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노 그룹 박영선 흔들기

재협상 불붙인 문재인 재집권 노리나

2014-08-18     류제성 언론인

박영선 체제 무력화 시도…내년초 당권 장악
친노계 분화 조짐, 2016총선 젊은 피 대거 수혈

[일요서울 | 류제성 언론인] 지금 새정치민주연합은 사실상 무주공산(無主空山)이다. 7·30 재보궐선거 참패 여파로 김한길·안철수 공동대표 체제가 붕괴된 이후 박영선 국민공감혁신위원장(비대위원장)이 당을 이끌고 있지만 그를 제1야당의 리더로 보는 시각은 없다.

실제로 박 위원장은 당내 각 계파로부터 극심한 견제를 받고 있다. 임시 당 대표 역할을 맡은 그는 여당인 새누리당과 ‘세월호 특별법 합의’라는 첫 작품을 내놓았지만 당내 강경파들의 엄청난 반발에 부딪혔다. 심지어 의원총회에서 합의를 백지화하면서 리더십에 큰 타격을 받았다.

이 과정에서 친노(親盧·친 노무현 전 대통령) 세력의 움직임이 심상찮다. 특히 노무현 전 대통령의 마지막 비서실장으로, 2012년 대선에도 출마했던 문재인 의원이 당내 강경 흐름을 타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세월호 정국을 존재감을 과시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로 삼고 있는 셈이다.

문 의원은 지난 12일 밤 11시 트위터를 통해 “세월호 유족들이 납득할 수 있는 특별법 만들기, 당연히 집권여당에게 더 큰 책임이 있다. 새누리당은 어쩌면 그렇게 당당하게 그 책임을 외면하면서 희희낙락할 수 있는 것일까. 우리 정치의 불가사의”라고 했다.

문 의원의 칼끝은 여권 뿐 아니라 박영선 위원장도 겨눴다. 그는 세월호특별법에 대해 여야 원내대표의 합의가 이뤄진 다음날인 8일 역시 트위터를 통해 “여야가 다시 머리를 맞대는 게 도리”라며 박 위원장에게 재협상을 요구했다.

재협상 불붙인 문재인 의원

문 의원을 따르는 다른 친노 의원들도 가세했다. 노무현 대통령 시절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을 지낸 전해철 의원은 방송에 출연해 “여야 원내대표의 합의에 대해 매우 깊은 실망과 우려를 표한다”고 했다.

친노 그룹은 현재 외형상으론 새누리당을 겨냥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하지만 내부적으론 무주공산 상태인 당을 장악하기 위한 차원에서 ‘박영선 체제 무력화’를 시도하는 모양새다. 박 위원장이 수사권과 특별검사제 추천권이 없는 세월호특별법에 합의하자 재협상 이슈에 불을 댕긴 인물도 문 의원이다.

특히 친노 그룹이 당내 ‘486’(40대, 80년대 학번, 60년대 출생) 의원 그룹과 보조를 맞추는 상황이 흥미롭다. 오영식·우상호·임수경·최재성·이인영·신계륜·김현미 의원 등으로 대표되는 ‘486’은 박 위원장의 합의안에 대해 강한 비판을 쏟아내고 있다.

‘486’ 그룹은 당초 당내 친노와 비노(非盧) 분류에서 ‘중립’으로 간주됐다. 하지만 세월호 특별법 협상 국면에서 급속히 친노 쪽으로 기울고 있다. 박 위원장이 지난 11일 의원총회에서 여당과의 당초 합의안을 뒤집은 것도 친노와 ‘486’의 압력에 굴복한 측면이 있다.

야당가에선 친노 그룹이 세월호 국면에서 강경 목소리를 내는 배경에 ‘2017년 대권 고지 탈환’ 시나리오가 있다고 본다. 새정치연합의 한 당직자는 “세월호 참사 이후 박근혜 대통령의 국정운영 지지도가 급락하고, 야당도 제 역할을 못한다는 비판이 높은 시점에 친노 그룹이 대안 세력으로 부상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친노 그룹의 ‘2017년 재집권 시나리오’는 향후 정치일정에 맞춰져 있다는 게 이 당직자의 관측이다. 우선은 내년 초에 실시될 전당대회를 통해 당권을 장악하는 일이 급선무다. 이후 2016년 20대 총선에서 젊은피를 수혈해 국회로 대거 진출시키는 게 2단계 목표다. 당내 ‘486’을 친노 그룹에 편입시키려는 시도가 이를 반증한다.

범 친노계 일부 ‘문재인 불가론’

당연히 마지막 3단계는 2017년 12월의 19대 대통령선거에서 승리하는 일이다. 친노 그룹 안에선 차기 대선에 누구를 간판으로 내세울지를 놓고는 의견이 분분하다. 일단은 문재인 의원이 ‘대권 재수’를 희망하고 있다. 문 의원은 지난해 연말 17대 대선출마 1주년을 기념해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2017년 대선에서 어떤 역할도 마다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이 말은 사실상 2017년 대권 도전 의지를 밝힌 것으로 해석됐다.

