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간 부지도 못 정해 ‘내부 알력설’에 표류

2006-09-28     김대현 
민주공원 건립 사업 추진 난항 속사정

지난 2001년 민주화운동기념 10대사업으로 결정돼 본격 추진된 민주공원 건립사업이 ‘개점휴업’ 상태다. 2002년 4월 사업부지로 사실상 확정됐던 서울 강북구 수유리 일대가 지역 주민들의 반발과 행정기관의 난색 표명으로 수포로 돌아갔다.
민주화운동관련자명예회복 및 보상심의위원회(보상심위)는 대체부지 선정으로 방향을 선회했지만, 이마저도 여의치가 않았다. 인천 계양구청이 승학산 예비군 훈련장터에 유치를 신청함에 따라 숨통이 트이는가 했지만, 지난 14일 입장을 번복하고 신청 철회서를 보상심위에 보냈다. 답보 상태가 지속되자, 민주공원 건립을 추진했던 유관 단체들의 활동도 사실상 중단되는 사태까지 오고 말았다. 일각에선 450억원이라는 막대한 예산을 책정해 놓고도 내부 ‘알력’으로 지지부진한 게 아니냐는 지적이 일고 있다.
보상심위는 묘지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최소화하기 위해 파격적인 인센티브 등을 고려하고 있다. 표류하고 있는 민주공원 추진 사업이 정상궤도로 진입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민주공원 조성 사업이 본격 추진된 지 5년이 지났지만, 사업부지조차 선정하지 못한 채 표류하고 있다.
지난 22일 민주화운동관련자명예회복 및 보상심의위원회(보상심위)에 따르면 지난 2000년 1월 12일 관련 법률이 공포됨에 따라 2002년 사업부지로 확정된 서울 강북구 수유 4동 산 17-1번지 인근 주민과 지역 의회의 반발에 부딪혀 난항을 겪고 있다.
보상심위와 유관 단체가 수유리 인근지역을 민주공원 부지로 선정한 것은 이곳이 갖고 있는 상징성 때문이다. 우선, 4·19묘역이 인근에 위치하고 있어 민주화 성지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주민·의회 반대에 부딪혀
또, 600년 수도서울을 지탱해온 북한산 자락에 묘역을 조성하는 게 좋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게다가 접근성과 대표성이라는 측면에서 좋은 평가를 받았다. 당시 유관 단체들도 별다른 이견을 보이지 않았다.
민주공원건립추진위원회(민공추) 한 관계자는 “규모를 최소화하는 한이 있더라도 상징적 의미를 갖는 수유리가 가장 적합하다”며 “일부 단체에서 규모를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취지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나 3만여평에 이르는 부지에 분묘 형식의 공원을 조성한다는 정부 입장이 발표된 직후 인근 주민들의 반발이 거세게 일었다. 주민들의 입장을 수용할 수밖에 없었던 구의회와 시의회도 뒤따라 반대 입장을 표시하기 시작했다.
특히, 서울시의회는 2003년 12월 19일 강북구 수유리 일대에 추진 중인 민주공원 조성 사업 반대 결의안을 의결했다.
규모를 최소화할 수 있는 납골 형식의 공원 조성에는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유가협)가 반대 입장을 천명하고 나서면서 대체부지 선정으로 방향을 선회하게 된 것으로 알려졌다.
민공추 관계자는 “일부 단체에서 민주공원 조성에 이견을 표출하고 나서면서 사업 추진이 더 꼬이는 계기가 됐다”고 비판했다. 민공추는 현재 활동이 중단된 상태다.
