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조폭들 강남에 집결한 내막
2006-10-26 김대현
지난 17일 기자가 강남 아미가호텔(현 임페리얼 팰리스) 정문 앞에 도착한 시간은 4시 30분경.
이날 강남 일대는 아미가호텔로 몰린 검정색 세단 행렬로 인해 극심한 정체가 빚어졌다. 서울지역을 비롯, 전국에서 상경한 수백명의 조폭 조직원들과 보스급 ‘오야봉’들이 이곳을 찾은 탓이다. 평상시와 달리 이날 호텔 입구에선 “안녕하십니까. 형님!”이라는 인사말이 계속해서 반복되는 ‘진풍경’이 연출됐다.
강남 중심에 자리잡은 아미가호텔로 조폭들이 대거 집결한 까닭은 무엇일까. 시민들은 위압적인 분위기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한동안 아미가호텔을 주시하면서 발걸음을 옮겨야 했다.
이날 오후 5시부터 아미가호텔 7층 예식홀에서 부산 칠성파 보스 이강환씨의 딸 이 모씨의 결혼식이 예정돼 있었다.
강남 일대 심각한 교통난 유발
서울 D지역 보스격인 J회장은 “이강환씨 딸이 시집간다는 얘기는 들었지만, 내가 참석할 자리는 아니었다”면서 “통상 그런 행사에는 지역을 떠나 축하해 주는 게 우리 바닥 상례”라고 말했다.
그는 또, “이강환씨는 현역에서 물러났다. 지금 칠성파는 그 밑에 있던 친구가 조직을 계승받아 운영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아미가호텔 예식 홀에는 1천명이 넘는 하객들로 발 디딜 틈조차 찾기가 어려웠다. 결혼식 참석차 방문한 조폭 관계자들이 호텔 입구부터 삼삼오오 모여 있는 바람에 호텔 업무가 정상적으로 운영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로비와 커피숍은 조직원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이미 ‘점령’한 뒤였다.
이틀 뒤, 아미가호텔 한 관계자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결혼식이 있던 17일은 호텔 업무가 마비될 정도로 인산인해였다”며 “잘 아시겠지만, 그날 분위기도 심상치 않았다”고 말했다.
이강환씨는 이날 결혼식을 위해 부산에서 2대의 관광버스까지 ‘렌트’해 상경했다.
지난 9월 부산에서 발생한 칠성파 조직원 습격사건에서 보여지듯, 지역내 조폭들의 보이지 않는 ‘전쟁’이 진행 중이다.
당시 부산 영락공원 장례식장에선 반칠성파로 알려진 ‘20세기파’, ‘영도파’, ‘유태파’ 등의 조직원 50여명이 칠성파 조직원들을 집단 폭행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조직간 복수극이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이를 두고 부산지역에선 “범칠성파와 반칠성파간 전쟁이 진행되고 있다”는 소문이 무성하다. 범칠성파에는 ‘칠성파’, ‘동방파’, ‘사상파’ 등이 포함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결혼식장에서 유난히 눈에 띄는 장면 중 하나는 ‘사진’을 거의 찍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강환씨 측에서 고용한 사진사만이 결혼 당사자의 사진촬영을 했다. 신부측 친구들을 제외하면 축하 하객 중 사진을 촬영한 사람은 없었다.
검찰과 경찰 등에서 조폭 보스와 관련된 공개 행사에 참석해 당시 주요 참석자들을 촬영하곤 했기 때문에 이를 염두에 둔 조치로 풀이된다. 예식장 주변에 병풍처럼 둘러서있는 조직원들의 ‘위협적’ 분위기도 한 몫 했다. 그나마 이날 주례를 맡은 목사님의 ‘재담’과 찬송가 소리가 분위기를 다소 누그러트렸다.
결혼식장에는 조폭 보스들은 물론, 나이트업계, 카지노업계, 물류업계, 연예계 인사들이 대거 참석했다. 부산출신 중견 탤런트의 모습도 쉽게 목격될 정도였다.
