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원한 관계에서 등 돌리는 대통령 원로그룹 멤버
청와대 내부에서 박근혜 정권 비선 조직의 핵심으로 일컫는 정윤회씨의 동향 관련 문건이 세간에 알려지면서 ‘7인회’가 또 다시 주목받았다. 지난 11월28일 세계일보는 청와대 민정수석 산하 공직기강비서팀에서 작성한 것으로 알려진 문건을 공개하면서 ‘7인회’ 멤버인 김기춘 비서실장과 또 다른 멤버인 최병렬 전 대표 그리고 김용환 새누리당 상임고문이 실명으로 거론됐다.
최병렬, “내가 어떻게 아느냐”
이 문건에 따르면 정윤회씨와 십상시들은 지난해 연말 송년모임에서 ‘7인회’ 관련 “(김 실장은 7인회 멤버 중 한 명인) 최병렬이 VIP(박근혜 대통령)께 추천해 비서실장이 됐는데 ‘검찰 다잡기’만 끝나면 그만두게 할 예정”이라고 적고 있다. 또한 “7인회 원로인 김용환도 최근 김기춘을 달갑지 않게 생각하고 있다”며 “사퇴 시점은 2014년 초·중순으로 잡고 있다며 참석자들에게 정보지 관계자들을 만나 사퇴 분위기를 조성할 수 있도록 정보를 유포할 것을 지시했다”고 적시돼 있다.
‘7인회’ 다른 멤버인 강창희 전 국회의장, 현경대 민주평통자문회의 수석부의장, 안병훈 전 조선일보 부사장, 김용갑 전 국회의원을 제외한 3명이 문건에 실명으로 등장한 셈이다. 특히 김 실장이 2013년 8월 비서실장으로 취임해 ‘7인회’가 주목받을 당시 ‘7인회가 추천하지 않았다’고 이구동성으로 밝혔지만 이 문건에는 이를 뒤엎는 내용을 담고 있어 7인회 멤버들을 당혹스럽게 만들었다.
그 당사자로 지목된 최 전 대표는 ‘말도 안 된다’며 분노를 표출했다. 12월4일 일요서울과 전화통화에서 청와대 문건에 자신의 이름이 거론되고 있는 것에 대해 최 전 대표는 “x같은 놈의 xx가 어딨냐? 희한한 세상이다”면서 전화통화 시작부터 육두문자를 쏟아냈다. 이어 그는 이름이 거론되고 있는 것에 대해 “내가 어떻게 아느냐”고 반문하면서 “자기들 마음대로 한 거다. 박경정이 누군지도 모른다”고 화를 참지 못했다.
이어 왜 실명이 거론된 것으로 보이느냐는 질문에도 “내가 어떻게 알어? (청와대에는) 가지도 않는다. 이상하다”며 “나쁜놈들이다. 마음대로 하라고 해라”고 목소리를 더 높였다. 이어 최 전 대표는 감정 조절이 힘들었던지 “더 이상 얘기할 게 없다”면서 “이상한 놈들이다”고 전화를 끊으며 청와대 문건 작성자와 유출자에 대해 이해할 수 없다는 모습을 보였다.
최 전 대표의 청와대에 대한 이런 입장은 과거 발언에 비해 한결 강경한 태도로 청와대와 ‘7인회’멤버사이가 돌이킬 수 없는 관계로 접어든 게 아니냐는 해석이 가능하다. 최 전 대표는 김 실장이 청와대에 입성할 당시(2013.08.16)만 해도 본지와 통화에서 “허허허 요즘 기사를 쓸 게 없는 모양이다”며 “근래에는 함께 밥 먹은 적도 없다. 언젠가는 먹겠지만...허허허”고 웃어넘겼다. 이어 최 전 의원은 “요즘은 아무것도 못하고 있다. 골프도 안 하고 목욕탕에서 놀고 있어 사람도 안 만나고 아는 것도 별로 없다”고 조심스런 태도를 보였다.
문창극 파문 ‘소원’ 문건 유출로 ‘끝’?
