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로 솟았나 땅으로 꺼졌나…조상님은 ‘행방불명’

2006-10-09     정은혜 
황당사건-조상묘지 소실 소동

추석을 앞두고 벌초행렬이 절정을 이루고 있는 가운데 최근 전국 곳곳에서 조상의 묘가 사라지는 사건이 잇따라 발생, 후손들을 당황케 하고 있다. 유골이 있어야 할 자리에 큰 구멍만 덩그러니 남겨져 있는 일은 기본이고, 중장비가 오가며 봉분을 뭉개거나 어설프게 복구해 놓은 경우도 허다하다. 심지어 아예 봉분을 없애 새 길을 만드는 등 ‘쑥대밭’을 만들어 놓기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같은 묘지 소실 및 훼손사건은 이달 들어 경남 진주 지역에서만 4건이 일어났고, 충북 충주, 전남 곡성 등에서도 잇따르고 있는 실정. 그렇다면 이들 조상님의 분묘는 도대체 어디로 ‘행방불명’된 것일까. 취재진은 이 웃지못할 소동의 피해자들과 연락해 당시 황당했던 순간을 들을 수 있었다.

누군가 조상묘 잘못 옮겨가

“벌초하러 왔다가 이게 웬 날벼락입니까.”
진주시 상대동에 사는 유모(40)씨. 그는 지난 8월 24일 오후 진주시 금곡면 정암리 공동묘지에 있는 할아버지 묘에 벌초를 하러 갔다가 할아버지 묘지가 흔적도 없이 사라진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유씨는 “추석을 앞두고 벌초하러 왔는데 할아버지 유골이 안치돼 있던 자리에 큰 구멍이 뚫려있었다”면서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느냐”며 허탈해 했다. 그는 이어 “게다가 묘지 일대에 사람들의 발자국이 깊숙이 패여 있음은 물론, 너저분한 쓰레기들이 흩어져 있었다”면서 “묘 주변은 말 그대로 완전 ‘만신창이’였다”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유씨에 따르면, 처음엔 자신이 묘를 잘못 찾았다고 생각, 주변의 큰 소나무와 골짜기 등 지형지물을 더듬어 가며 자세히 살폈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유씨가 할아버지의 묘를 벌초하러 온 것은 꽤 오랜만이었기 때문. 1시간 이상 곳곳을 둘러본 결과, 그러나 그는 결국 할아버지 묘가 없어진 사실을 받아들여야만 했다고. 유씨는 “당시 당황했던 심정은 이루 말로 다 표현 못 한다”며 “일단, 누나와 형 등 가족들에게 연락을 한 뒤 동네 노인들을 상대로 수소문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현재, 유씨의 할아버지 묘는 누군가 자신의 조상 묘로 잘못 알고 이장해 간 것은 확인된 상태. 하지만 아직 그가 누구인지, 할아버지 묘의 행방 여부 등은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유씨는 “추석이 되기 전까지 누가 이장해 갔는지 찾아내야 하는데 어떻게 찾아야 할지 막막하다”며 발을 동동 굴렀다.
마산에 사는 서모(43)씨도 사정은 마찬가지. 지난 8월 23일 서씨는 진주시 상봉동 공원묘지 산 중턱에 있는 할아버지 묘지에 벌초하러 갔다가 봉분이 없어진 사실을 알고 경찰에 신고했다. 서씨는 “해마다 벌초를 하러 오는데 묘가 사라져 황당하다”며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앞서 같은 달 10일에는 진주시 옥봉동에 사는 김모(57)씨의 집 근처에 있는 조부의 묘가 없어진 사례도 있었다. 김씨는 바로 집 뒷산에 조부의 묘가 자리하고 있었을 뿐 아니라, 수십 년째 관리해 오던 조부의 묘지가 없어져 황당하다 못해 허탈하다는 반응이다. 김씨는 “80년대 할아버지 묘를 세우고 그동안 관리를 해오면서 옆 묘까지 벌초를 해 줬는데 이런 일은 처음”이라며 “아무래도 그동안 관리를 소홀히 해 오던 옆 묘 후손들이 착각해서 잘못 이장해 간 것 같다”고 말했다.

