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앙정부서 재정 지원 못하자 시·도와 교육청 갈등
무상급식 반대로 인해 세대 간 갈등 유발 가능성
[일요서울 | 오두환 기자] 무상급식과 무상보육을 둘러싸고 여야, 보수 대 진보, 중앙정부 대 지방정부, 시·도 지사 대 시·도 교육감 등이 치열하게 대립하고 있다. 이 싸움의 시작은 새누리당 소속 홍준표 경남지사가 무상급식 예산 지원을 거부하면서 시작됐다. 이후 진보 성향의 시·도 교육감들이 누리과정 예산을 편성할 수 없다고 맞대응하면서 큰 이슈가 됐지만 교육감들이 한 발 물러서면서 잠시 휴전 상태다. 보수 정치권은 무상급식과 진보 정치권은 무상보육과 싸우는 형국이지만 사실 이 두 정책은 ‘보편적 복지’라는 개념에 모두 포함돼 뿌리가 같다고 할 수 있다. 둘 중 하나는 취하고 하나를 버릴 수 있는 정책이 아니라 하나를 찬성한다면 다른 하나도 찬성해야 이치에 맞다. 하지만 현재 우리 정치·사회계에서는 둘 중 하나만 살려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무상급식과 무상보육은 소득 구분 없이 모든 계층에 혜택이 돌아가는 대표적 보편적 복지 정책 사례다. 하지만 두 정책을 놓고 이렇게 치열하게 대립하는 이유는 두 정책을 주장한 주체가 다르기 때문이다. 무상급식은 새정치연합의 전신인 민주당이 2010년 지방선거에서 내세운 무상 시리즈 공약 중 하나였다. 반면 무상보육은 2012년 대선 때 박근혜 대통령이 내세운 공약이었다.
무상보육 정책이 잘 자리 잡으면 박 전 대통령의 업적이 되는 것이고 무상급식이 잘 자리 잡으면 새정치민주연합의 업적이 되는 상황이다. 그러다보니 서로의 업적이 될 정책을 지원하고 싶지 않은 것이 정치권의 솔직한 심정이다.
새해 예산 반영 안 한 정부
지방교육재정으로 떠 넘겨
하지만 문제는 무상급식과 무상보육을 둘러쌓고 서로 헐뜯기만 하고 있다는 점이다. 정작 복지와 이 정책을 지원할 재정 등에 대한 진지한 토론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서로 무상급식과 무상보육에 대해 우선순위를 따지는 이유는 예산이 한정돼 있어서다. 그런데 정작 자신들의 정책만 중요하다고 외칠 뿐 아무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나서고 있지 않다.
정치권이 두 정책을 바라보는 시선은 다르다. 새누리당은 예산 부족 문제가 심각한 만큼 교육복지정책을 재구성하자는 입장이다. 하지만 속내는 진보의 대표적 정책인 무상급식 예산을 줄여 박근혜 대통령의 공약인 누리과정에 보태자는 데 있다. 자연스럽게 진보진영의 불만을 살 수밖에 없다.
무상보육을 중심으로 하는 누리과정은 보수 정권에서 성장한 복지정책이다. 누리과정은 이명박 정부 시절인 2011년 소득 하위 70%인 만 5세 이하 아동의 보육비를 지원하기로 하면서 시작됐다.
하지만 대선을 앞두고 정부가 2012년 3월부터 소득 구분 없앤 채 지원을 확대했다. 박 대통령도 당시 대선 과정에서 “보육은 국가의 책임”이라며 ‘국가책임무상보육제도’ 공약을 통해 누리과정 확대를 약속했다.
문제는 정부가 지난 9월 발표한 새해 예산안에서 누리과정 예산이 한 푼도 반영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에 따라 내년 누리과정 지원에 들어가는 3조9,691억원 전액을 지방교육재정으로 충당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 당연히 지방 도지사들과 교육감들이 고민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뿌리 같은 두 정책
무상급식은 이미 자리 잡아
무상보육과 무상급식이 대통령 공약 과정 중에서 나오긴 했지만 사실 무상급식은 이미 오래전부터 학교에서 자리잡았다. 무상급식은 2002년 16대, 2007년 17대 대선에서 권영길 당시 민주노동당 후보가 ‘무상급식, 무상교육, 무상의료’를 일컫는 ‘3무(無)’ 정책을 대표 공약으로 앞세우면서 사회적 논의의 토대를 닦았다.
이후 무상급식을 야권이 2010년 6ㆍ2지방선거에서 공통 공약으로 제시하면서 사회적 의제로 본격 부각했고, ‘친환경 무상급식 시행’을 앞세운 진보 성향 교육감이 대거 당선되면서 국민적 동의를 얻었다. 선거 이후 2010년 말까지 전국 229개 기초자치단체 가운데 88.6%인 203곳에서 초ㆍ중ㆍ고교 중 일부라도 2011년부터 무상급식을 실시하겠다고 계획할 정도로 사회적 공감대도 확산됐다.
이러한 상황에서 보수진영의 ‘무상급식 지원 거부’는 학부모들의 원성을 살 수밖에 없다. “이웃사촌이 땅을 사니 배가 아프다”는 옛말과도 다를 바 없다. 게다가 무상급식 반대로 인해 세대간 갈등을 유발하고 있어 큰 문제다.
정치권 갈등이 ‘청소년 밥그릇이냐 유아 젖병이냐’라는 논쟁으로 격화되면서 중고생 자녀를 둔 40대~50대 학부모와 유아를 둔 ‘유모차 부대’간 갈등으로 비화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급식은 청소년 복지인 반면 보육은 유아 복지이기 때문이다.
‘투정’ 부리지 말고 머리를 맞대자
우리사회에서 무상급식의 필요성이 대두되며 논의과정을 거치고 정착되기까지 10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하지만 무상보육의 경우 길어야 3년 정도다. 보수정권이 만들어서 문제가 아니라 아직 완벽하게 다듬어지지 않은 정책이다. 그러다보니 “정부가 예산을 핑계로 진보의 복지정책을 흔들려고 한다”는 말이 나올 수밖에 없다.
시ㆍ도교육청의 누리과정 예산 반발에 홍준표 경남지사와 남경필 경기지사 등 보수 진영이 ‘무상급식 예산 불가’로 맞불을 놓는 것도 결국은 ‘투정’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 이유다. 물론 대선을 앞두고 잠룡 후보로써 자신들의 입지를 탄탄히 하기 위한 의도도 있지만 결국 진정 무상 정책에 대한 고민에서 ‘예산 불가론’이 나왔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게다가 박 전 대통령은 ‘국가책임무상보육제도’를 대선 공약으로 내세웠다. 그런데 정작 중앙정부 차원에서 해야 할 지원을 시ㆍ도교육청으로 책임을 떠넘겨 지금의 이런 사태를 몰고 왔다. 아무리 보수진영의 대표이자 대통령이라고는 하지만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있다.
정부는 지난 2012년 시도교육청의 예산인 지방교육재정교부금이 늘 것이라고 예상하며 누리교육 예산을 떠넘겼다. 하지만 새해 예산안에서 지방교육재정교부금은 1조3,000억 원 삭감됐다. 2013년 국세수입이 8조5,000억 원 덜 걷힌 것을 계산해서 내년 예산이 뭉텅이로 잘려나간 것이다. 정책도 지원도 모두 헛말이 돼 버렸다.
여야는 이제라도 머리를 맞대야 한다. 우리 정책을 살리기 위해 다른 정책을 죽일 것이 아니라 뿌리가 같은 만큼 상생의 방법을 마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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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두환 기자 freeore@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