이날 기자와 동행한 B 사장은 “그래도 (보스) 딸이 결혼한다는데 가서 축하도 하고 또, 그동안 못 보던 사람들도 만나고 하는 거지…”라고 말했다. B 사장은 테이블에 앉자마자, 줄곧 후배들의 인사를 받느라 분주했다.
이강환씨는 일본 야쿠자와도 특별한 인연을 맺고 있는 칠성파 보스로 알려져 있다. ‘서방파’, ‘OB파’, ‘양은이파’와 함께 조폭의 ‘전국구 주먹시대’를 연 부산지역 대부로 통한다.
특히, 칠성파는 지금까지 단 한 차례도 무너진 적이 없는 조직으로 현재 가장 규모가 큰 조폭 중 하나로 손꼽힌다. 이씨는 현역에서 사실상 은퇴했지만, 경찰에선 그 영향력이 아직까지 상당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건강 악화로 수술까지 받은 이씨의 뒤를 이어, 현재는 권 모씨가 보스를 맡고 있다.
칠성파 보스직 권모씨가 승계
이씨는 아들과 딸을 두고 있는데, 이날은 30대 초반의 대학강사인 딸을 시집보내는 날이었다. 그녀는 대전 소재 H대학에서 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조폭 보스의 딸과 결혼한 상대는 예상과 달리, 평범한 회사원이었다. 신랑 천 모씨는 재계서열 10위에 드는 H그룹에 근무하고 있다. 두 사람은 얼마 전 ‘중매’로 만나 결혼에 ‘골인’하게 됐다는 게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일각에선 “가문의 영광이 재연되는 것 아니냐”면서 높은 관심을 보였지만, 영화와 현실은 달랐다.
경찰 강력계 소속 관계자는 “그날 결혼식은 전국에서 명성을 날리는 현역 보스들이 참석하지 않았다”며 “이강환씨가 은퇴한 이후라서 소식을 듣고 찾아온 사람들이 많았던 것 같다”고 설명했다.
# 보수 논객 3인방의 ‘작업실’
주목받는 강남 삼성제일빌딩의 비밀
지난 17일 오후 3시경. 삼성제일빌딩 18층 복도에는 사복 경찰관의 모습만 보일뿐, 인적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조용했다. 이곳은 우리 사회 대표적 보수논객 3인방이 모여 있는 건물이다. 국민행동본부(서정갑 본부장)가 가장 먼저 사무실을 ‘오픈’했고, 황장엽 전 조선노동당 비서, ‘조갑제닷컴’ 조갑제 대표 등 보수론자들이 잇따라 둥지를 마련했다. 황씨의 경우, 사무실을 옮기는 과정에서 국민행동본부의 도움을 받아 이곳에 온 것으로 알려졌다. 가장 연장자인 황씨와 ‘막내격인’ 조 대표까지 이곳에서 보수 논객들과 잦은 회동을 갖고 있다. 기자는 황씨 경호팀의 눈초리를 피해가며, 우익세력의 중심으로 자리잡은 ‘18층의 비밀’을 취재했다.
최근 보수우익의 목소리가 커지면서 강남구 역삼동 소재 삼성제일빌딩 18층이 주목받고 있다. 이곳은 보수 논객 3인방으로 알려진 서정갑, 조갑제, 황장엽씨 등이 개인 사무실을 운영하고 있는 곳이다.
서정갑 본부장이 이끌고 있는 국민행동본부는 지난 2000년 가장 먼저 이곳에 자리를 잡았다. 국민행동본부는 보수단체들의 장외집회에 주도적으로 참여하고 있는 단체로서 삼성제일빌딩 18층 ‘대한민국 예비역 대령연합회’ 사무실과 병행해서 사용하고 있다.
