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광식 전 형사가 지목한 범인 J씨 홀어머니와 사는 독신남

안양초등생 이혜진·우예슬양 살인사건의 피의자 정성현(39.안양)에 대한 추가 수사가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지난달 27일 경기 군포시 야산에서 40대 여성으로 추정되는 유골 일부가 발견됐다.
군포경찰서는 이날 오후 1시25분께 정씨가 지목한 군포시 도마교동 야산에서 2004년 실종 된 전화방 도우미 정모(당시 44세)씨로 보이는 유골의 일부를 찾아냈다. 이에 경찰은 정씨가 2004년부터 경기서남부일대에서 집중적으로 발생한 연쇄실종·살인사건과 관련됐는지 여부를 집중적으로 수사할 예정이다.
유골이 발견되자 나머지 실종여성들도 정씨에게 피해를 당했을 것이란 추측이 대세를 이루고 있다. 특히 온라인상에선 정씨가 80년대 화성연쇄살인사건의 주범일 수도 있다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다. 화성살인사건의 유력한 용의자가 ‘J씨’라는 이니셜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J씨는 사건발생 때 범인으로 지목됐다 극적으로 풀려난 인물이다.
J씨와 정씨가 많은 공통점을 가진 것은 사실이다. 두 사람은 연령, 이름 이니셜이 같고 거주지가 수원주변이다.
정말 J씨와 정씨는 같은 인물일까. 결론적으로 말해 둘은 같은 인물이 아니다. 이는 J라는 이니셜에서 비롯된 오해에 불과했다. 하지만 이 의문점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뜻밖의 주장을 접할 수 있었다. 이번 부녀자연쇄실종사건의 주범은 정씨가 아니라 J씨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J씨가 온라인에 등장한 것은 지난 3월 초경이다. 한 네티즌이 화성연쇄살인사건의 유력 용의자로 지목됐던 J씨와 정씨가 이니셜이 같다는 점 등을 들어 정씨가 바로 그 J씨라고 주장했다. 이 네티즌은 또 이번 경기서남부 부녀자연쇄실종살인사건도 정씨의 소행일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이로 인해 J씨라는 이니셜이 논란의 핵심으로 급부상했다.
같지만 다른 주장
이 네티즌은 88년 수원여고생 살인사건 때 검거된 J씨(당시19·69년생)가 지금의 정씨라고 주장하고 있다. 정씨는 69년생이다. 또 다른 근거로 J씨의 외모가 정씨와 비슷하다고 이 네티즌은 주장하고 있다.
J씨는 키 169㎝에 갸름한 얼굴에 오똑한 코, 날카로운 눈, 차가운 인상이 모습의 특징이다. 정씨는 170㎝다. 정씨는 언론에 마스크와 모자를 쓴 모습만 나와 외모를 파악하기 힘들다. 하지만 이 네티즌은 마스크 사이로 드러난 날카로운 눈매가 J씨와 똑같다고 주장한다.
공교롭게도 J씨와 정씨 모두 혈액형이 B형이라는 점 역시 놀랍다.
이외에 크리스마스 날을 전후해 사건이 집중적으로 발생한 것도 두 사람을 잇는 연결고리다.
그러나 실은 이 주장이 주목을 끌기에 앞서 J씨가 경기서남부 실종사건의 주범일 가능성이 있다는 주장이 나왔었다. 정씨가 검거되기 전인 2007년 10월경의 일이다.
평택경찰서 홈페이지와 SBS 방송사 홈페이지 등 게시판에 송모씨가 J씨에 대한 글을 올린 것이다.
송씨는 글을 통해 “이번 사건은 J씨의 소행일 가능성이 크다”고 주장하며 “2007년 5월 8일 안산시 사사동 야산에서 발견된 박모씨의 시신이 알몸으로 발견된 점, 목에 팬티스타킹이 묶여 있는 점 등을 미뤄 J씨의 범행일 가능성이 크다”고 추리했다.
추격자 송씨 “J씨 만났다”
송씨는 또 “아직 행방이 묘연한 나머지 실종자들도 이미 J씨에게 희생됐을 것”이라고 추측하면서 “노래방에서 실종 여성들과 마지막으로 접촉했던 이는 J씨일 것”이라고 전했다.
그가 노래방도우미 실종사건을 J씨의 소행으로 보는 이유는 화성 2차 실종자 박씨가 노래방에서 마지막으로 만난 남자의 인상착의 때문이다.
그에 따르면 박씨는 실종당일 170㎝ 전후의 보통 체격, 30대 중·후반으로 보이는 남자와 대화를 나눈 뒤 함께 나갔다 소식이 끊겼다. 이 두 가지 주장을 살펴보면 정씨가 검거되자 송씨가 범인이라고 주장했던 J씨가 정씨로 화전된 듯 보인다.
송씨는 어떤 이유에서 이런 주장을 폈던 것일까.
정씨가 검거되자 경기서남부사건은 정씨 소행일 가능성이 크다는 쪽에 무게가 실렸다. 그리고 이를 뒷받침하듯 정씨가 사체를 유기했다고 자백한 장소에서 실종된 정씨로 추정되는 유골이 발견됐다.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은 이번에 발견된 유골역시 토막 사체라는 점이다. 즉, 지난해 발견된 박씨의 시신과는 수법자체가 다르다는 얘기다. 수법이 다르다면 두 사건의 범인이 다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를 송씨는 어떻게 보고 있는지 그와 직접 접촉해 말을 들어 봤다.
