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년 함께 한 애증이 참극 불렀다”

2006-11-08     정은혜 
‘바람난 아내’ 인천발(發) 토막살해사건 전모


최근 한 40대 남성이 아내를 살해하고 사체를 토막 내 유기하는 끔찍한 사건이 발생했다. 사건의 장본인은 인테리어 업체 직원 김모(47)씨. 김씨는 아내와 이혼문제로 말다툼을 벌이다 목을 졸라 살해하고 시신을 토막 내 유기한 혐의(살인 등)로 지난달 27일 경찰에 구속됐다.
경찰에 따르면, 김씨는 다른 남자가 생긴 아내 박모(44)씨가 이혼을 요구하자 이에 격분해 그만 돌이킬 수 없는 일을 저질렀다. 사체를 부위별로 토막 내 강가와 바다에 갖다 버리는가 하면, 아내의 머리만 따로 보일러실에 보관하고 있는 등 엽기적인 행동도 서슴지 않았던 것. 하지만 김씨는 “아내를 너무 사랑해서 죽였다”는 등 자신의 범행에 대해 납득하기 어려운 진술을 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인생의 반 이상을 함께 살아왔다는 이들 부부에게 대체 어떤 우여곡절이 있었던 걸까. 한 남자의 ‘애증’이 결국 엽기적인 ‘살인’으로 막을 내리게 된 이 충격적인 사건의 전모를 취재했다.

한 동네서 눈 맞아 결혼

김씨와 박씨의 ‘악연’은 지난 25년여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전북 김제가 고향인 이들은 한 동네에서 살면서 서로에게 관심을 갖고 있던 차, 1982년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면서 급속도로 가까워졌다. ‘필’이 꽂힌 이들은 금세 연인사이로 발전했고, 급기야 결혼까지 이르게 된다. 가정을 이루기 위한 아무런 경제적 기반도 없는 상태였지만, 이들에게는 거칠 것이 없었다.
경찰에 따르면, 어린 나이에 결혼했던 김씨는 ‘사랑’ 하나만으로 살 수 있을 것 같았다고 한다. 당시 김씨의 나이 22세. 박씨는 이제 막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나이인 19세였다.

맞벌이 하면서 부부갈등 심화
하지만 결혼은 ‘현실’이었다. 김씨는 아르바이트 및 공사판 등에서 일했지만, 변변치 않은 월급으로 두 사람이 생활하기에는 빠듯했다. 게다가 결혼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태어난 아이도 이들에겐 부담으로 다가왔다. 경제적 여건이 갖춰지지 않은 현실을 답답해 한 박씨는 결국 맞벌이를 결심했다. 박씨는 조그마한 여성의류전문매장에서 일했다. 이후 생활은 조금 넉넉해졌지만, 서로 너무 일만 하다 보니 정작 부부간의 시간을 가질 수 없었다. 이때부터 이들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틈이 생기기 시작했다.
실제로 김씨는 새벽 6시에 출근해 저녁 7~8시에 퇴근했고, 박씨는 아침 9시~밤 10시까지 근무한 후 새벽 3~4시에 귀가해 두 사람이 마주칠 기회가 거의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에 따르면, 박씨는 퇴근 후 거의 나이트로 직행했다고 한다. 워낙 자유분방하고 노는 걸 좋아하는 성격 탓이었다. 하지만 진짜 이유는 따로 있었다. 일밖에 모르는 남편에 질려 집에 들어가기 싫어했던 것. 경찰은 “박씨는 계속되는 부부간의 권태기 생활에 지쳐 나이트 등에서 만난 남성들과 어울리며 외로움을 달래고 고민을 나누기도 했던 것으로 밝혀졌다”고 전했다. 이렇게 98년부터 박씨의 ‘바람기’는 발동이 걸려 지금까지 불륜행각으로 김씨에게 걸린 남성만 무려 4명이나 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내연남 두둔이 살해 발단
그러던 지난 9월 14일, 박씨가 가출을 하면서 ‘비극’은 시작됐다. 박씨는 나이트에서 만난 편모(37)씨와 여행을 가느라 김씨에게 아무런 말도 없이 종적을 감춘 터였다. 이후, 보름 만에 집에 돌아온 박씨의 입에서 나온 첫마디는 이혼 요구. 김씨는 “또 왜 이러느냐”며 “내가 뭘 잘못했느냐, 이혼만은 절대 안 된다”며 아내를 설득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심지어 김씨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아내가 사귀고 있다는 편씨에게까지 찾아가 ‘아내를 돌려 달라’며 사정하기도 했다고. 하지만 두 사람의 관계는 생각보다 심각하고 복잡했다.
끓어오르는 분노와 배신감에 김씨는 결국 돌이킬 수 없는 범행을 저지르기에 이른다. 이때가 지난달 2일 오전 10시께. 밤새 실랑이를 벌이다 우발적 범행을 저지르게 된 순간이다.
경찰에 따르면, 김씨는 “아내가 ‘그쪽(편씨 부인)은 깨끗이 이혼해 주는데 당신은 왜 이혼을 안 해주느냐’며 나와 편씨를 비교하는가 하면, ‘착한 사람이다. 그런 사람 없다’는 등 내 앞에서 편씨를 두둔해 결국 살해까지 하게 됐다”고 말했다.
김씨는 먼저 박씨의 가슴을 친 뒤, 양손으로 목을 심하게 눌러 질식사 시켰다. 이후 사체를 화장실로 끌고 가 부엌에 있는 식칼과 자신이 작업용 공구로 사용하는 전기톱으로 토막을 냈다. 정신이 없는 와중에도 그는 범행을 은폐하기 위해 사체를 부분 절단하고, 각각 유기할 장소를 고심하는 등 나름대로의 치밀함도 잊지 않았다.

