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Ⅰ오두환 기자] 계란으로 바위치기 일까. 낙숫물로 바위 깨기일까. ‘박철언 비자금’ 고발사건을 두고 하는 얘기다. 지난 23일 박철언 전 장관의 연구소 총무국장겸 비서로 일한 김현탁씨가 박 전 장관 부부를 조세범처벌법과 금융실명거래 및 비밀보장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서울중앙지검에 고발했다. ‘박철언 비자금’에 대한 소문은 끊이지 않았지만 비자금을 직접 겨냥해 고발한 적은 이번이 처음이다.
강 교수 횡령사건 당시에도 비자금 출처는 밝히지 못해
박철언 “차명계좌는 없다…포상금 노리고 그러는 것”
박철언 전 장관의 비자금 조성 의혹은 2007년 박 전 장관의 가족 등 주변 인사들이 서울 모 대학 무용과 강미선 교수를 고소하면서 처음 불거졌다.
당시 박 전 장관 측은 자신들이 관리 차원에서 맡긴 돈 170여억 원을 강 씨가 횡령했다고 주장했다. 자금 규모도 화제가 됐지만, 강 씨가 관리한 다른 사람 명의의 통장이 수십개에 이른다는 대목에서 비자금 의혹이 제기됐다.
검찰은 강 씨에 대한 수사에 착수해 2008년 7월 박 전 장관이 맡긴 178억원을 횡령한 혐의로 강모 교수를 불구속 기소했다. 하지만 의문의 핵심이던 비자금의 출처는 밝히지 못했다. 이로 인해 검찰이나 국세청에서 박 전 장관을 감싸고 있는 것 아니냐는 의혹의 눈초리를 받기도 했다.
23일 고발장을 접수한 김씨는 1990년 12월부터 2010년 12월 31일까지 20여 년간 박 전 장관 연구소의 총무국장과 비서로 근무하다가 퇴사했다고 밝혔다.
김씨는 고발에 앞서 “박철언·현경자 전 의원 부부는 친인척 및 직원 등 지인을 이용하여 30여 년부터 차명계좌를 이용하여 수백억 원대의 본인들 예금을 관리하였습니다.”라며 “친인척과 자녀들 그리고 지인 등의 이름을 이용하여 얼마 전까지 차명예금을 이용하였으며, 자녀들에게는 불법증여를 하였고 현경자 전 의원의 자금은 박철언 전 의원의 자금과는 별도의 자금입니다.”라고 밝혔다.
“차명계좌 이용했는데
부정한 탈세의도 없었다니”
김씨가 서울중앙지검에 제출한 고소장을 살펴보면 눈길을 끄는 부분이 있다. 2009년 5월경 박 전 의원이 서울지방국세청에 ‘금융소득 누락에 대해’ 자진신고하던 상황에 대한 설명이다. 고발장에는 김씨가 박 전 장관을 대리해 서울지방국세청 조사4국 1과의 김용수 조사관을 찾아 갔을 때의 상황이 쓰여 있다.
김씨는 “당시 김 조사관의 책상 위에는 A3의 큰 복사용지에 아주 두꺼운 자료가 있었습니다. 당시 본인은 자료를 잠시 훑어보았을 때 본인의 가족과 수많은 사람들의 일반계좌까지 박철언과 현경자 소유로 보이는 자금을 조사한 자료를 목격하였습니다.”라고 밝혔다.
김씨는 “서울지방국세청에서 조사한 자료 중 조사에 필요한 것으로 보이는 정리된 자료를 주었습니다. 그 자료에는 박철언의 차명계좌의 총액은 35,891,342,500원이며, 현경자의 차명계좌 총액은 32,328,488,216원 이었습니다.”라고 밝혔다.

김씨는 “2008년 12월 23일에 나온 서울지방국세청에서의 세무조사결과의 세금은 3억2천만 원만 세금 추징을 하였습니다.”라며 “이후, 2009년 6월경 서울지방국세청에서 박철언, 현경자에 대해 세금 누락이 있다는 투서가 들어와 세금을 다시 추징하여야 하는데 ‘본인(서울지방국세청)들도 투서가 들어와 조사를 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에 지난번 강미선 횡령에서의 자료 중 일부에서 세금을 징수 하도록 할 테니 협조 바란다’고 하면서 3천4백만원 정도 2차 세금을 납부하였습니다.”라고 밝혔다.
