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박시은 기자] 민족 최대의 명절인 설날이 왔다. 흩어져 지내던 가족이 모여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날이지만, 주부들에게는 두려운 날이기도 하다. 특히 가사, 육아를 비롯해 회사 업무까지 동시에 맡아오던 워킹맘들에게는 더욱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날이다. 재벌가 여성들도 마찬가지다. 과거 ‘사모님’이나 ‘관장님’에 머무르던 재벌가 여성들의 경영참여가 늘어나면서 워킹맘 타이틀을 붙인 이들이 상당하다. 기혼 여성들의 사회 진출이 증가한 만큼 출산 이후에도 일을 놓지 않고 경영 복귀를 서두르는 재벌가 워킹맘들도 증가한 것이다. 이에 [일요서울]은 재벌가 여성을 비롯한 워킹맘들의 설날을 들여다봤다.
이부진·이서현·현정은 대표 여성경제인
기혼여성 사회 진출 증가만큼 재계도 활발
회사업무·가사·육아 소화 고충 커
최대 명절 앞두고 명절증후군 호소도
하지만 2, 3세대 딸들이 본격 경영수업을 받고, 경영에 참여하는 활동이 늘면서 분위기가 달라지고 있다. 기혼 여성들의 사회진출이 증가한 만큼 출산 후에도 일을 놓지 않는 재벌가 여성들도 늘어난 것이다.
대표적인 재벌가 워킹맘은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이다.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장녀인 이부진 사장은 2007년 득남하면서 워킹맘이 됐다.
이부진 사장은 아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모습이 종종 목격되곤 한다. 2011년 마트 매장 안에서 카트를 끌고 아들과 함께 쇼핑을 하며 시간을 보내는 모습, 2012년엔 목동구장에서 아들과 함께 야구경기를 관람하는 모습이 알려진 바 있다.
또 지난달에는 장난감을 사기 위해 아들과 완구매장을 직접 찾은 사실이 알려져 화제가 됐다. 지난해 크리스마스 선물로 인기를 끌었던 ‘티라노킹’을 사기 위해 직접 방문한 것이다. 목격담에 따르면 이부진 사장은 수수한 차림으로 완구점을 방문했으며, 장난감을 여러 개 사달라는 아들에게 “자꾸 그러면 그냥 갈거야”라고 혼을 내기도 한 것으로 알려진다.
이 같은 ‘엄마 이부진’은 호텔신라 내에서는 특유의 승부사 기질을 가진 경영자로 통한다. 이부진 사장은 출산 3일 만에 사무실에 출근할 만큼 업무에 충실한 워킹맘으로 알려진다. 이 같은 이부진 사장의 경영 성과는 매출 성장으로 드러났다.
호텔신라는 이부진 사장이 본격적으로 경영에 참여한 2001년 8월 이후 폭발적인 성장을 거뒀다. 단적으로 호텔신라의 매출은 2001년 말 4304억 원에서 지난해 2조9089억 원으로 증가했다. 주가 역시 2001년 8월 말 주당 6700원에서 현재 10만 원대를 넘나들고 있다.
또 면세점 사업을 핵심사업으로 육성해 현재 호텔신라에서 면세사업은 실적의 약 80% 가량의 비중을 차지할 만큼 성장했다.
이부진 사장의 이번 설날 계획은 외부에 노출된 것이 없다. 임우재 삼성전기 부사장과 이혼 조정 합의 등 여러 복합적인 상황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이부진 사장은 지난 10일 수원지법 성남지원에서 열린 2차 조정기일에서 합의에 이르지 못해 소송을 통해 이혼 절차를 밟게 됐다. 앞서 두 사람은 지난해 12월 1차 조정기일을 가졌으나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호텔신라 측 관계자는 “오너의 설날 일정을 알고 있는 것이 없다”며 “출근여부도 모르는 상태”라고 말했다. 다만, 이건희 회장이 병원에서 재활치료를 받으며 설날을 보낼 것으로 알려져 가족들과 함께 병원에서 명절을 보낼 것으로 예측된다.
삼성가의 또 다른 워킹맘 이서현 제일모직 사장 역시 이부진 사장과 다르지 않은 명절을 보낼 전망이다. 이서현 제일모직 사장은 2000년 김재열 제일기획 사장과 결혼 후 1남3녀를 두고 있다.