송씨는 “사람들은 좁은 테두리 내에서 사건이 발생했다고 모두 동일범의 소행인양 몰아가는데 이는 잘못된 일”이라고 말한 뒤 “정씨가 검거됐다 하더라도 화성연쇄살인사건은 물론 이번 경기서남부 실종사건도 J씨가 범인일 수 있다는 내 생각은 그대로다”고 말했다.
그 이유에 대해 그는 “먼저 범행수법이 다르고 박씨가 실종될 당시 목격자가 본 범인의 인상착의가 정씨와 다르기 때문이다”라며 “목격자는 경찰 조사에서 박씨 실종당일 본 용의자의 모습이 정씨와 다소 차이가 있다고 말했다. 정씨는 건장한 체격인데 반해 당시 하늘색 모자를 눌러쓴 용의자는 보통체격이라 했다”고 전했다.
송씨는 “목격자가 전하는 용의자 인상착의와 체형을 듣자 바로 J씨가 생각났다. 하지만 목격자는 J씨가 누군지 모르기 때문에 그가 본 용의자가 J씨인지 아닌지는 확인할 수 없었다”면서 “나는 J씨를 직접 만난 적이 있어 그 인상착의를 정확히 알고 있다. 그래서 목격자의 말을 듣고 대강이나마 그려볼 수 있었다. 그는 80년대 화성사건 당시 몽타주 속의 그 인물과 매우 흡사하다”고 설명했다.
J씨 아직도 수원에 살아
송씨가 J씨를 만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끈질긴 추적이 낳은 결과였다.
화성연쇄살인사건을 쫓아오던 그는 경기서남부지역에서 실종사건이 잇따라 발생했을 때 목격자가 전하는 용의자 인상착의를 듣고 J씨를 떠올렸다. 이번에도 J씨가 범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송씨는 집요하게 J씨를 조사했다. ‘추격자’가 된 그는 일선 경찰서와 현장을 누비며 조사했다. 그 결과 그는 ‘J씨가 범인’이라는 쪽으로 결론 내렸다.
송씨는 “나름대로 사건을 캐다보니 화성연쇄살인사건을 담당했던 조광식 전 형사를 알게 됐다. 그를 만나 내가 조사한 바를 이야기 했더니 나와 많은 부분에서 의견이 일치했다. J씨는 여러 면에서 이번 사건과 80년대 사건의 진범일 가능성이 매우 짙다”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J씨는 박씨가 일하는 노래방과 2007년 1월 7일 실종된 연모(20.수원시 금곡동)양의 집에서 가까운 곳에 거주하고 있다. 또 연양이 다니던 성당 부근에 J씨가 잘 가던 상점이 있다.
또 송씨는 “J씨는 처음에 나를 보자 자신은 화성연쇄살인사건 뿐 아니라 담당형사인 조 형사가 누군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그러나 내가 계속 캐묻자 자신이 당시 J라고 결국 실토했다”며 “매우 내성적이고 조용한 성격이었다. 그는 내 물음에 시종일관 ‘안 죽였다. 아무것도 모른다’는 말만 반복했다. 그는 홀어머니와 함께 수원에 살고 있으며 아직 독신이다”라고 말했다.
사건에 얽힌 기구한 운명
조 전 형사도 정씨와 80년대 화성사건은 많은 면에서 다르다는 견해다. 그 역시 이번 실종 사건에서 J씨를 떠올리고 있었다.
조 전 형사는 “이번 사건(경기남부실종) 전부를 J씨의 소행으로 단정할 순 없다. 내가 보기에 이번 연쇄실종사건은 정씨 외에 또 다른 인물이 벌인 사건이 섞인 것 같다. 그래서 사람들이 혼란스러워하는 것 같다”면서 “정씨 사건과 화성연쇄살인은 수법이나 의도 면에서 확연히 구별된다. 정씨는 살해 후 시신을 감추려는 의도가 명확하지만 화성사건은 그게 흐리다. 또 화성사건은 정씨와 달리 시신에 팬티나 스타킹을 씌우는 등 이상행동이 보였다. 이번 실종사건이 정씨와 J씨의 범행이 섞여있다면 토막과 알몸시신을 따로 구분해 수사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조 전 형사는 또 “나는 J씨가 과거 화성사건의 범인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때 자백도 했고 모든 살해 과정을 스스로 완벽하게 재현해냈다. 피해자 시신에서 범인의 체모도 나왔다”며 “J씨는 아주 특이한 운명을 타고 난 것 같다. 검거 당시에도 공범이 죽어 기적처럼 빠져나가더니 이번 사건의 정씨와 같은 성(姓)에 혈액형도 같다. 또 유치장에서 같이 갇혀있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범행을 털어놓는 것까지 똑같다”고 씁쓸해 했다.
정씨는 유치장에서 다른 수감자들에게 자신의 범행을 자백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윤지환 기자 jjh@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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