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 ㅣ 이범희 기자] 여의도와 경제인 사이의 틈새가 쉽게 봉합되지 않는 듯하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정치인들은 많은 구호를 국민들에게 외친다. 그중 대표적인 것으로 중소상인을 살리겠다며 기업을 옥죈다. 심지어는 민심을 얻기 위해 대기업 때리기에 초선의원들을 중심으로 동참하고 있다.
최근에는 법안 발의를 통해 그 강도를 높이고 있다. 그러다보니 재계 부담이 커진 상황. 이런 가운데 일부 기업들은 법안 발의를 막기 위해 분주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일각에선 보이지 않는 뒷거래(?)도 서슴지 않는다.
내용 앙심 품고 의원 정책 폄하 사설로 압박
법안 통과 때 기업경영 위기 vs 규제 꼭 필요
본지에 한 통의 제보가 들어온 건 지난 13일. A국회의원이 발의한 내용에 앙심을 품은 B기업이 로비를 벌이고 있다는 게 주된 내용이었다. 이를 확인해본 결과 특별한 점을 찾지 못했다.
오히려 정치권 한 인사로부터 “있을 법한 이야기다. 해당 법안이 통과되면 당연히 피해를 보는 건 기업이기에 이를 무마하려는 시도가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는 정황상의 증거일 뿐 내부 제보자 없이 진짜 증거를 찾긴 힘들 것"이라는 핀잔을 들었다.
제보자는 본지와의 전화인터뷰에서 “처음에는 돈으로 매수하려다 이를 거부하자 모 신문 사설을 통해 압박하는 여론을 형성하려 했다"며 “관련 규제로 인해 피해는 불가피하겠지만 꼭 필요한 법안이라 생각해 끝까지 밀고 나갈 예정이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재계의 곱지 않은 시선을 받고 있는 법안은 무엇이 있을까.
가장 최근 발의 된 내용은 이종걸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발의한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이다. 이 법안은 전통시장이나 전통상점가로부터 2㎞ 이내에 대형마트·아웃렛·상설할인매장 개설을 제한하는 게 골자다. 이 법안이 본회의를 통과하면 정치권의 유통법 관련 규제가 대형마트와 기업형 수퍼마켓(SSM)에 이어 아웃렛까지 뻗친다.
이 법안 발의 소식이 알려지자 유통업계가 초긴장했을 정도다. 모 업체는 긴급회의를 열었다는 이야기도 회자된다.
아웃렛 사업으로 지난해 매출 부진을 극복하려던 롯데·현대·신세계 등 이른바 ‘유통 빅3’는 비상이다. 당장 올해부터 줄줄이 잡아놓은 아웃렛 개점 계획에 직격탄이 될 수 있어 노심초사하고 있다.
같은 당 김기준 의원은 오너 일가를 직접 겨냥하는 듯한 내용을 담은 법안 발의를 진행중이다.
17일 국회에 따르면 정무위 소속 김 의원은 보수총액 기준 상위 5명에 해당하면 연봉을 의무적으로 공개하도록 하는 내용의 자본시장·금융투자업법 개정안(자통법)을 대표 발의했다.
김의원은 “개정안이 통과되면 재벌총수가 보수공개를 이유로 등기임원에서 사퇴해 책임경영을 회피하는 문제점이 해소될 수 있다"며 “재벌총수의 보수가 회사의 성과와 연계되도록 공개·통제해 회사경영의 투명성과 사회적 책임이 강화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주목받는 법안 내용은
현재 삼성 일가 중에서는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을 제외하면 모두 미등기임원이다. 이건희 삼성 회장을 비롯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이부진 사장과 이혼조정절차를 밟는 임우재 삼성전기 부사장, 이서현 제일모직 사장과 남편 김재열 삼성엔지니어링 사장의 연봉이 미공개 상태다.
두산은 박용곤 명예회장을 비롯해 박지원 부회장 등이 미등기 임원이다. 신세계는 이명희 회장과 남편 정재은 명예회장, 아들인 정용진 부회장, 딸인 정유경 부사장이 모두 미등기 임원이다.
만약 이 법안이 통과되면 재벌 총수 ‘연봉킹’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1위를 차지할 가능성이 크다고 업계는 분석한다. 작년 건강보험공단에 납부한 건보료 규모를 보면 이 부회장의 연봉은 적어도 100억 원이 넘는 것으로 추정된다.
2~3위는 담철곤 오리온 회장과 이화경 부회장이 오를 것으로 보인다. 담 회장과 이 부회장은 2013년에 등기임원 연봉 공개를 의무화하는 자본시장법 개정안이 통과되자 등기임원 자리에서 물러났다. 등기임원일 때 담 회장은 54억 원, 이 부회장은 44억 원의 연봉을 받았다.
앞서 박영선 전 원내대표는 일명 ‘이학수 특별법' 제정으로 대기업 지배구조 개혁을 촉구하고 나섰다.
박 의원은 지난해 12월 12일 국회에서 토론회를 열고 “삼성SDS를 상장하면서 이학수 전 부회장, 김인주 전 삼성선물 사장 등이 수조원에 달하는 상장차익을 거뒀다"며 "이로 인한 상장차익의 대가가 있어야 한다"고 밝혔다.
불법적인 주식거래로 거둔 이익인 만큼 이른바 ‘이학수 특별법' 제정으로 반드시 사회적에 환수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익명을 요구한 모 기업 홍보담당자는 “기업 입장에서 발목을 잡힐 만한 법안이 통과되기 전에 어떻게든 무마하려는 시도는 당연히 한다.
그러려고 정치인맥을 스카웃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과거엔 정경유착으로 정치권과 기업이 함께 했다면 이제는 정경대립으로 상호공생이 아닌 상호공멸이 되고 있다"고 했다. 이는 정부가 기업의 관련규제를 풀어주겠다고 공헌하는 상황에서 국회의원들이 기업의 발목을 잡고 있는 것에 대한 비난이었다.
한편 법안 통ㅇ과를 막으려던 입법로비 시도는 어제 오늘 일만은 아니다. 입법로비 혐의로 기소된 새정치민주연합 김재윤 의원은 최근 징역 3년의 실형을 받기도 했다. 김 의원 외에도 입법로비 의혹으로 법의 심판을 받는 사람이 더 있다.
해당 재판부는 “국회의원 본연의 업무인 입법 관련 직무에 공정성을 기하지 못한 점, 또 뇌물을 주면 법률도 바꿀수 있다는 그릇된 인식을 확산시킨 점" 등을 실형 선고의 주된 이유로 판시했다.
이범희 기자 skycros@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