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실명제 탓 입금만 하고 출금 못해
리어카에서 새우잠을 자면서 고철을 주워 판 돈을 모은 노숙인이 1억원이 넘는 통장 예금을 끝내 찾지 못하고 세상을 등졌다. 지난 4일 광주 북구와 광주은행에 따르면 A씨는 광주 일대에서 수십년째 리어카(손수레)를 끌고 다니며 고철과 폐지 등을 주워 팔고 리어카에서 신문지나 비닐 따위를 덮고 자는 노숙인 생활을 해 왔다.A씨는 자신의 이름도, 출생지도 몰랐다고 한다. 주민등록전산망과 가족관계등록부(옛 호적)에서도 신원을 찾을 수 없는 A씨는 자신이 1953년 5월23일에 태어났다고 말했을 뿐이다.
A씨는 금융실명제가 도입되기 전인 1993년 광주은행에 ‘나00'라는 이름을 만들어 예금 계좌를 개설하고 푼푼이 돈을 넣기 시작했다.
하지만 같은 해 8월 금융실명제가 도입되자 실명 확인이 안 된 A씨는 통장에 입금만 할 수 있을 뿐 출금은 할 수 없는 처지가 됐다.
하지만 A씨의 예금은 중단되지 않았고, 시간이 흐르는 동안 예금액은 1억2800만원으로 불어났다.
주변에 “돈이 모이면 집 한 칸 마련하고 싶다”고 말하고 다녔다는 A씨는 2007년께부터 북구 용봉동의 한 공터에 정착, 컨테이너를 빌려 작은 보금자리를 꾸렸다.
하지만 그 사이 건강이 급속도로 나빠진 A씨는 췌장암을 얻었고, 결국 지난달 28일 병원에서 한 많은 세상을 등지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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