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풍자 논란’ 광주 비엔날레 파행 내막
“창작·표현의 자유 침해” vs “행사 취지 맞지 않아”
박근혜 대통령 허수아비 표현에 광주시 ‘작품 전시 불허’
작가·문화예술단체 “판단은 시민 몫, 원래대로 전시하라”
[일요서울 | 이지혜 기자] 광주비엔날레 특별 전시가 파행으로 치닫고 있다. 광주시가 박근혜 대통령을 풍자한 홍성담 작가의 작품 전시를 허가하지 않은 것이다. 이에 특별전에 참여하는 작가들은 “광주시민들의 다양한 의견을 반영해 만든 작품을 즉각 전시하라”며 반발하고 있다. 그렇지 않으면 자신들의 출품작을 철회하겠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광주시는 한 달 뒤 토론회를 통해 작품 전시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밝혀 특별 전시의 파행이 예고됐다. ‘민주화의 성지’ 광주에서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인지 그 내막을 살펴봤다.
“광주정신이라는 이름으로 모든 것을 보듬어주길 기대한다.”
광주비엔날레 20주년 특별전이 파행으로 치닫고 있다. 광주시가 대통령을 풍자한 그림 ‘세월오월’을 정치적 성격이 들어갔다는 이유로 전시 유보한 것이 원인이다.
2년마다 열리는 국제현대미술제 ‘광주비엔날레’는 지난 1995년 국제사회에 널리 알려진 광주 민주정신을 새로운 문화적 가치로 승화시키기 위해 창설됐다. 미술전시와 학술행사, 다양한 이벤트 등으로 구성되며 올해는 오는 9월부터 11월까지 열린다. 특히 올해는 20주년 기념으로 특별 프로젝트 ‘달콤한 이슬-1980 그 후’라는 이름의 특별 프로젝트를 준비했다. 광주민주화운동을 기점으로 지난 34년의 시대적 가치에 대해 다양한 해석과 이벤트가 준비되는 프로젝트는 지난 8일부터 시민들에게 전시됐다.
“재단, 절반 찬성에도 합의 결론 없다며 유보”
그러나 특별 프로젝트는 개막 전부터 논란이 됐다. 5·18 당시 시민군이었던 민중화가 홍성담 화백의 세월호 참사를 5·18 광주민주화운동과 연계해 묘사한 작품 ‘세월오월’이 문제였다. ‘세월오월’은 5·18 당시 활동했던 시민군과 주먹밥 아줌마가 세월호를 바다에서 들어 올리면서 승객들이 안전하게 탈출하고 모세의 기적처럼 바다가 갈라지는 모습을 묘사한 그림이다. 그러나 그림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박정희 전 대통령과 김기춘 비서실장의 조종을 받는 허수아비로 묘사된 부분이 문제가 됐다. 이에 광주시는 “작가들의 창작의 자유는 최대한 존중하지만 ‘세월오월’ 작품은 그림 일부 내용이 광주비엔날레에서 제시한 사업계획의 목적과 취지에 맞지 않다”며 세월오월 작품의 전시를 허가하지 않았다. 윤장현 시장도 “시비가 부담되는 비엔날레 특별전에 정치적 성향의 그림이 걸리는 것은 맞지 않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렇듯 작품이 논란이 되자 홍 화백은 박 대통령 그림에 눈물을 흘리는 닭 그림을 붙여 제출했다. 그러나 전시가 시작된 8일 광주비엔날레재단과 광주시립미술관이 “큐레이터 간 의견이 조율되지 않아 작품 설치를 유보키로 했다”는 입장을 최종적으로 밝힘으로써 ‘세월오월’의 전시가 무산됐다. 이러한 결정에 반발한 특별전 책임큐레이터 윤범모 가천대 교수는 지난 10일 사퇴했다. 윤 교수는 “홍작가의 ‘세월오월’은 우리 시대의 상처를 치유하고 공동체정신으로 광주정신을 계승하고자 하는 의도로 시민참여와 협업 과정을 통해 탄생했다”며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림의 일부 형상에 대한 정치적 해석으로 논란이 빚어지고 결국 전시가 유보됐다”고 설명했다. 윤 교수는 이어 “세월오월의 전시 여부를 놓고 4명의 큐레이터가 치열한 논쟁을 벌인 끝에 전시 가능 2표, 전시 불가 1표, 의사 표시 유보 1표의 결과가 나왔지만 재단은 큐레이터들 간 합의된 결론이 없다는 이유로 전시 유보 결정을 내렸다”고 밝혔다.
