 severo@dailysu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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