쇠고랑 찬 전과 23범 ‘로또의 추억’
쇠고랑 찬 전과 23범 ‘로또의 추억’
  • 이수영 기자
  • 입력 2008-10-13 14:04
  • 승인 2008.10.13 14:04
  • 호수 754
  • 16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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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또 1등대박서… 패가망신 인생유전

경기불황의 골이 깊어질수록 서민들은 ‘대박의 꿈’에 젖어든다. 특히 45개 번호 중 6개를 맞히는 게임으로 1등 당첨자 평균 수령액이 37억1000여만원에 달하는 ‘로또’의 인기는 식을 줄 모른다.

당첨확률이 1/814만5060에 불과하다는 로또복권 1등에 당첨되고도 불과 20개월 만에 14억원이라는 거금을 날린 것도 모자라 전과 23범의 나락으로 빠져든 사나이의 인생유전은 충격과 함께 씁쓸함을 안겼다.

폭력 사건을 일으키고 경찰의 수배를 받던 중 19억원짜리 로또복권에 당첨되고도 순식간에 빈털터리가 된 절도범 황모(28)씨의 기막힌 사연은 한편의 ‘반전극장’을 보는 듯하다.

절도와 사기행각을 저질러 수차례 교도소를 드나들었던 황씨는 이번 사건으로 전과 23범 타이틀을 갖게 됐다. 10대 시절부터 거의 매년 두 차례 이상씩 범죄를 저지른 셈이다.

어릴 때부터 남의 물건에 손을 대 소년원을 제집처럼 오갔던 황씨가 ‘로또대박’을 맞은 것은 3년 전 여름.

2005년 3월 경남 마산 시내 한 PC방에서 종업원을 마구 때린 뒤 현금 20여만원을 빼앗아 달아난 뒤 수배자 신세였던 황씨는 숨어 지내는 동안 우연히 산 로또가 1등에 당첨되면서 돈벼락을 맞게 됐다.


절도로 소년원 들락거린 전력

총 19억원의 당첨금 가운데 세금을 빼고 13억9000만원이 고스란히 황씨의 손에 굴러들어온 것이다. 마산의 임대아파트에서 궁핍하게 살던 황씨에게는 ‘천지가 개벽할 만큼’ 큰돈이었고 그는 한 맺힌 사람마냥 주위 사람들에게 돈을 뿌려대기 시작했다.

그나마 기특한 것은 가족의 생계를 돌보려는 마음씀씀이다. 경찰에 따르면 황씨는 홀아비인 아버지에게 3억짜리 새집을 마련해주고 부친의 개인택시 면허와 차 구입비로 2억을 쏟아 부었다는 것이다.

그는 또 마땅한 벌이가 없었던 친형에게 1억5천만원을 들여 PC방을 차려주기도 했다. 가족 뿐 아니라 교도소에서 만난 감방 동기 3~4명에게는 ‘용돈 조’로 한번에 1천만원 이상씩을 쏠 만큼 황씨는 ‘통 큰 사나이’로 다시 태어났다.

가족과 지인들에게 적잖은 ‘당첨 턱’을 쏜 그는 이번엔 평소 동경했던 고가품을 사들이는데 혈안이 됐다. 고급 명차인 BMW 530을 구입했고 동거 중이던 애인과 함께 살 아파트까지 장만했다. 2억원을 들여 호프집 사장님으로 변신한 그는 그야말로 ‘인생역전’의 산증인이 될 뻔했다.

그러나 14억짜리 로또대박은 불과 20개월 만에 산산조각 났다. 형이 운영하던 PC방과 황씨의 호프집은 파리가 날릴 정도로 장사가 안 돼 매물로 내놓을 수밖에 없었고, 황씨는 손대는 사업마다 실패하며 순식간에 7억원이란 돈을 공중에 날렸다.

사업실패 이상으로 문제가 된 것은 도박과 여자라면 사족을 못 쓰는 황씨의 ‘습성’이었다. 하룻밤에 수백만원이 넘는 팁을 뿌려대는 황씨는 룸살롱 최고의 고객이었지만 이미 밑 빠진 독이 돼버린 이상 그 씀씀이를 감당하는데 한계가 오고 말았다. 특히 사설도박판 포커게임에 빠진 황씨는 유흥비와 도박자금으로 4억원이 넘는 거액을 탕진했다.

당첨금이 바닥을 보이자 오랫동안 억누르고 있던 범죄 본능이 되살아난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지난 2006년 3월 귀금속 매장에서 고가의 귀금속을 외상으로 구입한 뒤 돌려주지 않고 주인을 협박한 혐의로 구속된 황씨는 남은 당첨금을 톡톡 털어 비싼 변호사를 선임했다. 6000만원의 수임료를 내건 덕분에 강도 혐의를 공갈로 바꿔 가볍게 벌금 700만원을 선고받은 그는 이미 빈털터리 신세였다.

지난해 4월 또 다시 사기 혐의로 1년의 실형을 선고받고 지난 봄 만기 출소한 황씨는 소년원에서 만난 후배 김모(26)씨와 팀을 이뤄 본격적인 ‘생계형 도둑’으로 변신했다. 돈벼락에 겨워 흥청망청 허세를 부린지 겨우 3년 만이었다.

시내 금은방을 돌며 주인이 한눈을 파는 사이 순금목걸이 2개 등 150여만원 어치를 훔친 일당은 같은 수법으로 부산과 경남, 대구 등지를 돌며 지난 7월까지 18차례에 걸쳐 약 500만원에 달하는 금품을 슬쩍했다.


“제 버릇 개 못준 탓에…”

황씨의 범죄행각은 지난 6월 말 공범 김씨가 먼저 경찰에 붙잡히면서 드러났다. 김씨가 검거된 뒤 경찰의 수배를 받아 도피생활을 했던 황씨는 지난달 24일 오후 전주 시내에서 불심검문에 걸려 쇠고랑을 차게 됐다.

경찰에 따르면 황씨는 숨어 지내는 동안에도 또 한 번의 ‘로또대박’을 꿈꾸며 수시로 복권을 사 모은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 관계자는 “현재 황씨 수중에는 돈이 한 푼도 없는 상태”라고 전했다. 황씨는 경찰 조사에서 “그토록 원하던 로또복권 1등에 당첨되고도 인생이 이 지경에 이를 줄은 몰랐다. 도박으로 빚을 진대다 생활비가 없어 남의 물건에 손을 댔다”며 후회의 눈물을 흘린 것으로 전해졌다.

이수영 기자 severo@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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