이서현 사장은 2002년 제일모직 패션연구소 부장으로 입사한 이후 출산과 경영을 병행하고 있다. 초등학생 딸이 다니는 학교를 찾아 다른 엄마들과 환경미화 활동을 하는 등 학부모 행사도 직접 챙기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서현 사장이 맡고 있는 제일모직은 지난해 패션사업 부문에서 매출 1조8510억 원, 영업이익 561억 원을 기록했다. 4분기 영업이익은 172억 원을 기록해 3분기 -88억 원에 비해 흑자로 전환했다.
또한 제일모직은 올해 스포츠 의류와 대중 명품 브랜드 등을 적극적으로 인수해 몸집을 키워나갈 계획이다.

나란히 경영 참여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도 경영활동을 벌이는 대표적인 재벌가 여성이다. 현정은 회장은 2003년 남편 고(故) 정몽헌 회장이 세상을 떠난 후 현대그룹 경영 일선에 뛰어들었다.
올해로 경영에 참여한 지 12년째인 현정은 회장은 경영 참여 전까진 평범한 아내이자 어머니, 며느리로 내조에만 전념해왔다. 하지만 회장 취임 후 재계 대표 여성경제인으로 자리잡았다.
최근 현정은 회장은 금강산관광 등 남북경제협력의 필요성이 논의되면서 그간의 어려움을 이겨내고, 새롭게 도약하는 한 해를 준비하고 있다. 앞서 현대그룹은 그룹 매출의 75%를 차지하고 있는 현대상선의 매출 부진으로 인해 위기설이 계속해서 제기됐다.
이에 현정은 회장은 2013년 말 현대상선 구조조정안을 발표하며 빠른 진화에 나섰고, 6000억 원 규모의 현대로지스틱스 매각, 9700억 원 규모 현대상선 LNG사업부 매각, 3500억 원 가량 주식 및 부동산 처분 등을 통해 3조400억 원의 자금을 마련했다. 이는 현정은 회장의 자구안 이행률 92%를 달성한 액수로, 다시 한번 현정은 회장의 경영능력이 드러난 계기가 됐다.
또한 그룹의 지배구조를 순환출자에서 지주사체제로 탈바꿈시키며 위기를 기회로 바꿨다. 지주사 체제 변경으로 안정적인 경영권을 확보하면서 그동안 경영권 방어에 시달렸던 현정은 회장의 시름이 덜어진 셈이다.
이처럼 새로운 도약을 준비하고 있는 현정은 회장은 이번 설날 자택에서 가족과 시간을 보내며 경영 구상에 몰두할 것으로 전해진다.
그의 맏딸인 정지이 현대유엔아이 전무도 워킹맘의 길을 걷고 있다. 정지이 전무는 2011년 외국계 투자금융그룹 맥쿼리 투자은행 매니저로 일하던 신두식 씨와 결혼해 이듬해 2월 딸을 출산했다. 신두식 씨는 신현우 전 국제종합기계 대표와 신혜경 전 서강대 일본학과 교수의 차남이다.
정지이 전무 역시 가족들과 함께 설날을 보낼 것으로 예측된다. 결혼 당시 정지이 전무의 시어머니인 신혜경 교수는 “가족들과 함께 명절을 잘 보냈다”고 근황을 전한 바 있다.

오리온·이랜드 등
시작 계기 다양
이화경 오리온 부회장, 박성경 이랜드그룹 부회장도 대표적인 워킹맘이다.
1남 1녀를 두고 있는 이화경 오리온 부회장은 1975년 동양제과 인턴사원으로 입사했으며, 2001년에 사장으로 승진했다. 회사일을 시작한 지 26년 만이다.
이화경 부회장은 두 자녀 출산 휴가 때를 제외하고는 40년째 줄곧 자리를 지켜왔다. 가정 살림에 전념하다 뒤늦게 경영에 뛰어든 언니 이혜경 동양그룹 부회장과는 달리 일찍부터 경영에 참여해온 것이다.
두 자매는 지난해 오리온이 동양그룹의 유동성 위기 극복을 위한 지원 요청을 거절하면서 관계가 멀어진 것으로 알려진다. 이전까지는 담벼락 하나를 사이에 두고 살면서 잦은 교류와 경영 측면에서도 여러 가지를 공유할 정도로 우애가 좋은 자매란 명성이 자자했다.
