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태성범죄 표적이냐 원한에 의한 납치냐
변태성범죄 표적이냐 원한에 의한 납치냐
  • 이수영 기자
  • 입력 2008-01-17 10:59
  • 승인 2008.01.17 10:59
  • 호수 716
  • 27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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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양 어린이 실종사건 4대 시나리오

하늘로 솟았나 땅으로 꺼졌나. 혜진이와 예슬이가 사라진지 한 달이 지났다. 지난 크리스마스날 집을 나서 감쪽같이 사라진 경기도 안양 M초등학교 이혜진(11)·우예슬(9)양. 실종신고가 접수된 지 닷 세 만인 지난달 31일 안양경찰서가 공개수사에 나섰다. 하지만 두 소녀의 행방은 오리무중이다. 매일 500~600명의 경찰병력이 동원돼 수색에 나서고 헬기를 이용한 항공수색은 물론 경찰견까지 풀었지만 허사다. 더구나 충남 태안사고와 이천 냉동 창고화재 등 굵직한 사건들에 묻혀 언론의 관심도 시들해졌다. 일각에선 영구미제 사건으로 빠질 가능성도 있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그렇다면 아이들은 어디로 갔을까. 2007년 12월 25일 오후 5시로 시계 바늘을 되돌려 드러난 4대 미스터리를 입체 추적한다.

2007년 12월 25일 오후 3시 30분께 경기도 안양시 안양8동 우양파크빌 놀이터. 또래 아이들과 헤어진 혜진이와 예슬이는 4시 10분쯤 안양문예회관 야외공연장을 지나갔다(CCTV 영상자료 확인).

그리고 두 아이는 5시께 집에서 가까운 안양8동 피자가게 근처를 마지막으로 자취를 감췄다.


하나, 단순 가출 가능성

지역주민들에 따르면 아이들 흔적이 공식 확인된 안양문예회관은 주민들 ‘만남의 장소’였다. 문예회관 앞에서 약속을 하고 상대를 만나 다른 곳으로 가는 중간경로 가운데 하나라는 것.

아이들이 사라진 날은 크리스마스 였다. 특별한 날 누군가를 만나 즐기기에 충분한 시간이다.

혜진이와 예슬이가 문예회관 앞에서 누군가를 만났고, 그와 밤을 보냈을 수도 있다. 놀이상대는 나이로 볼 때 10대의 남학생일 가능성이 크다. 두 아이가 초등학교 3학년, 1학년의 어린이로 부모의 추궁이 두려워 제3의 장소에 숨어있을 것이란 기대를 해볼 수 있다.

하지만 10대 남학생이 두 아이가 머물 방과 식사를 제공하긴 어렵다. 또 가출을 결심했다면 크리스마스이브 저녁이 오히려 더 분위기에 맞는다. 더구나 혜진이와 예슬이가 오후 5시까지 집근처에서 목격돼 단순가출 가능성의 허점을 찌른다.


둘, 성폭행 목적 납치·살해

어린 소녀를 상대로 한 변태성욕자의 범죄가능성도 수사팀 안에서 상당히 높게 거론되고 있다. 두 아이의 이동경로를 살펴보면 놀이터를 출발해 집으로 향하고 있었다(그래픽 참조). 혜진이와 예슬이가 마지막으로 목격된 오후 5시쯤 아이들은 배가 고팠을 것이다. 해가 지고 추워져 보통 아이들이라면 귀가를 서둘렀을 시간이다.

하지만 혜진이와 예슬이는 끝내 집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2004년 부천 초등학생 살해사건처럼 용의자가 두 아이를 유인, 추행하고 살해·유기했을 가능성이 커지는 대목이다.

아이들이 사라진 곳 가까이 남학교가 있고 평소 불량한 학생들이 자주 보였다는 지역주민 귀띔에 따라 우발적 범행일 수도 있다. 또 일반 유괴가 돈을 목적으로 하는 만큼 몸값 요구전화가 걸려오지 않았다는 사실이 이를 뒷받침한다.

다만 이대로라면 두 아이의 시신이 가까운 곳에서 나왔어야 한다. 부천 초등생 살해사건의 경우 실종 16일 만에 목이 졸려 숨진 사체가 발견됐다. 또 오가는 사람들이 많은 주택가에서 아이들에게 접근했다면 목격자가 반드시 있었을 것이다. 특히 언론에 사건이 공개된 뒤에도 제보가 없다는 게 석연찮다.


셋, 단순 조난

세 번째는 아이들이 인근 수리산 일대에서 길을 잃었거나 맨홀, 물탱크 등에 실수로 빠져 조난당했을 가능성이다. 수리산은 해발 488m로 두 아이가 가끔 찾는 놀이터였다.

수사팀은 아이들이 해가 진 산 속에서 길을 잃었을 것으로 보고 경찰병력과 수색견을 동원, 산을 샅샅이 뒤졌다. 동시에 지역주민들도 나서 길가 하수구와 옥상물탱크도 이 잡듯 수색했다. 한 아이가 수렁에 빠진 것을 다른 아이가 구하려다 함께 빠져 갇혔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물론 대대적인 수색잡업에도 혜진이와 예슬이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무엇보다 수리산은 산세가 험하지 않아 지역주민들의 산책로 역할을 했다. 또 두 아이들이 사라진 시간은 해가 지기 전이었다. 때문에 수리산 일대는 등산객과 주민들이 많이 오가고 있었고 아이들이 산으로 갔다면 분명 목격자가 있었을 것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단순조난 가능성은 조금씩 줄어들고 있다.


넷, 원한·주변인에 의한 납치

마지막으로 원한이나 이웃·친인척 등 주변사람들에 따른 납치가능성을 들 수 있다. 수사팀관계자는 “아이들 부모는 평범한 소시민으로 딱히 원한을 살만한 사람이 아니다. 따라서 원한에 얽힌 납치라고 보긴 힘들다”고 밝혔다.

하지만 아직까지 깊이 있는 탐문수사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점에서 장담하기엔 이르다. 특히 아이들이 크리스마스란 특별한 날에 맞춰 사라졌고 귀가시간에 맞춰 집 근처에서 종적을 감춘 것은 단순 납치사건과는 성격이 다르다.

용의자가 차를 타고 기다리다 집으로 돌아가는 혜진이와 예슬이를 태웠을 수도 있다. 목격자가 없는 것도 아이들이 차로 이동했을 경우 납득이 된다.

그러나 혜진이와 예슬이 어느 한쪽에 원한이 있다면 굳이 두 아이를 다 데려갈 필요가 없다. 두 명은 데리고 있기도 부담스럽고, 죽였다 해도 뒤처리가 곤란하다. 때문에 앵벌이 등 구걸을 목적으로 한 단순납치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한편 안양경찰서 전담수사팀은 “아무 단서도 없다. 특정가능성에 무게를 싣기보다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수사에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지난 8일 경찰청 산하 전국 일선 경찰서에서 수색을 벌인 것과 더불어 집중수색범위를 실종지점 기준 4km까지 넓히는 등 아이들을 찾기 위한 노력은 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수영 기자 severo@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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