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로 예고 하자 권력층 은밀한 딜 제안”

含血噴人(함혈분인) 先汚其口(선오기구)란 말이 있다. 입 속에 피를 머금고 남에게 뿜으면 먼저 자기 입부터 더러워진다는 뜻이다.
병풍사건의 핵심인 김대업 씨의 상황을 이보다 잘 나타낸 말은 없을 듯싶다.
김씨는 이른바 ‘병풍 사건’을 촉발한 장본인이지만 오히려 역풍을 맞았다. 그리고 세상 사람들에게 역사의 흐름을 바꾼 ‘희대의 사기꾼’으로 각인돼 버렸다. 그런 그가 총선을 앞둔 시점에 또 다시 관심의 대상으로 급부상하고 있다. 정치권을 비롯한 각계에선 김씨의 입을 주목하고 있다. 최근 김씨가 스스로 병풍 때의 정치공작 내막을 밝히겠다고 나선 까닭이다. 김씨의 이런 발언이 이목을 집중시키는 또 다른 이유는 그가 과거 에 아군이었던 지금의 여당 쪽으로 총부리를 들이대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정치권에선 김씨의 속내가 무엇인지 파악하느라 분주한 눈치다. 일부에선 김씨가 복수의 칼, 즉 배신자들을 응징할 살생부를 들고 있는 게 아니냐고 수군거리고 있다.
과연 그는 메가톤급 혈풍(血風)을 일으키려는 것일까.
때가 오길 기다렸던 것일까. 아니면 다른 무엇인가가 그를 자극했던 것일까. 자신의 억울함과 병풍의 사실성에 대한 주장만 해오던 김씨가 또 다시 입속에 피를 머금었다.
김씨는 앞서 본지와의 인터뷰(717호 참고)에서 “내 입을 막으려 했던 권력들은 절대 용서 못 한다”고 복수의 혈전을 시사한 바 있다.
이와 더불어 김씨가 이메일을 통해 배신감을 언급한 것으로 미뤄 칼을 맞을 대상은 일단 병풍의 배후세력일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 피가 구체적으로 누구에게 뿌려질지는 아무도 모른다.
심지어 김씨조차 “나도 현재로선 누가 다칠지 알 수 없다”고 말할 정도다. 이는 배후세력 폭로 때 불어 닥칠 연쇄 파장을 암시하는 대목이다. 여야 인사 가릴 것 없이 줄줄이 엮일 수 있다는 말이다.
김씨의 주장 대로 병풍에 배후세력이 있다면 그의 폭로 암시는 매우 위협적일 수밖에 없다. 김씨는 병풍으로 모든 것을 잃었다. 숨기고 싶은 지난날의 전과사실이 모두 공개됐고 사기꾼으로 몰려 징역도 살았다. 사회적으로 매장되다시피 한 그이기에 더이상 두려울 게 없다. 이게 김씨가 위협적인 이유다.
인터뷰가 진행되는 동안 김씨는 “어떤 일이 있어도 이번만큼은 절대 그냥 넘어가지 않겠다”는 말을 여러 번 되풀이 했다. 다음은 그와의 일문일답이다.
이메일이 예고한 복수극
- (김대업씨가) 기자들에게 보낸 이메일로 파장이 커질 조짐이다.
▲ 계획적으로 어떤 이슈를 만들어 주목을 끌려고 이메일을 보낸 게 아니다. 당신(기자)이 이메일에 대한 인터뷰를 할 예정이라고 밝혔다면 이 자리에 나오지도 않았을 것이다. 나는 최근 기자들을 일절 만나지 않고 있다. 불필요한 말을 하게 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 그렇게 조심스럽다면 애초 이메일을 보내지 말았어야 하는 것 아닌가.
▲ 이메일을 보낸 자세한 이유는 나중에 밝힐 문제다. 하지만 간략하게 말하라면 노무현 정부에 대한 나의 분노를 이 시점에서 알릴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들이 자신들의 잘못에 대해 깨달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 어떤 잘못을 말하는가. (김대업씨를) 특별사면대상에서 제외시킨 것을 말하나.
▲ 그런 건 기대하지도 않았다. 현 정권의 실세들 입장에선 지금 나에게 면죄부를 줄 리가 없다. 나는 그 사실을 너무 잘 안다. 사람들은 병풍사건에 대한 자세한 내막을 모르므로 내가 특사에서 제외됐다는 이유로 앙갚음을 하려한다고 생각하지만 그건 본질이 아니다. 이 자리에서 그 점은 분명히 하고 싶다.
“나는 정치공작 세력의 히트 맨”
- 밝히고자하는 병풍사건 내막은 무엇인가.
▲ 병풍사건은 내가 아니어도 원래 터질 일이었다. 대선이 시작되기 전 폭약에 뇌관이 장착돼 있었다. 나는 그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그것과는 무관하게 소신에 따라 병풍을 폭로했다.
