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잿밥’ 좇아 떠나는 판·검사들 ‘유죄인가 무죄인가’

2006-10-25     정은혜 
법조계 만연한 ‘전관예우’ 백태


잇따라 불거진 법조비리 사건으로 법조계에 대한 불신이 더욱 커지고 있는 가운데, 이들의 ‘전관예우’ 관행이 여전한 것으로 드러나 논란이 증폭되고 있다. ‘전관예우’란 전직 판·검사 출신 변호사들이 재판에 나설 경우, 유리한 판결을 받는 것을 말한다. 지난 16~17일 국회 국정감사에서 법사위 소속 의원들은 전관예우에 대한 각종 실태를 제시, 이를 구체적인 수치로 증명해 충격을 주었다. ‘전관예우’라는 전근대적인 관행은 사실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하지만 이번에 쟁점이 된 전관예우 문제는 과거에 제기됐던 것과는 사뭇 다르다는 점에서 이목을 끈다. 특히, 대법관 출신 변호사들이 대법원 사건을 ‘싹쓸이’하고 있다는 점, 고위 법관과 검사 출신들이 로펌(Law firm·종합법률회사)과 대기업으로 진출하는 것은 도를 넘어섰다는 지적이다.


법조계의 고질병인 ‘전관예우’ 문제가 예상보다 훨씬 더 심각한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 16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서울고법 국정감사에서는 ‘전관예우가 왜 일어나며, 얼마나 고질적인지’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법조계 불신에 ‘한몫’
전관예우 관행이 근절되지 않는 이유에 대해, 한 개업변호사는 “검사 출신 변호사는 검찰의 내부 동향 파악이 용이하고, 검찰의 책임자 등 고위급과 전화통화로 소위 ‘전화변론’도 가능하기 때문에 피의자가 불구속 기소로 재판을 받을 수 있게 할 수도 있다”며 “또 판사 출신 변호사는 재판과정에서 담당 판사와 치열한 법리논쟁이 유리하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한마디로, 피의자들이 전관 변호사를 선임할 경우 ‘특혜’를 받을 수 있다는 것.
민주노동당 노회찬 의원은 2000~2005년 지방법원 부장판사급 이상 ‘전관 변호사’가 구속 사건을 맡았을 경우 석방률이 54.4%에 달해 수도권 법원 평균(46.5%)보다 7.8% 포인트 높았다. 또한 전관 변호사가 최종근무지 법원의 구속사건을 수임할 경우 석방률은 56.8%였다. 이에 반해 같은 부장판사급 전관이라 하더라도 최종근무지 사건이 아니면 석방률은 9%포인트 하락한 47.8%에 그쳤다.
노의원은 “전관 변호사의 석방률이 일반 변호사의 석방률보다 훨씬 높은 것은 ‘전관예우’가 존재함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라며 “함께 일하던 부장판사가 퇴직하자마자 구속 사건을 수임할 때 같은 법원에서 일하던 영장 판사는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통설이 입증된 셈”이라고 밝혔다.

대법원덕에 45억 벌기도
전관예우의 ‘약발’은 특히 전관 변호사에게 사건이 쏠리게 하고 변호사업계의 ‘빈익빈부익부’ 현상으로 이어졌다.
열린우리당 임종인 의원이 대법관 출신 변호사 13명이 수임한 사건을 분석한 결과, 이들이 수임하는 사건의 63.2%가 대법원 사건인 것으로 드러났다. 심한 사람은 94.3%를 대법원 사건만 맡았던 것으로 나타났다. 이용훈 대법원장도 대법관을 그만둔 2000년 9월부터 지난해 9월 취임할 때까지 5년간 4건 중 3건(449건 중 335건, 74.6%)이 대법원 사건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대한변협 공보이사가 그의 사퇴를 요구했을 당시 ‘변호사가 5년간 60억 원을 벌었다’고 주장한 것이 사실이라면, 그는 45억 원을 대법원 덕에 벌어들인 셈이다.
이는 국민 대다수, 특히 돈 없는 서민들에게 양질의 법률서비스를 가로막았다는 지적이다. 임 의원은 “대법관 출신도 전관예우에 기대어 대법원 사건을 맡는데 우리도 못할 게 뭐냐는 식으로 전관예우의 확대를 부추길 수 있다”며 “대법관들이 전 대법관들의 사건 심리를 우선시함으로써 중요한 일반사건의 심리를 가로막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양질의 서비스 기대못해
고위 법관과 검사 출신들의 로펌과 대기업행 행렬도 전관예우의 특혜 여부와 무관치 않다. 이들이 한해 받는 연봉은 6억∼27억원. 20년차 판·검사의 월급이 630만원 선인 점을 고려하면 30년 치 월급을 1년 만에 벌게 되는 셈이다. 열린우리당 김동철 의원에 따르면, 퇴직한 판검사가 대형 로펌에 진출할 경우 월평균 보수는 대법관 출신 8,000여만~2억원, 법원장급 7,000여만원, 부장판사급 6,500여만원, 일반판사 출신 5,000여만원이다.
김의원은 “퇴직 판·검사가 변호사 개업을 하면 1~2년 내에 평생 먹고 살 것을 번다는 말이 속설만은 아닌 것으로 드러났다”고 설명했다.
문제가 되는 것은 검찰 출신들의 대기업행. 이들은 1990년대 후반 이후 검찰의 대기업 수사가 관행화되면서 ‘귀하신 몸’이 됐다. 2003년 이후 지난 7월까지 검사 출신 42명, 판사 출신 9명이 대기업으로 이직했다.
특히 삼성의 경우 2000년 6월 삼성에버랜드 전환사채 불법 증여사건 고발 이후 2003년 12월 기소 전까지 검사 출신 8명이 집중 기용된 것으로 알려졌다. 대기업으로 향한 판검사 출신 51명 중 10명은 퇴직 다음 달 재취업했고, 취업제한기간(2년)이 지난 사람은 단 2명뿐이었다.
이 같은 대기업의 법조 출신 인사들에 대한 영입에 대해 일각에서는 우려를 표시하고 있다. 특히, 일부 법조인사의 경우 대기업과 관련된 사건을 담당하다가 나중에 해당 기업으로 영입되는 사례도 적지 않아 논란의 소지가 되고 있다. 최한수 참여연대 경제개혁팀장은 “법조인들에 대한 삼성의 무차별적인 영입은 공직자윤리법 위반은 아니지만, 법조계 윤리상 문제가 될 소지가 있다”고 지적했다.
또 법조계 일각에서는 대기업으로부터 ‘러브콜’을 받았느냐가 ‘가치평가’의 잣대가 되고 있기도 한다. 학계 한 관계자는 “우리나라 법조인들의 능력을 평가하는 기준 중 하나가 대기업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는지 여부”라면서 “대기업에서 스카우트 제의를 받지 못한 사람들은 별 볼일 없다는 식으로 인식되는 게 요즘 법조계의 풍토”라고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