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년 앙숙’ 유력 지방지, 땅 놓고 의혹 공방

두 유력 지방 일간신문의 다툼이 과열 양상으로 치닫고 있다. 사건의 당사자는 강원도의 여론을 아우르고 있는 강원일보와 강원도민일보. 1992년부터 ‘15년 앙숙’으로 맞서온 두 언론사는 의혹을 앞세워 감정싸움에 한창이다. 이들 신문사는 ‘춘천시와 강원일보의 땅 맞교환 문제’를 놓고 다퉈왔다.
강원일보는 이번 사건에 대해 “강원도민이 정당하게 추진되는 업무를 방해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강원도민일보는 견해가 다르다. 두 임야의 땅값 차이를 들어 춘천시가 특혜를 줬다며 맹공을 퍼부은 것. 강원일보의 한 관계자는 “강원도민이 의도적으로 ‘강원일보 죽이기’에 나섰다”며 분통을 터트렸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성공적인 지방지 신화를 이룩한 두 언론사의 ‘신문전쟁’, 그 내막을 집중 취재했다.
“특혜 의혹”이 싸움 불러
지난 12월 초 강원도민일보는 ‘춘천시와 강원일보의 임야 맞교환 추진’에 대해 의혹을 제기했다. 신문은 맞교환될 임야의 땅값 차이를 이유로 ‘유력 지방지인 K일보가 춘천시를 압박한 것 아니냐’며 포문을 열었다. 이 문제와 관련해 쏟아낸 기사만 10건. 3일부터 사흘간 1면 머리기사로 다뤘다.
강원도민일보가 ‘특혜 당사자’로 지목한 강원일보는 사옥이전을 위해 4~5년 전부터 춘천시와 임야교환을 조율해왔다. 교환예정부지는 강원일보 소유의 임야 15만5천3백72㎡(4만7천평)와 춘천시가 가진 땅 3천6백13㎡(1천93평). 공시지가는 강원일보 땅이 1억2천만원, 춘천시 소유 땅이 1억5천만원으로 3천만원 정도의 차액이 생긴다.
하지만 강원도민일보가 제기한 의혹의 핵심은 두 땅의 실거래가 차이가 엄청난데 있다. 신문에 따르면 춘천시가 내놓은 땅의 실거래가는 공시지가의 4~7배를 웃도는 ㎡당 18만~30만원. 여기에 도심내부 순환도로와 주거단지가 들어설 예정으로 땅값은 더 오른다는 것이다. 이렇게 따지면 실제 시세차액은 최저 2억8천만원에서 최고 7억1천만원이라고 신문은 주장했다.
이 같은 맹공에 강원일보쪽도 가만있지 않겠다는 반응이다. 강원일보는 첫 보도가 나간 1주일 뒤 공식 해명했다.
강원일보는 지난 12월 10일 해명기사를 통해 진화에 나섰다. 신문은 “춘천시와 관련 법령에 따라 땅 교환을 추진했다. 2004년 교환이 미뤄지면서 도로가 생겼고 해당지역 땅값이 변해 다시 심의하는 것”이라며 어떤 특혜도 없었음을 강조했다.
강원일보, 법따라 추진됐다
강원일보의 한 관계자는 “모두 현행법에 따라 엄격하게 추진됐다. 땅 교환과정에서 생긴 차액은 투명하게 정산할 것”이라며 강원도민일보 보도를 일축했다. 그는 또 “사옥을 옮기려는 회사와 춘천시가 가진 땅을 효과적으로 관리하려는 정책이 합리적으로 맞아떨어진 것 뿐이다”고 말했다. 또 강원일보의 땅 근처에 서울~춘천고속도로 IC(나들목)가 생겨 투자가치가 높아지
고 있다고 주장했다.
처음 의혹을 보도한 강원도민일보에 대해선 ‘가만있지 않겠다’며 벼르고 있다. “강원도민일보는 의도적으로 ‘강원일보 죽이기’를 하고 있다. 그쪽이 말한 실거래가는 공식적인 땅 가치도 아니다. 회사와 소속기자 모두 반론권조차 없는 일방적 보도에 화가 난 상태”라며 최근 언론중재위에 정정·반론보도를 청구했다.
강원도민일보 “할 테면 해봐”
반면 강원도민일보는 신경 쓰지 않는 분위기다. 지난 12월 5일 춘천시의회의 심의보류 결정으로 두 땅의 맞교환은 물 건너간 상태기 때문이다. 시의회 내무위원회는 지난 12월 5일 춘천시가 요청한 두 땅의 맞교환을 심의보류하기로 결정했다.
한 관계자는 “3년 전 똑같은 사안이 추진되다 폐기됐다. 도민들이 잊을 만하니까 바뀐 내용도 없이 슬쩍 처리하는 건 무슨 배짱이냐”고 받아쳤다. 또 “강원일보의 신축사옥 터 근처에 이미 도로가 났다. 값이 얼마나 올랐을지 짐작되지 않느냐”며 강원도민일보 보도는 정당하다고 밝혔다.
덧붙여 “강원일보가 2000년 7월 임야를 사들이자마자 그해 9월 춘천시와 맞교환을 추진하기 시작했다”며 누가 봐도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라고 밝혔다.
‘15년 악연’ 결정체
사실 두 신문의 다툼은 치열한 라이벌 의식에서 비롯됐다는 의견이 많다. 작은 언론사들이 난립하는 다른 지역과 달리 강원도는 오랫동안 두 신문사가 지역언론시장을 차지했다.
1945년 창간해 47년 동안 강원도의 유일한 일간신문으로 자리매김해온 강원일보. 하지만 1992년 강원도민일보가 생기며 독식해온 시장 일부를 빼앗겼다. 강원도민일보는 내분으로 강원일보를 나온 50여 직원들이 독립해 세운 신문사. 이들은 강원일보에서의 경험과 인맥을 바탕으로 창간 7년 만에 흑자를 내며 빠르게 자리 잡았다.
이렇게 ‘한솥밥 식구’에서 ‘라이벌’로 바뀐 두 신문은 과열경쟁 양상을 보이기도 했다. 2000년엔 원주시에 보급하는 계도지 비율을 놓고 두 신문사가 치열한 싸움을 벌이기도 했다. 결과 원주시는 아예 계도지 보급 중단을 발표했다.
이번 사건 역시 두 신문의 해묵은 악연이 만든 ‘혈전’이다. 인터넷 포털과 중앙일간지와의 제휴로 활로를 개척한 두 신문사가 끝까지 ‘선의의 경쟁자’로 남을 수 있을지 주목된다.
이수영 기자 severo@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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