범행 은폐하려 사체 토막 내
우선, 손목과 발목은 검은 비밀봉지로 싼 뒤 가로 40cm, 세로 30cm 크기의 가방에 넣어 김포대교 밑 강물에 버렸다. 파란색 이불보로 칭칭 감은 몸체는 강화대교 밑 바다에 던졌다. 머리는 지름 20cm 페인트 통에 넣어 검은 봉지로 감싼 뒤 뚜껑을 덮어 서울 은평구에 있는 자신의 인테리어 가게 간이보일러실에 유기했다. 이 과정에서 김씨는 아내의 머리가 담긴 페인트 통이 발각될 것을 우려, 그 위에 똑같은 페인트 통을 여러 개 얹고, 주변에 화분을 깔아놓는가 하면, 심지어 모래까지 높게 쌓아 놓는 등 주도면밀하게 은폐했다. 또, 김씨는 바로 옆에 아내의 사체 일부를 두고 아무렇지 않게 일하고, 잠을 자며, 사체를 확인하는 등 극도의 ‘대담한’ 행동도 서슴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져 경찰의 혀를 내두르게 했다.

여행객 신고로 ‘덜미’
하지만 김씨의 은폐극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지난달 11일 인천시 강화군 길상면 선두리 포구 방파제에서 지나가던 여행객에 의해 박씨의 오른쪽 손목이 발견된 것이다. 범행 9일만이었다.
인천해양경찰서 김대한 경사는 “신원확인을 위해 하루 몇 백명씩 지문 대조작업을 벌인 결과, 2천 명 중에서 32명의 용의자로 압축이 됐다”며 “그 후 최종적으로 드러난 살인 용의자가 바로 남편 김씨였다”고 밝혔다. 김경사는 “박씨가 가출하고 5일 뒤인 9월 19일 서울 서대문경찰서에 아내 가출신고를 한 것과 지난달 2일 김씨가 짐을 들고 옮기는 모습이 주차장 폐쇄 회로 화면에 잡힌 것에 착안, 빠른 시일 내 김씨를 검거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김씨의 범행이 밝혀지자 아들(24)은 상당한 충격을 받은 듯한 모습이다. 아버지의 직장에서 소일거리를 돕고 있는 아들은 “아버지는 술, 담배 전혀 안하시고 진짜 일만 열심히 하신 분”이라면서 “가진 것은 없어도 화목했는데, 서로 바쁘고 피곤하다보니 가족 간의 대화가 없어, 어머니가 많이 외로우셨던 것 같다”며 눈물을 흘렸던 것으로 전해졌다.
검거 당시, 김씨는 자신의 잔악무도한 소행에 후회하면서도 나름의 항변을 늘어놓았다고 한다. 김씨는 “노후에 아내 고생 안 시키려고 일에만 몰두했는데 아내가 배신할 줄은 몰랐다”면서 “하지만 지금도 아내를 너무 사랑한다. 사랑해서 죽일 수밖에 없었다”며 고개를 떨궜다고.
한 동네서 만나 결혼에 골인해 누구보다 행복했던 김씨 부부. 그러나 부부 권태기와 대화단절이 배반과 살인으로 이어지면서 결국 비극으로 끝나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