고발장의 내용이 사실이라면 당시 서울지방국세청에서는 이미 박철언·현경자의 비자금이 약 680억원대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는 것이 된다. 하지만 당시에는 이에 대한 별도 수사나 세금 부과는 이뤄지지 않았다. 당시 서울지방국세청이 조사를 알아서 접은 것인지 압력이 있었던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당시 투서를 접수했던 현모씨는 외압이 작용한 것 아닌가 하는 의심을 하고 있다.
결국 서울지방국세청은 박 전 장관에게 2009년 6월경 접수된 ‘세금 누락에 대한 투서’에 따른 세금부과가 아니라 2008년 문제가 된 강씨 횡령 사건에서 찾은 차명계좌 중 일부에 세금을 부과하고 마무리 했다.
김씨는 이같은 사실에 대해 “몇 년간에 걸쳐 차명계좌를 이용한 사람들에게 ‘부정한 탈세의도가 없었다’는 내용으로 세금 징수 중 제일 적게 적용하는 종합금융과세로 한다는 것은 일반인이 보기에도 문제가 많다”고 지적했다.
박 전 장관 자금
횡령 당한 사실도
김씨가 접수한 고발장에는 박 전 장관이 갖고 있던 자금을 횡령한 사건들에 대한 내용도 적혀 있다. 1993년에 발생한 김호규의 77억 횡령사건이다. 박 전 장관이 슬롯머신 사건으로 16개월의 형을 살고 있을 때다. 당시 보좌관을 맡고 있던 김호규가 친구 김재섭과 공모해 박 전 장관의 자금으로 관리하고 있던 약 77억 원을 횡령했다.
박 전 장관은 이 사실을 안 뒤 김 씨가 횡령한 자금을 회수하려고 당시 국회 비서관이었던 강대신 등을 동원한 결과 9억 원 정도를 회수했다. 그러던 중 강 씨 횡령 사건이 터졌고 김 씨가 언론 인터뷰를 하자 2008년 9월경 서울 강남에 위치한 한 호텔 중식당에서 “비자금에 대해 더 이상 언론에 인터뷰하지 않겠다면 나도 자네가 저지른 1993년 횡령에 대해 더 이상 묻지 않는다”라는 조건으로 김 씨의 횡령 사건에 대해 더 이상 거론하지 않겠다고 마무리 지었다는 내용이 있다.
시간이 흐른 뒤 박 전 장관은 2001년 김호규 횡령사건 당시 자금을 회수해 오라고 시켰던 강 전 비서관을 고소하기도 했다. 서울 마포구 H오피스텔에서 박 전 장관의 비망록과 영수증 등을 훔친 혐의였다. H오페스텔은 박 전 장관이 사용하는 곳이었지만 명의는 강 전 비서관이었다. 당시 이 오피스텔의 용도에 대해서도 많은 의심을 박았다.
강 전 비서관이 본인 명의였던 H오피스텔을 다른 사람에게 임대해 줬고 사무실을 비우면서 나온 박 전 장관의 물건들을 다 치웠다. 그 물건들 안에 비망록과 각종서류 등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관련 재판에 증인으로 나선 사람을 통해 비망록에는 박 전 장관이 최고위층에게 갖다 주었던 수표번호와 여러 가지 정치자금 문제 등의 내용이 적혀 있다고 증언하면서 박철언 지바금이 논란이 되기도 했다. 강 전 비서관은 1심에서 징역 1년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아 억울함을 호소했었다. 박 전 장관이 오랬동안 자신의 일을 도와줬던 사람을 너무 쉽게 내쳤기 때문이다.
한편 박 전 장관은 김 씨의 고발에 대해 <일요서울>과의 전화통화에서 “차명계좌는 없다”고 잘라 말했다. 또 “2008년 강미선 교수 횡령사건 당시 국세청에 자진신고하고 추징금을 다 냈다. 이미 다 끝난일이다”라고 말했다. 김씨에 대해서는 “포상금을 노리고 그러는 것이다”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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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두환 기자 freeore@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