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찌라시의 기원] 군부정권 파워집단 정보공유
이니셜보다 실명 밝혀 ‘영향력’ 높아
[일요서울 | 홍준철 기자] 1980년대 전두환 정권 때 정치 활동을 규제당하고 자택에 갇히다시피 한 야당 지도자 김영삼씨가 20여일간 단식을 벌였다. 당시 언론은 이를 ‘현안 문제’라고 언급한 게 고작이었다. 언론이 정권 눈치를 보느라 제 구실을 못하던 군부 정권시절 정치권이나 재계 등의 궁금증을 푸는 데 상당한 도움을 준 게 증권가 찌라시의 시초였다.
90년대 들어 금융기관과 대기업 정보맨들이 증시 주변의 각종 루머와 자기네가 입수한 첩보 등을 모아 책자로 만든 게 사설 정보지(일명 ‘찌라시’)다. 사설 정보지가 본격적으로 유통된 것은 국정원, 검찰, 경찰 관계자와 국회의원 보좌관, 기자들까지 서로 정보를 주고받으며 제작에 참여하면서부터라고 한다.
2000년도만 해도 검찰이 파악한 전문 사설정보팀만 15개가 넘는다. 이들이 만든 ‘찌라시’에 분석과 전망이 붙어 인터넷에 나도는 것까지 합치면 수십 가지였다. 사설 정보지 내용은 청와대를 비롯한 관가 동정과 인사 하마평, 후보 취약점, 재벌가 동향과 자녀 문제, 부동산개발 정보, 연예계 소식 등 신문 못지않게 다양했다. 인물이 이니셜이 아닌 실명으로 등장하고 사실과 달라도 고소당하거나 항의받지 않았다. 하지만 최근 분위기는 확연히 다르다.
유언비어로 인한 개인의 명예 훼손과 기업신용 하락 등 사설 정보지의 폐해가 매우 심각해지면서 사정 당국이 ‘구속수사’와 ‘세무조사’란 칼을 빼들고 있다. 하지만, 연예계를 제외하고 정관계나 경제계에서 적극 나서지 않는 분위기에다 마땅히 적용할 법규가 없어 단속이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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