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요서울Ⅰ오두환 기자] 통합진보당 정당해산심판 청구에 대한 공판 절차가 모두 끝났다. 이제 남은 것은 헌법재판소의 결정이다.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앞두고 정치권에서는 결과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정부도 마찬가지다. 헌법재판소에서 해산 판결이 떨어지면 보수세력과 정부는 안심하겠지만 만에 하나 해산 판결이 떨어지지 않는다면 후폭풍이 만만치 않을 전망이다. 하지만 국민들은 대법원의 해산 판결여부와 상관없이 이미 통합진보당을 떠났다. 버렸다는 표현이 더 옳을 것이다.
정부 “대한민국을 내부에서 붕괴시키려는 암적 존재”
통진당 “정부가 근거 없이 위헌정당으로 단정했다”
지난 25일 서울 종로구 재동 헌재 대심판정에서는 양측 대표자의 최종 구술 변론이 있었다. 정부 측 대표로 나선 황교안 법무부 장관은 “통합진보당은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파괴하고 대한민국을 내부에서 붕괴시키려는 암적 존재”라고 맹비난하며 “통진당 해산은 헌법을 파괴하려는 세력으로부터 국민과 국가의 안전을 지키기 위한 결단”이라고 밝혔다.
이어 “과거 주사파 지하조직이 정당에 침투한 뒤 통진당을 북한 추종세력의 본거지로 만들었다”며 “반드시 해산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통진당 측 최후변론을 맡은 이정희 대표는 “정부가 아무 근거 없이 위헌 정당으로 단정했다”며 “의혹과 추측만으로 정당을 해산시켜서는 안 된다”고 반박했다. 이어 “북한에게 조종당하는 정당도 아니고 북한식 사회주의를 선택할 이유도 없다”며 “이석기 의원의 내란음모 혐의도 무죄판결을 받은 상태”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문제는 통합진보당이 지금까지 의혹과 추측을 키워 온 장본인이라는 점이다. 통합진보당의 구성원과 각종 과거 전력은 통합진보당의 정체성을 의심하기에 충분하다.
살기 위한 마지막 몸부림
꼬리 자르기
마지막 공개 변론에서 통진당은 통진당의 뿌리인 민주노동당을 부정하며 “민노당의 목적과 활동은 이 사건 심판 대상이 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어 “민노당 시절 발생한 강태운 사건, 일심회 사건, 6·15 소풍 사건, 김선동 의원 사건 등은 심판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통진당 대리인의 주장은 민노당 때 발생한 각종 간첩 사건이나 국회 최루탄 투척과 같은 불법행위를 심판 대상에 포함시키는 것은 연좌제 금지 원칙에 위반된다는 것이다.
2000년 창당한 민노당은 2011년 12월 다른 진보 정당을 흡수하면서 통합진보당으로 합쳐졌다. 2012년 총선 당시에는 비례대표 부정 경선 등으로 정당으로서 큰 흠집을 남겼다. 전문가들은 비례대표 부정선거를 기점으로 통합진보당은 과거의 민노당으로 돌아갔다고 평가하고 있다. 이 시기 민노당 시절 이적 행위를 했던 사람들 거의 대부분이 통합진보당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이날 통합진보당은 당원들의 국가보안법 위반 등 일탈 행위도 당과 무관하다고 주장했다. 전형적인 ‘꼬리 자르기’다. “북한 지령과 관련된 당원들은 일심회, 왕재산 사건 등 전체 당원 중 극소수에 불과하고, 이들 역시 당의 지도부나 실질적 간부도 아니어서 통진당 활동으로 볼 수는 없다”는 식이다. “핵심 간부들의 연방제 통일과 이적 활동에 대한 옹호 발언도 개인 차원의 발언이지 통진당의 공식 입장이 아니”라는 식으로 주장했다.
특히 이석기 의원 내란 음모·선동 사건에 대해 “내란 선동이 (유죄로) 인정된다고 하더라도, 이는 통진당의 조직·재정·활동과 무관한 행사에서 발언한 이석기·김홍열 두 사람의 개인적 행위에 불과하다”고 했다. 이쯤되면 살기 위한 몸부림이 극에 달한 것이다.