하지만 추석 명절 직후 오리온이 동양그룹의 지원 요청을 거절했고, 이 과정에서 이혜경-현재현 부부와 이화경-담철곤 부부 간의 의견 조율, 치열한 신경전 등이 복잡하게 얽혔을 것으로 예상돼 올 명절 두 자매간의 교류를 찾아보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박성경 이랜드그룹 부회장은 대학 졸업과 동시에 결혼을 하면서 한동안 주부로 지냈다. 그는 슬하에 1남 1녀를 뒀다. 그러다가 1984년 이랜드에 들어가 오빠인 박성수 이랜드그룹 회장의 일을 도우면서 일과 육아를 병행하기 시작했다.
박성경 부회장은 1994년부터 이랜드월드 대표를 맡아 당시 어린 두 자녀를 양육하면서 동시에 아웃소싱 업체를 찾기 위해 해외를 돌아다니는 등 바쁜 시간을 보내왔다.
현재 박성경 부회장은 배우 최정윤의 시어머니로도 유명세를 떨치고 있다. 박성경 부회장은 공개석상에서 며느리 최정윤에 대한 애정과 함께 만족스러움을 드러낼 만큼 며느리 사랑이 각별하다. 박성경 회장은 올해 설날에도 큰집에 모여 가족들과 함께 설날 연휴를 보낼 전망이다.
이밖에 범삼성가인 정유경 신세계 부사장과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의 딸 정성이 이노션 고문도 각각 1남1녀를 둔 재벌가 워킹맘이다.
뿐만 아니라 재계에 다수 포진된 워킹맘들도 집안 챙기기와 경영 참여로 바쁜 설날을 보낼 전망이다.
최은영 유수홀딩스(전 한진해운홀딩스) 회장은 두 딸을 두고 있다. 2006년 남편 조수호 회장 작고 후 회사를 이어받으면서 경영에 뛰어들었다. 일본에서 대학을 나온 최 회장은 두 딸도 일본으로 보내 와세다대학에서 공부를 시켰다.
윤송이 엔씨소프트 사장은 2007년 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와 결혼해 슬하에 두 아들을 두고 있다. 윤송이 사장은 첫아들을 낳고 두 달 만에 출근해 화제를 모았으며 수유를 하면서도 책을 볼 만큼 독서광으로 알려진다.
윤송이 사장은 2012년 12월 부임 후 매년 적자를 내던 북미법인을 흑자로 전환시켰다. 또 지난해 3분기에는 북미와 유럽지역에서 약 380억 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다만, 현재 넥슨과 엔씨소프트가 경영권 분쟁을 겪으며 갈등이 깊어지고 있어 마음 편히 떡국을 먹으며 설날을 보내기는 어려워 보인다.
더군다나 워킹맘들은 재벌가가 아니더라도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모습이다. 엄마라는 이름으로 가사, 육아와 더불어 회사 업무까지 도맡고 있는 워킹맘들에게 명절은 즐길 수 있는 시간보다 더 바쁜 일상을 보내야 하는 날인 셈이다.
엄마·직원
다 하려면 죄인?
워킹맘 직장인 A씨는 “다가오는 설날이 걱정된다”며 “설 전날까지 회사업무로도 피로가 쌓여 있을 텐데 시댁에 가서 그 상태로 일을 하다보면 머리부터 발끝까지 통증이 느껴지기도 한다”고 말했다.
또 다른 워킹맘 직장인 B씨도 “벌써부터 명절증후군에 시달리는 기분이 들 만큼 기혼여성이 사회생활을 이어가기 쉽지 않은 사회다”며 “남편이랑 똑같이 회사로 출근해 일을 해도 살림, 육아에서 도맡아야 하는 부분이 여자가 클 수밖에 없다. 평소에도 힘들지만 명절은 더하다. 쪼그려 앉아서 몇 시간 동안 전을 부치고, 허리를 구부렸다 폈다 반복하다 곧바로 회사로 출근해야 하는데 모든 걸 혼자 해내는 게 너무 벅차다”고 전했다.
이 같은 워킹맘들의 마음은 지난해 방영된 드라마 ‘미생’에서도 그려진 바 있다. 극 중 워킹맘으로 등장한 선 차장은 “워킹맘은 늘 죄인이지. 회사에서도 죄인, 어른들에게도 죄인, 애들은 말할 것도 없고. 일 계속 할 거면 결혼 하지 마. 그게 속 편해”라고 워킹맘들의 마음을 대변했다.
박시은 기자 seun897@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