“풍자 그림 보호 못해 광주정신 말할 수 있나”
이러한 광주시의 결정에 비엔날레의 ‘5·18정신 계승’ 취지에 어긋난다며 특별전 참여 작가와 광주 예술단체들이 반발하고 나섰다. 지난 8일 광주민족예술단체총연합은 ‘예술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라’는 제목의 보도 자료를 내고 “세월호 참사와 정부의 무능함을 5·18 광주정신과 연계해 묘사한 홍성담 화가의 ‘세월오월’ 작품과 관련해 광주시가 박근혜 대통령을 허수아비로 묘사한 점을 들어 전시 불가 입장을 밝힌 것에 대해 민예총 소속 예술인들은 깊은 우려를 느낀다”고 밝혔다. 광주민예총은 이어 “국가 권력이 예술가의 작품을 전시하지 못하도록 하는 행위는 군사 독재정권의 권위적인 시대에나 자행된 폭력”이라며 “예술가의 창작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고 있는 광주시는 진정성 있는 사과와 재발 방지 약속을 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또 광주시민단체협의회도 “전시유보 결정은 사전검열을 통해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 행위로서 사실상 광주정신에 먹칠을 가한 것과 같다”며 “비엔날레를 지원하고 감독할 위치에 있는 윤장현 광주시장도 이번 결과에 자유롭지 못하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사상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 없이는 윤 시장이 그리는 ‘꿈꾸는 문화도시’를 만들어갈 수 없는 만큼 광주와 비엔날레의 발전을 위해 윤 시장이 독립적 결정을 내려야 한다”고 덧붙였다.
광주문화도시협의회도 이번 결정에 대해 반문화적 행위로 예술가의 창작과 표현의 자유를 심각하게 훼손한 것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또 광주시에 대해서도 시의 예산이 지원됐다는 이유만으로 사전 검열을 통해 예술가의 창작과 표현의 자유를 훼손하고 이를 정당화 하고 있다며 시민들에게 정중히 사과하고 작품을 전시할 것을 촉구했다.
이렇듯 지역 문화단체들이 광주시에 대한 비판 성명서를 발표하고 있는 가운데 특별전 참여 작가들은 몸소 행동에 나섰다. 이번 결정의 항의 표시로 작품을 자진철거한 것이다. 지난 11일 이윤엽 판화가 등 3명은 “시대를 풍자한 작가의 그림을 보호해주지도 못하는 광주비엔날레가 광주정신을 이야기할 수 있겠느냐”며 “광주 5·18정신을 모티브로 하는 광주비엔날레가 정치적인 이유로 작품을 걸 수 없다고 하는 것은 광주정신에 맞지 않다. ‘세월오월’이 걸려있지 않은 상태에서 내 작품이 전시돼 있는 것은 작가로서 치욕”이라고 밝혔다.
특별전 참여 작가 13명도 16일까지 ‘세월오월’이 전시되지 않을 경우 작품을 철거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들은 “광주정신에 긍정적으로 공감했기 때문에 참가를 결정했다”며 “그러나 전시를 개막하기도 전에 세월오월이 정치적 논란에 휩싸이면서 전시 유보결정이 내려졌고 전시 책임 큐레이터가 사퇴했다. 이는 광주정신에 맞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이렇듯 광주의 문화예술단체와 특별전 참여 작가들은 모두 “표현의 자유”를 외치며 “작품의 평가는 시민들에게 맡겨야 한다”고 촉구하고 있다. 그러나 이 같은 상황에도 불구하고 광주시는 세월오월의 전시를 허락하지 않고 있다. 오히려 오는 9월16일에 대토론회를 열고 세월오월에 대한 의견을 수렴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13명의 작가들까지 작품을 철거하면 특별전은 반쪽짜리로 전락하고 만다. 파행이 예고된 것이다.
‘세월오월’ 전시 광주시 외압 있었나
세월오월 논란에 대해 윤장현 광주시장은 “표현의 자유는 존중돼야 하지만 광주시비가 투입된 광주비엔날레 특별전 작품이 정치적 논란에 휩싸인 것에 대해서는 우려를 갖고 있다”고 지난 7일 밝혔다. 윤 시장은 “기본적인 문화정책에 대해 광주시는 지원하되 간섭은 하지 말아야 한다는 차원에서 작품 전시여부는 광주비엔날레재단의 전문가들이 판단할 문제”라고 말했다.
그러나 홍 화백은 “작품을 제작하는 과정 내내 끊임없이 수정요구가 있었다”라며 광주시의 외압이 있었음을 주장했다. 홍 화백은 “수정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더니 한 큐레이터가 숙소까지 찾아왔다”며 “그때 오형국 광주시 행정부시장 등의 의견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어떻게 광주에서 행정 공무원이 문화예술인에게 ‘이걸 고쳐라 저걸 고쳐라’라고 할 수 있는지 화가 났다”고 밝혔다. ‘광주시가 지원하되 간섭은 하지 말아야 한다’던 윤 시장의 말이 거짓으로 드러난 것이다.
광주비엔날레는 광주정신이 실종됐다는 비판과 함께 특별 전시 파행을 앞두고 있다. ‘민주화의 성지’ 광주시는 중앙정부 눈치 때문에 예술인에게 외압을 가했다는 비난에 직면했다. 과연 광주시와 광주비엔날레 측은 이번 사태를 어떻게 해결할지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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