통진당은 이 사건에 대한 검찰 수사와 법원 항소심 선고 전까지만 해도 ‘정세 강연회'이자 ‘당 행사'라고 주장해오다 항소심 재판부가 비밀 혁명 조직으로 ‘RO'의 실체를 인정하지 않자 당과는 무관한 개인적 행위로 축소해 주장했다.
하지만 검찰 수사 결과 지난해 5월 12일 서울 마포구 마리스타 모임에 참석한 140여명 중 통진당 소속 의원과 보좌관, 중앙위원 등 주요 공직·당직자가 89명이었다. 개인적인 행위로 치부하기에는 정당과 연결된 사람들이 너무 많다.
불리한 내용은 쏙 빼고
대법원 판결도 인정 안 해
통합진보당의 ‘꼬리 자르기’는 법원의 판결조차 인정하지 않았다. 특히 이정희 통합진보당 대표는 “국정원의 위법한 정당 사찰의 결과가 만들어낸 내란 음모 조작 사건이 무죄 판결을 받았는데도 정당 해산 청구를 철회하지 않는 건 정부 스스로 민주주의와 헌법 질서를 파괴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석기 의원이 서울고법에서 내란 선동 혐의가 유죄로 인정돼 징역 9년을 선고받은 부분은 언급하지도 않았다.
또 반국가 단체로 규정된 민혁당 잔존 세력이 민노당과 이후 통진당을 장악했다는 정부 측 변론에 대해 “민혁당 사건은 1990년대 초중반에 일어난 일로 관련자도 ‘과거 공안 사건'일 뿐이고, (민혁당 총책였다가 전향한) 김영환의 일방적 진술이어서 신빙성이 없다”고 반박했다.
하지만 이석기 의원은 민혁당 경기남부위원장으로 활동한 혐의로 실형이 선고돼 복역했다. 당시 판결문에는 같은 당 이상규 의원도 민혁당 수도남부지역사업부를 맡은 것으로 나온다.
통합진보당은 2012년 통진당 분당 과정에서 나온 총선 비례대표 부정투표도‘의혹'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이 부정투표는 이미 지난해 대법원에서 유죄 확정판결이 났다. 정당을 살리기 위해 대법원 판결까지 불신하고 있는 것이다.
말 바꾼다고
정체성·뿌리 바뀌지 않아
통합진보당이 그들이 말한 것처럼 ‘국민을 위한 정당’이었다면 잘못된 과거와의 정리를 했어야 한다. 하지만 재판과정에서 법무부가 헌법재판소에 제출한 최종 서면을 보더라도 이들의 정체성은 의심받기에 충분하다.
동아일보는 지난 25일 “통합진보당 당원교육위원회 부장 김모씨가 북한의 공개지령에 따라 황장엽 전 북한 노동당 비서를 협박하는 손도끼와 협박문을 보낸 것으로 확인됐다”고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통진당 교육부장 김모씨를 포함해 과거 이적단체 활동으로 처벌받거나 가담한 인물 18명은 통진당 당원교육위에서 활동했고 자본주의 폐지를 목표로 한 북한식 ‘진보적 민주주의’ 교육을 진행했다.
법무부가 제출한 법원 판결문에서 김 씨는 지난 2006년 12월 황 전 비서에게 우체국 택배로 손도끼, 붉은색 물감을 뿌린 황 전 비서의 얼굴 사진과 협박문을 보낸 혐의로 대법원에서 징역 10개월이 내려졌다.
김 씨는 협박문에서 “민족을 배신한 네놈” “우리 민족은 군사력과 단결력으로 미국도 벌벌 떨게 하고 있다” “배신자는 반드시 죗값을 치른다” “더러운 입을 놀리고 조용히 처박혀 지내라. 다음엔 경고가 아니라 네놈의 죗값에 맞는 처벌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씨의 국적이 어디인지 의심될 정도다.
대법원의 통합진보당 정당해산심판 공판과정을 지켜보며 일각에서는 정당의 해산여부를 대법원이 판단할 수 있느냐고 지적하기도 한다. 국민들에 의해 선택되고 만들어진 정당인만큼 판단도 국민에게 맡겨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미 국민들은 통합진보당을 버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더 이상 통합진보당은 국민의 정당이 아니다.
freeore@ilyoseoul.co.kr
오두환 기자 freeore@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