국민행동본부는 지난 13일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북한 핵실험 규탄과 노무현 정권 퇴진을 위한 집회’를 열고 “북한의 핵무장을 지원하는 금강산관광과 개성공단 사업을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이날 집회에는 5,000여명의 시민들이 동참했으며, 북핵 반대 천만인 서명운동을 시작하는 계기였다.
서 본부장은 이곳에서 직접 광고 시안을 작성하기도 한다. 지난 18일자 문화일보 31면 광고에선 “대한민국도 주권과 명예를 지키기 위해서 핵무장을 해야 한다”라는 내용을 담은 5단 통광고를 실어 논란이 된 바 있다.
서 본부장은 “서명운동 등 진행되고 있는 사안이 많은데다, 내일자로 일간지에 넣을 광고 시안도 작성해야 하기 때문에 정신이 없다”면서 분주하게 움직였다.
황장엽씨 개인 사무실이 이곳으로 이전해온 것은 2년 전의 일이다. 과거 사무실은 임대인과의 마찰, 신변 안전에 대한 우려 등의 이유로 문을 닫게 됐다. 그 직후 서 본부장 등 대령연합회측이 나서 삼성제일빌딩 사무실 마련을 도와줬다는 후문이다.
특히, 황씨의 신변안전에 있어서 삼성제일빌딩이 용이하다는 평가다.
대령연합회 김중광 위원은 “황장엽씨는 2년 전에 사무실을 이곳으로 옮겨왔다”면서 “아무래도 우리 사무실과 함께 있기 때문에 신변 안전에 유리한 면이 있다”고 말했다.
삼성제일빌딩은 출입구에 감시카메라가 설치돼 있는 등 다른 건물에 비해 보안체계가 잘 갖추어져 있다.
황씨는 현재 서울지방경찰청 보안과 소속 직원들의 경호를 받고 있다. 지난 2004년부터 살해협박 등의 위협이 끊이질 않았기 때문에 경호팀의 경계 심리는 매우 강하다.
황씨와 만나기 위해 사무실을 찾았지만, 오후 일정으로 자리를 비운 터였다. 황씨 사무실은 국민행동본부 맞은 편 복도에 위치하고 있다.
경호팀 관계자는 “보안과 관련된 것은 일체 언급할 수 없다”면서 “사전 연락 없이 방문하기보다 서울청에 절차를 밟아 접촉해 달라”고 당부했다.
사실상 언론이 황씨를 접촉하기 어려운 상황이지만, 외신과의 인터뷰는 꾸준하게 이어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황씨와 가까운 한 탈북자는 “외신과 인터뷰는 계속하고 있지만, 국내 언론은 기피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전했다.
황씨는 서 본부장과 조갑제 대표와 자주 접촉하고 있다. 우익 세력의 활동 문제 등과 관련해서 보수 논객들의 회동도 주로 ‘18층’에서 열린다.
삼성제일빌딩 18층에 가장 늦게 합류한 논객은 조 대표다. 월간조선 대표에서 물러난 조 대표는 올해 초부터 이곳에서 보수적 색채가 강한 인터넷 언론 ‘조갑제닷컴’을 운영하고 있다. 이날 사무실에는 일부 기자들만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국민행동본부 바로 옆에 위치한 조갑제닷컴은 양측이 공동으로 사용하고 있을 정도로 왕래가 잦다.
대표적인 보수 논객 3인방이 삼성제일빌딩에서 한솥밥을 먹기 시작하면서 일각에선 이곳을 보수진영의 ‘중심’으로 평가하기도 한다.
진보매체의 한 언론인은 “참여정부에 대한 날선 비판을 주도하고 있는 보수 논객들이 이곳에서 자주 회동을 하는 것으로 안다”면서 “보수 논객의 본산으로 자리 잡고 있다는 느낌”이라고 평가했다.
한편, 17대 대선이 1년여 앞으로 다가오면서 군출신, 기독교 단체, 뉴라이트 계열 등 보수·우익단체가 비약적으로 증가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어 향후 이들의 역할이 주목받고 있다.
<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