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플루 감염은 복불복?
신종플루 감염은 복불복?
  • 박성환 기자
  • 입력 2009-11-10 10:46
  • 승인 2009.11.10 10:46
  • 호수 811
  • 16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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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 좋으면 안 걸리고, 재수 나쁘면 걸리는 거고…
신종 인플루엔자 예방접종이 시작된 27일 울산병원 의료진들이 백신을 맞고 있다

신종 인플루엔자A(이하 신종플루)에 대한 국민들의 심적 불안감이 눈덩이처럼 커지고 있다. 하지만 정작 예방 메뉴얼을 숙지해야 할 일선 기관들의 대처 요령은 여전히 미개한 수준인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학생들의 감염 예방에 만전을 기해야 할 일부 대학 당국과 산모와 신생아 등의 건강에 힘써야 할 일부 병원마저도 안전 불감증이 극에 달한 것으로 본지 취재 결과 드러났다. 지난 8월 15일, 태국 여행을 마친 56세의 남성이 첫 사망자로 발생했을 때만 해도 신종플루는 ‘천식 등 고위험군 환자 혹은 노약자만 걸리는 질병’으로 대수롭지 않게 여겨지는 분위기였다. 보건 당국 또한 적극적인 초기 대처보다는 ‘평소 손만 깨끗하게 씻는다면 건강하고 젊은 사람들에게는 일시적으로 유행하는 감기처럼 스쳐지나가니 크게 동요하지 말 것’이라는 내용의 낙관적인 보도자료를 배포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로부터 석 달 후인 11월 6일 현재, 신종플루로 인한 국내 사망자가 48명 이상으로 급격히 늘어나면서 시민들은 신종플루에 대한 불안함이 극도로 커지기 시작했다. 시민들을 패닉 상태에 빠뜨린 결정적인 이유는 ‘감염되어도 열이 안 나기 때문에 초기에 감염 사실을 알아채기가 쉽지 않고, 고위험군에 속하지 않는 건강한 젊은이도 죽는 사례가 많아지고 있다’는 신종플루로 인한 사망자 통계 때문이다.

경기도 부천에 사는 여대생 박모(22)씨는 이달 초부터 다니던 대학에 가지 않고 있다. 이유는 지난 10월 말부터 신종플루와 유사 증세인 기침과 코막힘 증세가 시작되면서부터.

37.8도 이상의 고열이 나야 신종플루 의심을 해 볼수 있다던 당국의 초기 대책 메뉴얼과는 달리, 열이 없어도 신종플루에 감염되었을 가능성이 20%에 육박하다는 뉴스가 나오자 겁부터 덜컥 난 것이다.

박씨는 “연일 들려오는 신종플루 사망 소식이 불안해서 학교는 물론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에 가기가 두렵다”고 말했다.

그녀는 “확진 검사를 받았지만 대기자가 몰려있어 검사 결과가 나올 때까지는 일주일이 넘게 걸린다고 했다. 병원 측에서는 결과가 나오기 전에라도 타미플루 약을 처방해 줄 수 있다는 입장이지만 혹시라도 약 복용 후에 확진 결과가 음성으로 나오면 괜히 병에 대한 내성만 생겼을 것이란 걱정에 섯불리 약을 복용하진 못하고 있다”고 고민을 털어 놓았다.

박씨는 이어서 “며칠 전 신종플루 위험도를 알리는 단계가 ‘심각(Red)’단계로 격상된 후로 학교에 안 가고 있다. 교수님들로부터 전화가 계속 오고 있지만 마음만은 편하다”고 전했다.


초중고에 가려 방치된 대학생들, “우린 어떡해”

일선 초중고 학교에서는 교실과 복도 등을 공개적으로 방역하고 있고, 등교길마다 교사들이 직접 학생들의 체온을 재는 등 예방 및 감염 확산을 막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는 분위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선 초중고 휴교령’이 논의될 정도로 학교가 사실상 병을 전파시키는 숙주 노릇을 하고 있고 이는 미취학 아동이 다니는 유치원도 예외가 아니다.

하지만 의외로 ‘지성의 요람’이라 불리는 대학교에서는 신종플루 전염을 막기 위한 대책이 그야말로 전무하다 싶을 정도로 속수무책이다.


“마스크 썼네? 당신 신종플루 환자야?”

또 다른 학생 이모(22)씨는 “감염을 사전에 예방하기 위해 마스크를 쓰고 학교를 왔더니 다들 나를 피하는 분위기다”면서 “친구들도 어디 아프냐, 신종플루 걸렸냐는 질문을 수도 없이 하길래 할 수 없이 마스크를 벗었다. 나는 감염된 환자라서 착용한 것이 아니라 그저 감염될 가능성을 예방하기 위해 착용한 것인데…”라며 말 끝을 흐렸다.

