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로·안산·인천 외국인 범죄자 ‘해방구’
국내체류 외국인 100만 시대. ‘단일민족’을 금과옥조처럼 여겨온 한국이 다민족·다문화 사회로의 진입을 목전에 두고 있다. 흔히 ‘이주 노동자’로 불리는 산업연수생을 시작으로 다양한 계층의 수많은 인종이 속속 우리 사회의 일원으로 동화되고 있는 것이다. 수년 전부터 꾸준히 주요 사회문제로 대두됐던 ‘외국인 범죄’ 증가 역시 이 같은 현상의 반증이다. 특히 최근 들어 외국인 범죄는 단순 불법체류에서 절도 등 ‘비교적’ 소극적이었던 과거에 비해 훨씬 잔혹해졌다. 또 경기 안산과 서울 구로 등 외국인 산업연수생들이 몰려있는 집단 거주지역을 벗어나 전국을 무대로 범죄행각을 일삼는 ‘해외파 조직’이 등장했다는 것 또한 주목해야 할 특징이다.
문제는 국내에서 날로 진화하는 외국인 범죄를 차단할 사회적 안전망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경찰청이 이달 1일부터 외국인 밀집거주지역에 외사전문 수사관을 파견하기 시작했지만 급증하는 외국인 일탈행위를 근절하기엔 시간과 인력이 태부족이다.
더구나 외국인 관련 범죄 수사에 필수적인 입국자 지문날인은 적어도 3년 뒤인 2012년에야 법제화가 이뤄질 전망이다. ‘잔혹한 이방인’과의 전쟁, 외국인 범죄의 실태를 짚어봤다.
지난달 1일 동포인 베트남 여성을 납치한 혐의로 붙잡힌 산업연수생 부이응옥 쯔엉(27)은 담당 경찰관 앞에서 ‘난 하노이 마피아 조직원’이라고 큰소리쳤다. 당시 언론은 베트남 조직폭력배가 국내에 진출한 첫 사례라며 떠들썩했다.
“베트남 조폭, 촌스러운 만큼 과격해”
부산에서 지난 2003년 러시아 마피아에 의한 총기 살인사건이 발생한 이후, 국제 범죄조직의 국내활동 사항은 첩보기관을 중심으로 초미의 관심사였다.
그러나 수사결과 쯔엉은 ‘조직폭력배’라기보다 ‘뒷골목 깡패’ 에 불과했다. 그것도 애초부터 조직범죄를 저지르기 위해 입국한 게 아니라 반년 넘게 임금체불을 겪은 탓에 ‘생계형 범죄’를 택한 경우였다.
그를 조사한 서울 수서경찰서 김명환 경사는 “쯔엉이 진짜 현지 조폭인지 확인할 수 없었다. 경찰에 붙잡힌 베트남인들은 대부분 자기들을 ‘조직원’이라고 하지만 하는 짓은 삼류 깡패 수준”이라고 말했다. 김 경사에 따르면 산업연수생 가운데 고질적인 임금체불을 견디다 못해 범죄자로 전락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물론 이번 사건으로 주목받은 베트남 조직폭력배는 실제 존재한다. 북부 베트남 출신들이 모인 ‘하노이파’와 남부 베트남 출신들로 이뤄진 ‘호찌민파’가 바로 그것이다. 근래 베트남인 범죄가 이들 조직을 중심으로 조직화된 폭력 범죄로 변모하고 있다는 점도 주목해야할 점이다.
경찰청 외사국 관계자에 따르면 이들 조직은 아직 제대로 된 계보나 행동강령 등을 갖추지 못했다. 또 계파의 이름은 있지만 조직 내부에는 수많은 군소조직이 산발적으로 흩어져 있다. 같은 ‘하노이파’ ‘호찌민파’라 해도 서로 일면식도 없는 오합지졸이 상당수다. 마치 70년대 이전 국내 폭력조직의 형태와 흡사하다.
그러나 엉성한 조직과 촌스러운 범행 수법이지만 이들을 얕봐선 안 된다. 다듬어지지 않은 만큼 잔혹성과 폭력성은 더 강하기 때문이다.
2003년 부산 러시아 마피아 피격사건 수사에 참여했던 김종도 경위(전 경찰청 외사국)는 “(베트남 조폭은)동남아 폭력조직에 비해 규모는 작지만 흉기를 잘 다루는 ‘칼잡이’의 실력이 범상치 않다”며 “만약 현지 경찰에 붙잡힌 조직원이 자백 등 배신행위를 하면 현지 조직원이 배신자의 가족을 몰살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고 말했다.
구로>안산>인천 ‘외국인 우범지역’
경찰청이 최근 외국인 체류실태를 분석한 결과 외국인 범죄가 집중적으로 발생한 15개 지역 중 서울 구로와 경기 안산 단원, 인천 삼산 등이 ‘외국인 우범지역’ 1~3위의 오명을 안았다. 외국인 범죄 다발지역은 경찰서 관할 내 외국인 범죄 피의자 비율이 내국인 평균 0.8%의 2배 이상인 지역을 말한다.
눈에 띄는 것은 구로와 안산 등 외국인이 밀집돼 있는 곳이 아님에도 꼽힌 지역이 적지 않다는 점이다. 인천 삼산, 경기 성남 중원, 충남 예산 등은 외국인 거주 비율이 상대적으로 낮음에도 범죄 발생률이 높았다.
경찰은 급증하는 외국인 범죄에 대응하기 위해 범죄정보 수집에 집중하고 있다. 이달 1일부터 외국인 밀집지역에 이들과 관련된 범죄정보를 수집하고 예방을 전담할 외사조정관이 배치됐다.
외국인 밀집지역은 지구대, 파출소 관할 외국인이 1000명 이상으로 지역 인구 대비 5% 이상인 곳 77곳이 선정됐다. 이 곳에 거주하는 외국인은 총 27만9672명으로 국내에 체류하는 전체 외국인의 1/3에 해당한다.
외사조정관은 이 지역 관할 경찰서 43곳에 각 1명씩 배치돼 활동을 시작했다. 당초 외사조정관은 서울 영등포·용산경찰서 등 4곳에서 7명에 불과했었다.
[이수영 기자] severo@dailysun.co.kr
이수영 기자 severo@dailysu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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