난관에 봉착했던 민주공원 건립에 숨통이 트인 것은 인천 계양구청이 대체부지 신청서를 접수하면서부터다. 계양구가 승학산 소재 예비군 훈련장터에 민주공원 조성이 가능하다는 의사를 전해 온 것이다.
하지만 지난 12일 계양구청이 입장을 번복하고 나서면서 승학산 부지도 사실상 물 건너갔다. 지난 5월 지방선거를 통해 선출된 이익진 현구청장이 보상심위에 대체부지 선정 철회 요청서를 제출한 것이다.
보상심위 관계자에 따르면 “계양구청이 지난 14일 철회 신청서를 팩스로 보내왔다”면서 “구청장이 교체됨에 따라 자체 정책에 변화가 생긴 것 같다”고 유감을 표시했다.
이로써 4년 이상 ‘제자리걸음’을 해온 민주공원 건립이 또 다시 난관에 봉착하게 됐다. 물론 일부 유관 단체에선 아직도 인천 지역을 유력한 대체부지로 손꼽고 있다.
유가협 강민조 회장은 “민주공원 추진 위원회를 새로 조직하고 있는 중”이라며 “현재까지는 인천지역이 대체부지로 가장 유력한 상황”이라고 주장했다.
일각에선 또 다른 대체부지로 광주지역을 거론하고 있다. 민주공원의 취지가 5·18정신과 맞닿아 있을 뿐만 아니라, 지역에서도 크게 반발하지 않는 점이 유리하게 평가되고 있다. 내부 조율이 이루어질 경우, 광주지역도 불가능한 것만은 아니다.
현재 가장 적극적으로 움직이고 있는 곳은 민주화운동정신계승 국민연대(계승연대)측이다.
계승연대측은 “답보 상태가 지속되고 있지만, 조만간 새로운 방향으로 추진될 것”이라며 “계승연대를 중심으로 중지를 모으고 있다”고 했다.
각각의 단체들이 보이고 있는 입장이 크게 다르다는 점에서 보상심위가 구심점을 잡아야한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일부 민주계 인사들은 “민주공원 추진과정에서 민주 세력이 내부 다툼을 벌이는 게 아닌가 싶다”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 계승연대 한 관계자는 “내부에선 다양한 견해와 입장차가 있을 수 있다”면서 “민주공원 추진은 단 한 차례도 중단된 적이 없다”고 말했다.
현재 민주공원은 450억원 규모의 예산이 책정된 상태다. 여기에는 공원조성비, 추모관 건립비, 토지 및 건물보상비 등이 포함된다. 민주공원 사업은 지난 2003년에도 20억원의 예산을 확보한 바 있다.
이에 따라, 민주공원 추진 과정에서 불거진 불협화음이 막대한 예산 배정에 따른 결과가 아니냐는 지적도 없지 않다.
민주공원 추진이 겉돌면서 사업 주관부서인 보상심위 안팎에서 논란이 확산되고 있는 형국이다. 보상심위가 사업 주체로서 중심을 잡아야 할 시점이다.
보상심위 담당자는 이에 대해 “민주화 관련 보상법 규정에 나와 있는 대로 이 사업은 정부가 주관하게끔 돼 있다”면서 “유관 단체는 단순히 의견을 제시하고 지원하는 것일 뿐”이라고 선을 그었다.

“유관 단체는 조력자일 뿐”
그는 또, “공원 규모는 이미 위원회를 통해 120구로 결정된 사안이기 때문에 논란의 여지가 없다”고 주장했다. 보상심위는 사업 추진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 대체부지에 대한 ‘인센티브’ 등을 강화해 나갈 방침이다.
국내 민주 묘지에는 국립 4·19묘지(서울), 3·15민주묘지(마산), 5·18민주묘지 등 모두 3곳이있다.
민주화운동에 몸담았던 오봉환씨(동아투위)는 “민주공원은 조속한 시일내에 조성돼야 한다”며 “민주화 운동가 출신 모두가 공유할 수 있는 공간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한편, 2004년 11월 30일 현재 민주화운동관련 인정 현황에 따르면 모두 6,740명이 민주화 운동가로 인정을 받았다. 명예회복은 6,143명, 보상은 509명, 사망은 88명인 것으로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