하지만 범 친노계 안에선 ‘문재인 불가론’도 제기된다. 한 차례 대권 도전에 실패한 만큼 다음 기회는 좀 더 참신한 인물에게 양보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실제로 현재 범 친노계는 분화되고 있다. 문 의원이 친노계의 좌장격이라고 하지만 반대파도 적지 않다.

현재 새정치연합 안의 범 친노계의 세력 분포는 상당히 복잡하다. 외형적으론 문재인계가 다수를 차지하고 있지만 문 의원과 정치노선을 달리하는 친노계가 여러 파벌을 형성하고 있다. 일단은 문희상·원혜영·유인태·이해찬·한명숙 의원 등 ‘친노 원로그룹’이 문 의원에게 다시 한 번 기회를 줄지 고심 중이다.

여기에 범 친노에 포함되는 정세균 의원이 호남을 중심으로 만만치 않은 세력을 구축하고 있다. 2007년 대선에 대통합민주신당(현 새정치민주연합) 후보로 출마했던 정동영 의원도 ‘호남의 맹주’ 자리를 다시 노린다. 그동안 숨을 죽이고 있던 그는 최근 세월호 정국을 맞아 독자적인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여기에 이해찬계, 안희정계, 김두관계, 김한길계도 범 친노 계열로 분류할 수 있다.

이들 계파가 문재인 의원이 차기 대권 도전의 깃발을 들었을 때 그 아래로 줄을 설 지는 불투명하다.

여기에 또 범 친노에서 벗어난 비노 세력도 만만치 않다. 당장 안철수 전 대표가 지금은 칩거 상태에 들어가 있지만 언제든 다시 부상할 수 있는 대중적 기반을 갖추고 있다. 2011년의 ‘안철수 신드롬’을 다시 일으키기 위한 묘책을 측근들이 모색하고 있다는 말도 들린다.

여기다 비노 그룹도 대안을 찾고 있다.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 세력인 박지원계와 고 김근태 전 의원을 추종하는 ‘민평련’ 소속 의원들이 대표적이다. 또 손학규 전 고문이 정계은퇴를 선언했지만 그를 따르는 의원들이 차기 대권에 ‘제3의 인물’을 내세우려는 시도를 할 수 있다.

가장 주목되는 그룹은 ‘486’이다. 지금은 친노계가 ‘486’을 끌어들이려 하고 있지만 그들이 호락호락하게 ‘문재인 대권 후보’ 카드를 수용하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 많다.

황태순 정치평론가는 “2017년이면 정치경험을 쌓은 ‘486’들이 야당의 중심에 서서 킹 메이커 역할을 자처할 것”이라며 “그들이 새로운 ‘도구’를 찾을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도구’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사용했던 말이다. 노 전 대통령은 대권에 출마하면서 “‘386’(30대, 80년대 학번, 60년대생)이 나를 ‘개혁의 도구’로 사용해 달라”고 했었다.

따라서 안희정 충남지사, 김두관 전 경남지사 등 ‘노무현의 사람들’ 가운데서도 문재인 의원의 대항마가 나올 수 있다. ‘486’들은 이에 그치지 않고 친노 그룹 밖에서도 ‘도구’를 찾을 것으로 보인다.

박원순 시장 유력하게 거론

가장 유력하게 거론되는 인물이 박원순 서울시장이다. 박 시장은 대권 도전 여부에 대해 침묵하고 있지만 야권에서 가장 가능성이 높은 차기 주자로 꼽힌다. 특히 새정치연합이 7·30 재보궐선거에서 참패를 하면서 그에게 기회가 생겼다.

무엇보다 유력한 경쟁상대였던 손학규 전 고문이 재보선에서 새누리당 정치신인에게 패배하면서 치명상을 입고 정계를 떠났다. 물론 김대중 전 대통령처럼 대선 국면에서 다시 복귀할 가능성을 완전히 닫을 수는 없지만 그런 기회가 오기는 쉽지 않다. 김두관 전 지사도 선거 패배에 따라 동력을 크게 잃었다. 박 시장의 정치적 동지였던 안철수 전 대표 역시 일단은 재보선 참패의 책임론에 오랫동안 시달릴 것으로 보인다.

‘손학규-김두관-안철수’ 카드가 한풀 꺾이면서 상대적으로 박 시장에게 기회가 찾아오고 있는 셈이다. 박 시장의 입장에서는 자신은 가만히 있는데 다른 경쟁자들이 제 풀에 나가떨어져 버렸다.

결국 친노 그룹의 2017년 재집권 시나리오는 정치스케줄에 따라 마련돼 있지만 누가 간판으로 나설지는 불투명한 상황이다. 앞으로 ‘486’ 그룹과 ‘민평련’ 같은 비노 그룹이 어떤 정치적 선택을 할지에 따라 재집권 시나리오의 완성 여부가 결정될 전망이다.

황태순 평론가는 “친노나 ‘486’이나 스스로 폐쇄적이고 근거 없는 우월감에서 벗어나 국민들과 눈높이를 맞추지 못하면 재집권은 희망사항일 뿐”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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