- 그런데 이메일에선 배신감이란 말을 썼다. 독자적으로 움직인 것이라면 배신감을 느낄 이유가 없을 것 같은데.
▲ 내가 병풍을 터뜨리자 많은 정치권 인사들이 접촉해왔다. 그 중엔 나를 돕겠다는 세력들도 있었다. 돕겠다는데 누가 마다하겠나. 그들은 내가 병풍을 증명하는 과정에 직·간접으로 개입했다. 난 그게 나를 도우려는 것인 줄 알았다. 그런데 알고 보니 나를 이용한 것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배신감을 느낀다는 것이지 애초 정치적으로 작당한 세력이 있어 그들에게 배신감을 느낀다는 뜻이 아니다.
- 정치공작을 꾀한 병풍의 배후세력이란.
▲ 병풍사건 때 나에게 접촉해온 이들과 협력할 땐 몰랐다. 시간이 지나면서 병풍을 정치적으로 이용한 배후가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알고 보니 그들은 나를 히트 맨으로 활용했던 것이다. 지금 나에겐 그들(배후 실세)에 관한 모든 게 있다. 정치공작을 꾸민 이들이 누구인지, 또 그들은 어떻게 사건을 조작했는지 이 모든 것을 증명할 근거가 있다는 말이다. 이젠 예전처럼 허무하게 당하지 않겠다. 당한 만큼 그대로 되돌려줄 것이다.
배후세력 비겁한 딜 제안
- 그것을 왜 일찍 공개하지 않고 미루고 있나.
▲ 모든 일엔 때가 있다. 국민들이 ‘김대업은 사기꾼’이라 말하고 있는 상황에서 나 혼자 떠들어봤자 변죽만 울리는 꼴이다. 정권이 바뀌면 저들(현 정권의 실세)의 과오와 실체가 명명백백하게 들어난다. 그리고 비열한 정치공작의 실상도 드러날 것이라 본다. 세상이 진실을 받아들일 수 있을 때까지 기다리고 있다. 국민들의 눈과 귀가 가려져 있는데, 내가 무슨 말을 하겠나.
- 정권이 바뀌면 입을 열겠다는 뜻으로 이해된다. 그게 언제쯤인가.
▲ 그건 노코멘트 하겠다. 내 뜻은 확고하다는 것만 말하겠다.
- 정치공작 세력이 있고, 그들이 병풍의 배후라면 이메일 관련내용이 언론에 보도된 직후 떨고 있는 인사들이 있을 것 같다.
▲ 당연히 있다. 그들 중 일부는 기사를 보고 여러 경로를 통해 나에게 접촉을 시도해왔다. 하지만 그들과 일절 접촉하지 않았다.
- ‘은밀한 거래’ 제안도 있었나.
▲ (이 대목에서 김씨는 잠시 머뭇거렸다.) 그렇다. 하지만 별로 밝히고 싶지 않은 부분이다. 또 오해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휴대전화번호를 바꿨다. 그런데 이메일기사가 나가자 어떻게 알았는지 몇몇 인사가 나에게 전화를 걸어왔다. 나를 이리저리 떠보더니 내 의지가 확고하다는 걸 알고 은밀히 딜을 제안했다. 구체적인 내용은 밝힐 수 없다. 나는 일절 그 제안에 응하지 않았다. 지금까지도 비겁하게 살지 않았다. 그들이 또 예전처럼 음모를 꾸밀 수 있겠지만 이젠 쉽게 당하지 않을 것이다.
#감시 두려워 기자와 약속 시간·장소도 여러번 바꿔
김대업씨는 자신이 특정 정치세력으로부터 감시당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김씨는 “지금 쓰는 휴대폰이 두 개다. 하나는 업무용으로 쓰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개인적으로 쓰는 것이다. 이렇게 전화를 두 개나 들고 다니는 이유는 감시 때문이다. 업무용 전화는 거의 쓰지 않고 가족 등 극소수만 알고 있는 개인전화를 사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사실 감시 때문에 누구를 쉽게 만날 수가 없다. 감시당한다는 게 습관처럼 받아들여져 스스로 조심하고 있다. 하지만 나를 감시하는 이들이 누구 지시를 받고 움직이는지 다 알아냈다.
이것 역시 확실하게 밝힐 수 있다”고 말했다.
이 때문인지 김씨는 인터뷰를 위해 기자와 만날 때도 약속시간과 장소를 여러 번 바꿨다.
김씨는 이어 “예전과 달리 이젠 함부로 나서지 않는다”면서 “이젠 뭘 하든지 주변사람들이 다치지 않는 쪽으로 한다. 그게 제일 조심스럽다.
병풍사건 때도 나야 어찌되든 상관없다고 생각했지만 뜻하지 않게 주변 사람들이 너무 힘들었다”고 말했다.
윤지환 기자 jjh@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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