문중 묘 처참히 뭉개져 있기도
조상 대대로 이어져 오는 문중 묘를 아예 쑥대밭을 만들어 놓는 경우도 있다.
매년 가족과 함께 마산시 진동면 율티리 선산에 벌초를 간다는 김모(57)씨가 그 피해당사자. 김씨는 “가족 모두의 눈앞에 벌어진 광경을 보고 입을 다물지 못했다”면서 “쳐다보지도 못할 정도로 처참했다”며 당시 상황을 전했다.
김씨에 따르면, 누군가 10대조부터 6대조까지 9분의 조상이 모셔진 문중 묘 한쪽을 완전히 파헤쳐 놓았다. 또, 자세히 보니 그의 조상 묘지는 중장비가 지나간 자리였다는 것이다. 즉, 문중묘 위쪽에 누군가 새로 무덤을 만들기 위해 중장비를 동원, 묘지를 훼손했다는 얘기다.
김씨는 “중장비가 여러 번 오가면서 잔디와 흙이 뒤범벅이 됐다”며 “게다가 9대조 할머니는 봉분이 없어지기까지 했다”며 통탄했다. 또 “그 아래 8대조 봉분 중 하나는 깔아뭉개기까지 했다”면서 “이후 어설프게 다시 만들어 놨지만, 원래 자리도 아닐 뿐더러 봉분 모양새도 찌그러졌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김씨는 “어떻게 남의 묘지를 이렇게 훼손하면서 무덤 주인에게 연락 한번 없을 수가 있느냐”면서 “생전 처음 당한 일이라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깊은 한숨을 내쉬기도 했다.
경찰에 따르면, 새 무덤은 김씨가 잘 아는 A씨가 윤달을 맞아 조상묘를 이장한 것으로 조사됐다. A씨는 “길을 설명해 줬는데도 중장비 기사가 자기 마음대로 길을 만들려다 그런 것 같다”며 “일단 김씨와 상의해 어떻게 할지 정하겠다”고 경찰에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형법 160조는 무덤을 함부로 파헤치면 5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고 돼있다. 경찰은 “하지만 고의가 아닌 경우, 형사상 처벌은 어려운 실정”이라며 “결국, 민사상 손해배상청구에 그치게 되는 게 전부인데, 이마저도 목격자가 없어 묘를 훼손한 피의자를 찾기 힘든 상황”이라고 전했다.

민사상 손배청구가 고작
경찰에 따르면, 이처럼 최근 들어 조상묘가 수난을 당하고 있는 것은 쌍춘년에 윤달(양력 8월 24일~9월 21일)이 겹친 올해가 ‘조상의 묘를 이장해도 해로운 일을 당하지 않는다’는 ‘이장의 적기’라고 전해지는 풍습 때문이다. 다시 말해, 집안의 화를 막기 위해 후손들이 조상들의 묘를 이장하다가 남의 묘를 자기네 조상 묘로 착각해 빚어진 ‘해프닝’이라는 얘기다.
진주 및 충주, 곡성경찰서 관계자는 “최근 들어 묘를 잃어버렸다는 황당한 신고가 나날이 늘고 있다”며 “오랜 세월 후손들이 조상의 묘를 돌보지 않다가 최근 윤달이 겹치면서 이장 적기라는 말을 믿고, 급하게 이장하려다 남의 조상을 잘못 옮기는 것 같다”고 입을 모았다.



# ‘쌍춘년+윤달’ 장의업계 호황
최근 들어 장의업체가 호황을 맞고 있다. 윤달(8월 24일~9월 21일)은 ‘재(災)가 끼지 않는 달’로 부정이 안탄다는 속설 탓이다.
지난달 28일 장의업계에 따르면, 쌍춘년에 윤달인 올해 묘를 이장하려는 후손들이 크게 늘면서 개장 유골 이장예약이 쇄도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조상의 사초와 묘 단장을 위한 둘레석, 제사석, 망두, 묘비 등의 설치와 함께 납골묘 설치 신청도 크게 늘었다.
업계 관계자는 “지난 한달 간 통계만 해도 분묘 이전과 군 지원 납골묘 설치를 비롯, 개인 납골묘 신청이 평소에 비해 30∼40% 가량 늘었다”면서 “윤달이 지난 지금까지도 석물작업, 조경사업 등으로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다”며 즐거운 비명을 질렀다.
지방에 있는 박모 장의사 역시 “지난달 묘 이장 건수만 15건 정도 된다”며 “사초를 위한 잔디 주문량도 50% 이상 증가했다”고 밝혔다.
한 업체 관계자는 “윤달을 맞아 납골묘 설치에 대한 신청과 문의가 잇따르고 있는 실정”이라며 “업체에 따라 음력 7월 윤달에 이장 예약을 20건 이상 받은 업체도 있다”고 말했다. 이는 예년에 비해 5∼6배 정도 이장 예약이 증가한 수치다.
한편, 윤달은 태음력 상 역일(曆日)과 계절이 서로 어긋나는 것을 막기 위해 끼워 넣은 달로, 부정이나 액(厄)이 끼지 않는 달로 알려져 있다. <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