한편 마스크 착용 효과에 대한 대중들의 무감각 역시 심각할 정도다. 이 학교 도서관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 김모(21)씨는 “신종플루로 제 또래 건강한 여자들까지 죽었다는 기사를 보면 가끔 두렵기도 하지만, 설마 제가 걸릴까 싶은 생각에 아직 마스크는 착용하지 않고 있다. 손만 잘 씻으면 되는 거 아니냐”라고 말을 하며 ‘다른 사람들은 병에 걸려도 나는 걸리지 않을 것 같다’는 전형적인 안전 불감증의 한 사례를 몸소 보여줬다.


안전 사각지대에 버려진 산부인과

고양시 일산에 있는 C산부인과 전문 병원 역시 신종플루를 사전에 차단하기 위한 대책이 전무한 실정이다.

조산 기미가 보인 탓에 이 병원에 3주 전부터 입원 중인 D산모는 “위생관념에 철저해야 할 신생아실 직원들이 마스크를 안 쓰고 신생아와 미숙아들을 돌보는 것은 물론, 간호사와 카운터 직원, 의사들까지 마스크를 안 쓴 채 회진과 간병을 하고 있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D산모에 따르면, “만삭의 임산부와 막 출산을 끝낸 산모가 입원한 병동에는 많은 면회객들이 드나드는데, 이 중에 마스크를 쓴 사람은 한 명도 찾아보기 어렵다”는 것.

“심지어 옆 방의 면회객이 중화요리를 배달시켰더니 마스크를 쓰지 않은 중국집 배달부까지 아무런 제지 없이 병원 입원실에 들어오더라. 그 배달부가 신종플루에 감염되어 잠복기를 거치고 있는 사람이면 어쩌나”고 개탄을 금치 못했다.

이에 확인을 위해 산부인과 건물에 들어온 본 기자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1층부터 꼭대기 층까지 자유롭게 다녀봤지만, 기자의 신원을 묻거나 마스크 착용을 권하는 의료진과 임직원은 보이지 않았다.

심지어 제보를 해 준 D산모가 입원한 1인실에 들어가서 인터뷰를 하는 동안에 드나드는 간호사들과 간호대학 실습학생들 모두 마스크를 쓰지 않은 상태였다.

병원에 종사하는 직원이라 해서 신종플루에 안 걸린다는 보장은 없을 터. 마침 D산모의 건강 상태를 체크하러 들어 온 E간호사에게 출퇴근 교통편을 물었더니 “지하철로 왕복 2시간씩 다닌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직업이 간호사이니만큼 손이야 늘 씻겠지만, 지하철에서 비말 감염(공기 중 감염) 될 가능성은 충분한데 이처럼 자신의 건강 상태를 자신만만해 하는 근거가 무엇인지를 묻자 그 간호사는 즉답을 회피했다.

이는 신생아와 미숙아가 입원해 있는 신생아실 직원들도 마찬가지였다. 며칠 전 아들을 순산한 D산모가 모유 수유를 위해 신생아실에 들르자 마스크와 위생장갑을 착용하지 않은 직원이 태어난 지 일주일도 안 된 아이를 안고 수유실로 왔다.


간호사들, 백신 안 맞아도 우리는 안 걸린다(?)

플루 감염 예방을 위해서 마스크를 써야 하지 않느냐는 본 기자의 질문에 그녀는 “출근하면 우선 손을 씻고 위생적으로 세탁한 유니폼을 입고 근무하니 괜찮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혹시 신종플루 백신을 사전에 접종했기에 자신있는 것인가는 질문에는 “아직 우리 신생아실 직원 그 누구도 신종플루 예방 백신을 맞지 못했다. 조만간 우리에게 접종 우선권이 주어지지 않겠느냐”는 낙관적인(?) 대답을 내놓았다. 즉, 최악의 시나리오로는 신종플루에 감염된 면회객들과 음식 배달부 등이 산모가 입원한 병동에 자유롭게 접근할 수 있고, 그들로부터 감염된 신생아실 간호사가 신생아를 돌볼 가능성 역시 분명 있으며, 역시 면회객과 음식 배달부, 간호사 등으로부터 감염된 산모가 신생아에게 모유를 먹이고 2차 감염을 전파시키는 상황이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다는 뜻이다.


#전문가가 말한 신종플루 예방법

국립 일산병원의 한 의료 관계자는 신종플루 예방법에 대해 말했다.

그는 “현재 체온이 정상임에도 불구하고 신종플루 확진 판정을 받는 환자가 속출하고 있다. 따라서 고열이 없어도 감기 증상과 유사한 증세가 나타나면 즉시 병원에 가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한 “손씻기가 제일 중요하다는 캠페인 내용과는 달리, 실제로는 마스크를 쓰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왜냐면 신종플루의 감염 경로는 확진 환자가 기침 또는 말을 할 때 주변에 퍼지는 미세한 침방울, 즉 비말을 통해서 공기 중에 전염된다. 다시 말해 신종플루 확진 환자가 만졌던 물건을 일반인이 만져서 병이 전염될 확률보다 확진 환자와 가까운 공간에 밀접해서 숨을 쉬고 대화를 하는 게 전염될 확률은 더 크다”고 말했다.

[박성환 기자] 1723shy@dailysun.co.kr

박성환 기자 1723shy@dailysu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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