또한 김 전 법무부장관이 비서실장으로 임명된 것에 대해서 그는 “비서실장으로 갈 줄은 전혀 몰랐다. 사후에 알았다”고 밝혔다. 특히 ‘7인회’에 대한 향후 활동을 묻는 질문에 최 전 대표는 “권력 언저리에 들락날락하는 것은 오히려 스타일만 버린다”며 “아들 딸 손자들과 만나서 먹을 거 사주며 재밌게 지내지 청와대 근처는 얼씬거리질 않는다”고 밝힌 바 있다. 이때만 해도 청와대와 ‘7인회’ 관계는 공식적으로 앙금이나 갈등 그리고 소원한 감정이 묻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7인회’가 청와대에 대해 섭섭함을 가지기 시작한 때가 바로 올해 7월 문창극 총리 내정의 배후로 재차 ‘7인회’ 멤버가 구설수에 오르면서 기류가 변하기 시작했다. 당시 문 총리 내정자가 서울고 출신이라는 점에서 정치권에서는 그 배후로 안병훈 전 조선일보 부사장이 막후에서 역할을 한 것으로 지목됐다. 이에 대해 안 전 부사장은 당시 “서울고 출신이면 다 추천하느냐”고 반문하면서 “나는 정치에서 완전히 손을 뗐다. 추천한 일이 없고 우리가 한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라고 여운을 남겼다.
김용갑 전 의원 역시 “어떻게 그런 후보가 됐는지 모르겠다. 누가 그 사람을 믿고 일을 추진하겠느냐. 국가 개조가 공허하게 들릴 수 있다”며 “정치를 쉽게 하면 좋을 텐데 왜 이렇게 어렵게 하는지 아쉽다”고 토로했다. 사실상 7인회 멤버와 청와대의 원만했던 관계가 조금씩 금이가고 있다는 점을 공개적으로 토로한 셈이 됐다.
김 실장과 소원해졌다는 지적을 받은 김용환 새누리당 고문도 박 대통령에 대해 직접 날을 세우지는 않았지만, 6·4 지방선거 결과에 대해 “사실상 여당이 패배한 선거다. 반성해야 한다”며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한 발 더 나아가 최 전 대표는 박 대통령을 “무서운 사람”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어쩌다가 이렇게까지 됐지? 대체 이해할 수 없다. (임기 중 아무것도 못하고 끝날까 걱정된다는 말에 공감하며) 내 생각도 그렇다. 우리 친구들을 만나도 큰일 났다는 말만 한다. 지금 박 대통령은 (참모가 직언하는) 그런 말을 할 분위기를 만들어주지 않는 것 같다. (7인회와 거리를 두는 것은) 잘은 모르지만 뭔가 좀 이상하다. 대통령이 되기 전에는 같이 밥 먹고 편안하게 조크도 하면서 잘 지냈지만 청와대 들어가면서 달라졌다. 무서운 분이다”고 평했다.
공조직 비선 갈등, ‘7인회’역할 재부상
‘7인회’ 멤버들이 문창극 총리 내정자 파문을 겪으면서 인사에서 완전히 배제되었음에도 청와대 참모들 중에서 자신들을 ‘주범’처럼 언론 플레이를 한 것에 대해 억울한 심경을 표출한 것으로 정치권에서는 받아들였다. 이런 가운데 청와대 문건이 유출돼 재차 ‘7인회’ 멤버들 간 ‘이간질’뿐만 아니라 김 실장 임명 배경에 실명이 언급되면서 그동안 참고 참았던 분노를 표출했다는 게 일반적인 시각이다.
하지만 여권 내에서는 집권 중반기에 접어들면서 터진 이번 파문은 공조직과 비선조직의 암투가 노출된 것으로 원로 그룹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에 대한 반증이라는 해석이다. 특히 이번 청와대 문건 유출 파문으로 ‘7인회’가 정씨와 김 실장 박지만과 ‘십상시’ 사이에 가교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관측도 조심스럽게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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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준철 기자 mariocap@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